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구속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이 허가됐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던 법무부 장관과 정치권의 반응이 무색한 결과입니다. 법무부는 9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가석방 심사 대상자들의 적격 여부를 논의한 결과 이재용의 가석방을 허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KBS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번 심사위에서 광복절 가석방 신청자 1057명을 심사한 결과 모범 수형자 등 810명에 대해 가석방 적격으로 의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석방을 허가한 이유는 숱한 재벌의 가석방 혹은 사면 사유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이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더해 대표성 없는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 다른 재소자들과 달리 독방에서 호의호식했을 이재용의 모범적인 수용생활 태도 등을 고려했다는 겁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발언이 생각납니다.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혹은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 |
대체 언제까지 이런 불평등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국정농단의 당사자들에게 뇌물을 건넨 크나큰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재용이 받은 형량은 지나치게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다 채우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재용 가석방이 절차는 밟았다지만 이를 위한 밑준비들은 돈과 권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었죠.
출처 - 메트로
실무적으로 가석방은 80% 이상 복역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포화에 이른 교정시설을 고려해 가석방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기준을 60%로 낮췄습니다. 하지만 최근 9년간 형기의 70% 이상을 채우지 않고 가석방된 수형자는 0.01%에 불과합니다. 이재용은 '우연히'도 가석방 심의위가 열리기 며칠 전인 7월 28일 복역률 60%를 딱 채웠습니다. 0.01%만 통과할 수 있었던 가석방의 문이 이재용 앞에서 활짝 열린 걸 보면 이런 게 특혜가 아니라면 뭐가 특혜란 말입니까?
출처 - 연합뉴스
청와대는 법무부에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진행했고 이재용에 대한 사면이나 가석방에 대해 청와대는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명박 시절 이건희를 원포인트 사면해준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게다가 정치권의 반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국정농단 세력과 한통속으로 뇌물을 받아먹던 국민의힘의 반응은 볼 것도 없이 저급하여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참으로 낯뜨겁습니다. 송영길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민 여론에 부합하도록 반성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얘기했지만 가석방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정세균 전 총리는 더 나아가 "국민 다수가 이재용 가석방에 찬성하는 듯"하다면서 "국민의 뜻을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해 비난을 불러일으켰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재용 가석방을 비판한 이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김두관, 박용진 의원 정도입니다. 이들은 "재벌 총수에 특혜를 준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국민들은 이재용 가석방 자체에 대한 실망감도 크지만 이를 제대로 비판하며 나서는 정치인이 많지 않은 현실에 더 절망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당연히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뻔뻔하게도 사면이 아닌 가석방이라는 것에 대해 아쉬운 소릴 하고 있죠. 가석방의 경우 취업제한, 해외출장 제약 등 여러 조건이 걸리기 때문이겠죠. 재계는 삼성이 반도체 패권을 다시 공고히 하고 한국 경제를 부흥시킬 기회라면서 총수가 있어야 기업이 산다고 하는 구시대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옳다면 왜 이재용이 없는 동안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실적을 냈을까요? 그리고 이번에 이재용의 가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 삼성전자의 주가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출처 - 서울파이낸스
국민과 시민단체 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지은 죄는 물론 지난 6월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새로 기소된 점을 감안하면 재소자인 이재용 개인의 품행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가석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죠. 참여연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된 국정농단의 주축이었던 이재용을 가석방한다면 향후 어떤 재벌총수가 법을 지킬 것이며 어떤 중범죄자에게 가석방을 불허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한국노총 역시 여전히 법 위의 삼성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밝히며 이번 가석방이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9일(현지 시간) AP통신은 법무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한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하며 "30개월 형기 중 1년을 남기고 나온 이번 발표는 중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관대한 역사와 유죄 판결을 받은 재벌에 대한 특혜를 보여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의 거대 기술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요 전략적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불안이 정치적, 대중적, 비즈니스적 지지를 키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 KBS
이재용 가석방으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삼성공화국이고 법 위에 재벌이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가석방이기 때문에 5년간 취업제한 등의 제약을 받아 삼성 경영 업무 복귀는 일단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법무부 장관의 승인만 받으면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일이어서, 비판 여론을 의식해 당분간은 활동을 자제하겠지만 이내 경영 활동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인사는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부회장을 석방하는 건 경영에 나서 삼성전자의 막힌 투자를 뚫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라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하죠. 대체 우리는 그 겨울에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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