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 이제는 폐지해야 할 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만, 군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 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군대 비리를 보면 사회에 끼치는 군대와 군 문화의 폐악을 이제는 끊어낼 때가 됐다고 느끼는 분이 많으시겠죠.

 

출처 - MBC

 

6월에 드러난 군의 폐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공군 여군 하사관의 성추행 자살 사건이었습니다. 군 전체가 가해자와 한통속이 되어 피해자인 여군 한 명을 사회적으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가해자는 뻔뻔하게 피해자를 협박했고 가해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명예롭게 전역하게 해 달라면서 피해자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었습니다. 피해자는 상관에게 곧바로 신고했지만 상사 또한 없던 일로 해달라며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이런 다각도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이 중사는 남자 친구와 혼인 신고를 한 당일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를 영상으로 남기며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함은 물론 가해자를 두둔하는 상황에 대해 한탄했습니다. 분노한 유가족은 장례까지 미루며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참으로 비상식적인 대응뿐이었습니다.

 

출처 - MBC

 

군은 조직적으로 2차 가해를 했습니다. 공군 법무실은 피해자 시진을 돌려보며 얼굴 평가나 하기 바빴고 유가족을 악성 민원인, 시체 팔이 하는 이들로 지칭했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선 변호인은 되레 가해자의 편을 들며 2000만 원에 합의하도록 제안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피해 발생 80여 일이 지나서야 국방부에 보고가 들어갔다고 하니 그사이에 각종 증거들은 은폐되거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출처 - KBS

 

군인권센터가 알린 내용에 의하면 공군 군사경찰단장은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숨진 공군 이 중사 사건을 국방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보고서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빼라"라고 무려 네 차례나 지시했다고 합니다. 실무자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묵살하고 결국 단순 사망 건으로 국방부에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군 수사 지휘 라인이 작심하고 사건을 은폐했음이 드러났고, 국방부에 허위보고까지 감행한 정황을 보면 공군본부는 자체적으로 적당히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휘라인까지 무시하면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점을 보면 이건 국가와 국가의 안녕을 책임지는 군이 아니라 조폭이나 양아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조직임을 스스로 드러낸 꼴입니다.

 

출처 – MBC

 

사건이 벌어진 지 18일 만에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고 공군 참모총장이 사의를 밝혔는데요, 이 지경까지 와서도 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이 중사 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당일 공군 장교 10여 명이 집단으로 음주 파티를 하다가 적발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 위반인 건 당연하고 윗선에서 내린 자중하라는 명령조차 어겼으니 과연 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동네 양아치도 이렇게는 하지 않죠.

 

출처 - MBC

 

그런데 여기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국방부와 공군 전체에 난리가 났는데도 군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공군 검찰 등을 압수 수색하는데 웃으며 안부를 묻고 '친정집' 운운했다고 하죠. 국정농단 당시 친정인 검찰에 돌아가 웃고 있던 우병우가 생각나는군요. 압수 수색조차 뒷북으로 대충 하고는 제 식구 감싸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걸 보면 정말 군 사법당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싶습니다. 이따위 정신으로 사건을 대하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합니다.

 

출처 – YTN

 

군대 내에서 여군의 죽음이 이렇게 다뤄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8년 전 여군 오 대위는 직속 상관 소령에게 업무상 가해와 성적인 강제추행을 당하고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그 당시 수사 진행 상황은 이번 이 중사 사건과 판박이였습니다. 또한 이 중사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공군의 여군 장교가 성폭력을 당해 국방헬프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국방헬프콜은 퇴근 시간이 됐으니 내일 전화하라며 귀찮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군부대 내 성 비위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데 군의 조직문화는 미개하기 짝이 없습니다.

 

출처 - MBC

 

사실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 비위 문제만이 아닙니다. 상식에 벗어나는 군대 문화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군 내 부실 급식은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습니다. 휴가에서 복귀한 격리 병사에게 과거의 포로수용소에서나 나올 법한 부실 배식을 한 겁니다. 한편 풋살 도중 공을 뺏었다고 병사를 구타한 부사관도 있었습니다. 천식을 앓고 있는 훈련병에게 감기약을 처방하는 문제도 있었고요. 이처럼 SNS에 제보된 익명 고발이 군을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이때도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직접 사과에 나섰을 정도였죠. 그런데 군대 문화의 문제점이 뭔지 파악하지 못한 간부들은 장병들에게 휴대폰을 이용하게 한 문화가 잘못됐다고 헛다리를 짚거나 되레 고발자를 색출하려 드는 등 후진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수천 년 전 손자병법 시대부터 병사들을 잘 먹이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주요한 필승 전략이었습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왜 군에 몸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출처 - MBC

 

국방부과 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이번 기회에 군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진실을 드러내겠다고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회의적입니다. 군 복무를 하며 숱한 부조리를 겪은 사람이 많다 보니 믿을 수 없는 것이죠. 애초 군 내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계급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군의 폐쇄성이 남아 있는 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부실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을 사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수사기관, 사법 절차를 군이 직접 운영하는 현 상황까지 거론하자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 남성 중심적인 조직 특성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군 스스로 성 비위 문제 등을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군에서 학습되는 여성 혐오를 사회에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죠.

 

출처 - 연합뉴스

 

이 때문에 군사법원법의 전면 개정이나 군 사법부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힘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6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군과 관련해 국민이 분노하는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차제에 개별 사안을 넘어 종합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 근본적인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기구에는 민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고등군사법원(2심)을 없애고 민간 고등법원으로 넘기는 것이 골자입니다.

 

출처 - SBS

 

이런 변화는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사항입니다. 8년 전 육군 오 대위 사건을 맡았던 강석민 변호사는 "민간이 개입해 군의 폐쇄성을 깨뜨리지 않으면 어떤 제도 개선도 군을 바꾸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 현재 국방부가 하는 이 중사 사건 수사를 특검에 맡겨야 하며 군 법원과 수사기관을 폐지하고 민간 사법 시스템에 편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강석민 변호사는 "사망에 이르는 극단적인 사건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는 군의 모든 조치를 단 하나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불신을 갖고 보지 않으면 어디서 어떻게 사건이 왜곡될지 모른다.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조직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 판사 출신입니다.

 

출처 - KBS

 

군 내 사법 시스템은 지휘관도 변호인도 조직이 우선이라 피해자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법의 기본 전제가 무시되는 상황이죠. 이미 군 내에는 성고충상담관도 있고 이번에 사건이 터진 공군에는 양성평등센터장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생겨도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습니다. 군부대 내에 속해 있으니 지휘관을 거스르는 소리를 꺼낼 수 있을 리 없죠. 여기에 검찰과 변호인까지 모두 군 지휘 체계 안에 포함돼 있다 보니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를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극히 작습니다. 낮은 계급의 군인이 연루된 경우 꼬리 자르기 식으로 수사를 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높은 계급의 군인이 연루된 경우 수사가 지지부진해집니다. 대상자의 계급에 따라 수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면 과연 그게 수사기관이고 사법기관일까요?

 

출처 – 청와대 청원게시판

 

국방부 밑에 있는 현재의 군 사법제도는 근본적으로 헌법적 권리와 모순됩니다.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군사법원을 둘 수 있는 예외 사항이 있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군대를 갔다는 이유로 바깥과 다른 법률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상황이 말입니다. 게다가 군사법원과 그 구성원이 헌법이 말하는 법관과 법률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민간의 사법 체제가 존재하고 잘 굴러가고 있는데 군인이란 이유만으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거나 혹은 비껴갈 수 있다면 법 앞의 평등이 무색한 상황 아닐까요?

 

출처 - 한국일보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습니다. 전시에도 민간 사법체제가 작동하면 군사법원은 필요 없습니다. 평시에는 말할 것도 없죠. 현재로도 1심 보통군사법원이 다루는 사건 중 군사 범죄는 8%에 불과합니다. 이조차도 대부분은 군사기밀과 무관한 군무이탈 관련 건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군이라는 특성상 비밀 유지가 필요해 별도의 군사법원이 필요하다는 건 문자 그대로 핑계에 불과한 헛소리입니다. 나머지 92%는 민간과 다를 바 없는 형사 범죄입니다. 대만은 계엄령을 오래 겪고 군사법원을 없앴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 없이 사회가 잘 돌아갑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군사독재 문화의 잔재와 같은 군사법원을 끊어낼 때가 됐습니다. 군 개혁과 진정한 문민통제는 이런 변화를 통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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