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하면 젠더 갈등 해결될까?

대선이 가까워지니 매번 되풀이되던 논란이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바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라는 주장입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유승민은 대선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습니다. 이번에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된 이준석 역시 여성을 공격하는 걸로 재미를 봤기 때문인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여가부 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출처 - 인천in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니 폐지해야 한다고 적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2017년 당시에도 대선 공약으로 여가부 폐지를 내건 바 있습니다. 같은 날 이준석 대표도 SBS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같은 것들이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안 좋은 방식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출처 - CBS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역시 문재인 정부의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오히려 조장한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여가부 폐지 논의가 시작됐던 걸 생각해보면 사회의 빠른 변화와 달리 국민의힘은 참으로 구태에 찌든 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뉴스1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48.6%가 여가부 폐지에 공감한다고 답한 것을 보면 여가부가 한쪽 성별만 지원한다거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숙고해야 할 지점은 있다고 봅니다. 여가부가 일을 잘못한 점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일을 하고 성과를 냈지만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여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측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여가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문 증언집을 만들었지만 2년 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올해 초에 밝혀졌는데요, 이는 분명 일을 잘못한 부분에 속하겠죠. 2019년 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의 증언을 담은 책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의 영문 번역본을 완성하고도 여가부가 위안부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와 저작권 침해·분쟁 우려 등을 이유로 출판을 미루고 최초 집필자의 이용 신청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해외에 알릴 중요한 근거 자료인데도 저작권 논란 등을 우려해 여가부가 지나치게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출처 - YTN

 

정부의 한 기관에 대해 비판할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예 폐지하라는 주장은 지나친 발상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이후 해경을 해체해버린 우매함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못한다고 해체해야 한다면, 검찰개혁에 속도를 못 내는 법무부도 해체하고,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 못하는 고용노동부도 해체하고, 사교육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교육부도 해체해야 할까요? 특정 부처를 없애는 때는 현실에서 그 부서가 다루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여야 하지 않을까요? 폐지 논란이 유독 여가부에 집중되는 걸 보면 이건 단순히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애초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해 일하는 기관도 아닙니다. 여가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기본적으로 여성뿐 아니라 양성 모두를 대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성할당제도 정부 업무에서 추진되는 것은 없고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이행되고 있습니다. 2015년 이후 국가 지방직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의 혜택을 받은 건 전체의 75% 정도가 남성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지요? 여가부의 정책을 만드는 자문위원회 구성 역시 40%는 남성입니다. 이런 사실만 봐도 여가부가 여성들끼리 모여 여성 정책만 다루는 부처가 아닌 셈이죠.

 

출처 - MBC

 

한편 여가부는 여성뿐 아니라 청소년, 다문화가족 등을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 상담 및 의료비, 집단 치료 지원 등의 업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3년 피해자가 불리했던 성폭력 관련 법들을 개정하는 데에 여가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2차 가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법률에 이를 정의한 것도 여가부였고요. 성폭력 피해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노력에는 여성 피해자뿐 아니라 남성 피해자 역시 고려되었습니다. 2015년 최초로 성인 남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안내서라는 매뉴얼을 낸 곳도 여성가족부였죠. 이처럼 '여성만을 위한 일을 하기 때문에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우선 정확한 사실 확인부터 하셔야 할 듯합니다.

출처 - 여성가족부

 

여가부가 예산을 어마어마하게 받아 여성에게만 투여하고 있다며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분도 계시는데요,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여가부 예산은 2020년 기준 1조 1264억 원으로 정부 부서 예산 중 가장 적습니다. 업무 연계성이 높은 보건복지부가 82조 5000억, 고용노동부가 30조 5000억, 문체부가 6조 4000억에 달하니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가장 적은 예산으로 여성, 가족, 청소년 업무를 떠맡고 있는 부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인원 구성은 또 어떨까요? 한 단계 아래인 문화재청, 기상청보다도 인원이 적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비슷한 수준인데, 이를 보면 위원회 규모의 적은 인력으로 부의 업무를 수행해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출처 - 세계경제포럼 ‘2020 세계 성격차 보고서’

 

만약 여가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너무나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 인한 문제는 아닐까요?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직장에서 다른 팀보다 예산을 10분의 1만 받고 10명분의 일을 해야 하는데 인원 보충을 기대할 수 없다면 잘 해낼 자신이 있습니까?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20 세계 성격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53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성별임금격차 역시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죠.

 

출처 - YTN

 

철마다 등장하는 여가부 폐지 주장이지만, 이번에는 '백래시'의 성격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코로나19와 맞물린 어려운 취업 현실 등 젊은이들이 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어쩌면 가장 약한 대상에게 떠넘기기 식으로 해결하려는 정치권의 비겁한 대응은 아닐까요? 《여성신문》이 1월 21일 보도한 <[여성가족부 20년] 여성가족부, 부총리격으로 위상 높여야>라는 기사를 보면 여가부를 향한 비난과 조롱을 확산시킨 데 언론이 일조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사강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과 홍지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 페미니즘, 여성가족부, 여성혐오’ 논문을 보면 2016년 강남역 사건부터 2018년 미투 운동 기간 동안 성폭력과 여성가족부를 다룬 기사 124개를 분석한 결과, 보수언론 기사들은 여가부를 이기적이거나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주체, 무능력한 주체, 존재감이 없는 주체로 재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성평등과 가정의 안정 없이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와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죠. 갈등이나 분노, 분열을 조장하는 잘못된 정치인과 언론에 현혹되지 말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입니다.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