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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제 개정 논의 시작할 때!

by 생각비행 2021. 2. 3.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김용균 사건 같은 산업 현장 사망 사건 등 소비자와 노동자가 오랫동안 바랐던 법안이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0년 전태일 열사 사망 50주기를 맞아 다수의 노동 관련 단체가 요구한 법안 중 하나였죠. 또한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2020년 9월 국회에 청원을 올려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국회에서 통과되리라고 여긴 법이었습니다.

 

출처 - 뉴시스

 

김 이사장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측이 낸 법안은 사업주가 유해, 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원청의 처벌과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일하다 죽는 사람이 더 이상 없도록 하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 소재와 처벌을 확실히 하자는 것이 주된 입법 취지였습니다. 이 뜻을 받아들여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법안 발의를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최종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르면 기업의 책임으로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재해가 발생했을 때 회사의 대표나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법인이나 기관이면 5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여기에 5인 미만의 기업은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기간을 줬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직무유기를 범해 중대재해를 일으킬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원안의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은 아예 삭제됐습니다.

 

 

출처 - JTBC

 

이는 발의한 원안에 비해 벌금의 상한이 높아졌을 뿐 전반적으로 처벌 수위는 턱없이 낮아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원안은 징역 2년 이상 또는 벌금 5억 이상이었죠. 정부안은 징역 2년 이상 또는 5000만 원 이상 10억 이하 벌금이었고요. 그런데 최종 통과된 안은 징역형이 1년으로 낮아지고 벌금의 하한도 사라졌습니다. 영세사업자나 소상공인 업주의 타격을 핑계 삼아 징역형을 낮춘 것도 코웃음이 나지만 벌금의 하한선을 없애버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산업재해의 76.6%는 법 적용에서 빠지거나 유예된 영세사업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안전신문

 

산재 사망사고에도 영세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2019년 통계를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245명(61.6%)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300~999인 사업장은 271명(13.4%), 100~299인 사업장은 240명(11.9%), 50~99인 사업장은 180명(8.9%), 1000인 이상 사업장은 84명(4.2%) 순입니다. 이를 보면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안전 환경이 취약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벌금 상한을 경영책임자 10억, 법인 50억으로 규정했다지만 하한선이 없다면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가는 샛길을 뚫어준 셈입니다. 산재사망자 1인당 기업이 내는 벌금은 현재 평균 450만 원에 불과합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죽었지만 기업의 벌금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지금까지 판례와 관행이 이러한데 하한선도 없는 법을 두고 판사들이 알아서 엄히 처벌할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입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합법적으로 기업에게 솜방망이 처벌과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애초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산재가 반복되는 사업장의 재범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법안 제정의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죠.

 

출처 - YTN

 

더불어민주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주민 의원 역시 방송 인터뷰에서 핵심 쟁점에서 뒷걸음질 쳐버렸다며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일부가 빠질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통으로 빠지는 게 과연 산업재해나 시민재해를 막겠다는 취지와 맞는지 아쉬움이 크다고 했죠. 법안 발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의당도 마찬가지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에 대해 영세한 사업장이라 안전 설비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면 지원법을 만들어 안전 설비를 지원하고 지키도록 해야 하는데 그냥 빼버렸다며 비판했습니다.

 

출처 - 중소기업뉴스

 

정의당과 노동계는 이번에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모호한 대표이사 책임, 벌금 하한형 삭제 등에 대해 보완 입법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법 공포 후 시행일까지 1년 동안 규제수준이 보다 완화될 수 있도록 경제6단체 및 중소기업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보완 입법 활동과 동시에 헌법소원까지도 추진해 중소기업인들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의 법으로 시행될 수 있게 힘쓰겠다”라고 역설했습니다.

출처 – 평화뉴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192명이 사망한 이래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 김용균이 사망하기까지 숱한 산업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오랜 시간 투쟁했고 그 끝에 결국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걸까요? 

 

출처 - 일과건강

 

아닙니다. 노동계의 요구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법인데도 불구하고 국민의힘과 경영계는 죽는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못 하게 하는 악법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대체 이들은 사람 목숨을 얼마나 싸게 보기에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자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런 이들 때문인지 5인 미만 사업장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사업체를 4명 이하로 쪼개는 편법이 판을 칠 가능성을 점치는 부정적인 여론도 들끓었습니다. 또한 산재가 발생해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피해자만 꾸준히 나오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출처 - 참여연대

실제로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산업재해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0일에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유연탄 저장 업체의 협력업체 소속 기계 정비원 A씨(33)가 물류설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다음 날인 11일에는 광주 광산구 지죽동 플라스틱 재생 사업장에서 B씨(51)가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2일에는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C씨가 9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15일에는 수원시 인계동 라마다호텔에서 불이 나 수도관 동파 공사를 하던 작업자 1명이 사망했고, 함께 일하던 작업자 2명 등 총 8명이 다쳤습니다. 그렇지만 중대재해법의 모호한 규정들 때문에 벌써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출처 - 매일경제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1일 '21년 산재 사망사고 감축 추진 방향 관련 고용노동부 장관 브리핑'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용노동부는 중대산업재해 소관 부처로서 기업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산재 예방과 사망사고 감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21년 산재 사망사고 감축 추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출처 - 고용노동부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 전체에 먼저 사람 중심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을 중시하고 재해를 예방하는 기본 인프라를 갖춰야 합니다. 아울러 기업은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정립해야 하고 노동자는 안전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만족할 단계가 아닌 이유입니다. 오히려 수정 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숱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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