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선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에 대한 루머를 토대로 한 이른 바 '쥴리 벽화'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건물 외벽에 ‘쥴리의 남자들’,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란 문구와 함께 김건희의 얼굴을 묘사한 듯한 그림을 그린 것이 발단이었죠. 윤석열의 대선 행보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만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보니 '줄리 벽화'는 즉시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출처 - SBS
논란이 확산되자 쥴리 벽화를 제작한 당사자는 벽화에 새겨진 문구 가운데 "쥴리의 꿈, 쥴리의 남자들" 등을 삭제하겠다고 밝혔고, 페인트로 덧칠해 이 문구를 지웠습니다. 동시에 이 서점은 이 벽화 위에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셔도 된다"는 문구의 현수막을 걸어 누구든지 낙서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자 보수 유튜버를 비롯해 윤석열 지지자들이 몰려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부인인 김혜경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김부선을 빗댄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혼란이 계속되자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장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단 윤석열 측은 쥴리 벽화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풍자 벽화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 모욕죄의 경계선상에 있는 문제여서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더라도 그림 작가가 법적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서는 일은 드문 편이죠. 공직선거법 등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거나 비방 대상이 정치인 등 공인인 경우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쥴리 벽화 논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종종 있었죠.
출처 - SBS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논란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가 박정희 모습을 한 아이를 낳는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블로그에 게시한 민중화가 홍성담 씨가 있었습니다. <세월오월>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봤지만 검찰은 이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의견 표출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만화가 최지룡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의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을 블로그에 게재한 일을 두고도 선관위가 수사를 의뢰했지만 마찬가지로 불기소 처분되었습니다.
출처 - YTN
2017년 1월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회관에 전시된 박근혜 풍자화는 더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곧, BYE! 전’에 출품한 <더러운 잠>이란 작품이었는데요.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패러디해 박근혜와 최순실을 그려넣은 그림이었는데, 박근혜 지지자들이 몰려와 그림을 훼손하는 일마저 벌어졌습니다. 당시 극우단체가 표창원 의원과 화가인 이구영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오히려 당시 그림을 훼손한 예비역 준장 심동보 해군 제독 등은 검찰이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해 벌금 100만 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죠. 심동보는 이구영 화가가 제기한 작품 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도 패소해 배상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출처 - 뉴스1
한편 똑같이 올랭피아를 패러디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일도 있습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둔 1월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이용섭 광주시장의 얼굴을 합성한 현수막을 광주 한 건물에 걸어둔 무소속 예비후보의 경우입니다. 벌금 200만 원을 받고 이에 대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요, 이때는 그림 자체보다는 자극적인 현수막 문구로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다수의 주민이 볼 수 있는 곳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미친!’, ‘인간쓰레기들’ 등의 저속한 문구를 노출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최근 '쥴리 벽화'의 경우 공인이 아닌 윤석열 후보의 부인에 대한 루머를 가지고 공격했다는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박근혜의 <더러운 잠> 때도 나왔던 비판이지만 유독 여성 정치인이나 셀럽에 대한 공격은 '여성 혐오'에 기반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 정치인에 대해 남성성을 공격하는 경우보다는 인격이나 성과에 대한 공격이 많은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상황이죠.
출처 - 뉴스1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 효과에 더해 쥴리 벽화 논란이 더해져 여성들의 민주당 지지도가 하락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쥴리 벽화 논란이 한창이었던 7월 말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민주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지지도보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낮아졌습니다. YTN 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여성 지지도가 38.8%에서 34.2%로 4.6%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국민의힘 여성 지지도는 27.6%에서 31.1%로 3.5% 올랐습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같은 기간 민주당 여성 지지도는 다소 하락한 반면 국민의힘 여성 지지도는 조금 상승했습니다. 지난 7월 30일 민주당은 쥴리 벽화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한발 늦은 대응이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대선 등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 예술이 패러디와 풍자로 대응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벽화나 현수막 등으로 정치 이슈에 대한 의견 개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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