지난 5월 군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공군에서 성추행과 군 조직 전체의 2차 가해를 겪으며 극단적 선택을 했던 고 이예람 중사 사건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군대를 다녀온 우리 사회 특성상 분노 여론이 폭발했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진실이 밝혀지도록 엄중한 수사를 직접 지시한 바 있습니다. 뒤늦었지만 국방부 장관이 공식 사과하며 재발 방지 약속을 했고 공군참모총장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생각비행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바뀌지 않는 군 조직과 면피책으로 전락한 군사법원이 있다는 기사를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군이 최초로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특임군검사까지 임명하자 이번엔 좀 달라질까 하는 기대도 품었습니다.
출처 - 쿠키뉴스
군사법원, 이제는 폐지해야 할 때 : https://ideas0419.com/1195 |
하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군 사상 최초로 소집됐다는 심의위원회와 특임군검사는 이 중사 사건에서 2차 가해와 직무유기, 편파수사 등으로 기소된 군사경찰대대장과 수사계장, 공군 법무실장 등 전원을 불기소하는 어이없는 결론을 냈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하사관 한 명을 빼고는 모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로 사건을 유야무야 넘긴 셈이죠. 그런데 이 중사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 40일 만에 공군 수사 지휘, 감독 책임자가 수사 무마를 지시한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 중사 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불기소로 빠져나온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수사 무마를 지시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된 겁니다.
출처 - 군인권센터
군인권센터는 지난 6월 공군본부 군검사 5명이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최근에 공개했습니다. A 군검사가 가해자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냐며 구속을 안 시킨 이유가 뭐냐고 묻자, 선임 B 군검사는 “실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야 우리도 나중에 나가면 다 그렇게 전관예우로 먹고 살아야 되는 거야. 직접 불구속 지휘하는데 뭐 어쩌라고? 피곤하다. 그만 얘기하자. 입단속이나 잘해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출처 - MBN
공군 법무실장이 직접 가해자를 불구속하라고 지시했으며 사건 자체를 무마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국회 국정조사 중 해당 공군 법무실장은 이 중사 사건을 직접 지휘한 적이 없다고 발언했는데,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회에서 위증을 한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녹취록에는 공군본부 법무실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소속 군무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정황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국방부 수사 역시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상관들의 회유, 압박 및 2차 가해 그리고 마지막 끈이었던 군 수사가 오히려 가해자와 결탁해서 이뤄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 차원에서 전원 불기소가 나온 것은 단순히 공군 법무실장의 책동뿐 아니라 이런 움직임을 국방부 차원에서 용인했다는 의미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군의 부실 수사를 넘어 조직적인 왜곡 수사이자 불법 수사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은 녹취록이 폭로되기 바로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육해공군 진급자 삼정검 수여식에 참여해 삼정검을 받았습니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법무실장으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수사 무마 지시를 해놓고 삼정검을 받아 들 생각을 대체 어떻게 했을까요? 이토록 썩은 군 조직을 그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군인권센터의 녹취록 폭로 이후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는 지난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무기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유족이 애걸복걸하고 국민청원 끝에 수사가 이뤄졌지만 전원 불기소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오자 부모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애끊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장례식장에 오셔서 엄정하게 수사해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되찾아주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에 대해 다시 살펴달라"고 했습니다. 군의 수사 결과는 이처럼 누가 봐도 신뢰할 수 없으니 민간 차원에서 제대로 된 특검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출처 - MBC
녹취록까지 폭로된 상황인 만큼 재수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중사 사건 이후로도 육해공군 가릴 것 없이 성범죄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해자가 자백을 했는데도 한참 지나 기소를 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한 점마저 똑같았습니다. 군사법원법 개정안으로 군사법원이 축소되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조직 감싸기에 혈안이 된 군이 피해자들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이 중사 사건을 민간 혹은 특검으로 철저히 재수사하여 군의 법무 비리를 파헤쳐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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