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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 비정상 고용과 갑질 문제

by 생각비행 2021. 7. 27.

지난 6월 26일 서울대 학생 생활관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가 교내 휴게실에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이었으나 그 이면에 서울대 측의 갑질이 있었죠. 오래된 건물이라 5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2년 전인 2019년에도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YTN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 씨는 사망 당일 학생 196명이 거주하는 기숙사를 혼자 청소한 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다른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있었던 2019년 11월 입사해 기숙사 925동 쓰레기 수거 등 미화 업무를 혼자 담당했습니다. 925동은 기숙사 중에서도 건물이 크고 인원이 많아 일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하죠. 코로나19 상황으로 학생들이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 바람에 쓰레기 양이 급증했습니다. 유족의 이야기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고강도 노동에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사망한 시점인 7월에도 1톤이 넘는 쓰레기를 혼자 수거해 처리했다고 하니 과로사가 아닐 수 없죠.

 

출처 - JTBC

 

하지만 과로사의 이면에는 서울대의 조직적인 갑질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소식으로 국민이 공분한 것도 서울대 안전관리팀장의 갑질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 전 군인 출신의 안전관리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군대식 기강 잡기가 시작되었고 업무 강도가 불필요하게 세졌다고 하죠.

 

출처 - JTBC

 

미화 업무는 둘째 치고 청소노동자들의 근무 질서를 잡는답시고 군대식 업무 지시와 함께 청소노동자들이 회의에 펜이나 수첩을 안 가져오면 감점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또 학교 시설물과 조직의 이름을 한문과 영어로 쓰게 하는 등 청소 노동과 하등 상관없는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가 낮은 노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줬습니다. 청소노동자가 기숙사의 준공연도를 왜 알아야 할까요? 그런데 서울대의 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미화팀 업무회의에 참석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정장과 구두로 드레스코드까지 지정하며 옥죄었죠. 

 

출처 - 뉴시스

 

더구나 관리자들은 갑질에 몰두했을 뿐 정작 중요한 업무 분배 등 노무관리에는 무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로 끝에 청소노동자가 숨지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하지만 안전관리팀장은 물론 서울대 측은 아무런 입장 발표도 하지 않으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다 서울대 내에 있는 인권센터에 조사를 의뢰하겠다는 어이없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학생처 산하 기구인데 이번에 갑질에 연루된 학생처장과 기숙사 관장 등이 운영위원입니다. 셀프 조사를 하겠다는 건데 참 어이없는 대응이죠. 이 때문에 유족과 노조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서울대 자체의 대처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서울대 구민교 학생처장은 갑질을 일삼은 안전관리팀장의 행동이 관리자로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두둔하며 청소 업무가 많지 않았다고 변명했는데요. 업무가 많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업무 기록을 공개해 증명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공개하지 않고 있죠. 또한 갑질의 중심에 있는 안전관리팀장은 구민교 학생처장이 석사논문 지도교수를 해준 사이였습니다. 구민교 학생처장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청소노동자의 사망을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가 역겹다"는 등의 글을 썼다가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보직 사임을 하긴 했지만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의 관리자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발언을 지껄이고, 책임자로서 여론의 역풍을 예상 못 했다는 점에서 멍청한 발언이었죠. 

 

출처 - JTBC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한 사람이 아닌 서울대 관리자 전체가 이런 비도덕적이고 멍청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사망한 청소노동자가 일한 곳의 한 달치 회의록을 보면 기숙사 관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는 등 갑질을 승인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점수가 낮아 모욕을 준 사건을 두고 정작 책임자들은 직원들의 결속력을 증진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사기 진작이 가능하도록 하라고도 지시했는데 이런 갑질로 어떻게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건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서울대 측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든 잊히길 바라는 겁니다.

출처 - 뉴스1

 

결국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서울대생들이 교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여 구조적 문제 개선과 서울대 측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명백한 갑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한 죽음이기에 그 책임을 서울대 본부와 기숙사가 져야 마땅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한편 이번 사건을 청소노동자와 중간관리자 사이의 문제로 국한하려는 시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이 2018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학교에 직접 고용됐지만, 기존 '법인 직원'과 다른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노동자들은 관악학생생활관 관장에게 발령과 인사 관리를 받는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으로 법인직원과 대비되는 '자체직원' 또는 '관악사 직원'으로 불렸습니다. 이런 서울대의 이중적 고용구조의 문제는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 있습니다. 서울대에는 총장이 직접 임명하는 법인직원과 서울대학교 소속기관 등에서 자율적으로 임명하는 자체직원이 있습니다. 자체직원은 사실상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처우를 받고 있습니다. 자체직원은 각 소속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채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죠. 

 

출처 - 뉴시스

 

코로나19로 1년 6개월 이상을 지내는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황을 맞이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든 돌아가는 까닭은 청소노동, 배달노동, 택배노동 등 숱한 일상의 노동을 누군가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에 젖어 갑질이나 일삼는 자들이 사회에 어떤 유익을 끼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망한 청소노동자 이모 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조의를 표하며 서울대가 속히 책임 있는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하길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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