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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심각한 스포츠계 학폭 문제, '스포츠인권' 교육이 답이다!

by 생각비행 2021. 2. 22.

남녀 프로배구 선수의 학교폭력(학폭) 문제가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학폭 미투'로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10년 전의 폭력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에 대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학폭 문제를 '미성숙한 개인의 일탈' 행위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합니다.

 

 

 

출처 - YTN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이런 일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스포츠계에서 폭력적인 말을 하거나 체벌을 통해 운동을 가르치는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척 유혹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또한 성과주의가 만연한 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운동 과정보다 '1등'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때려서라도 혼을 내줘야 좋은 선수를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을 향해 경기장에서 야단을 치는 감독, 코치를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관중과 심지어는 선수의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걸 경기라고 해? 운동장 30바퀴 뛰고 와!"
"또 삼진 먹고 들어오면 경기에서 빼버릴 테니 똑바로 해!"

 

이처럼 폭력과 처벌을 일상적으로 겪거나 일방적인 지시만을 받으며 운동하는 선수의 내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뇌과학과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는 폭력이 선수의 마음과 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폭력에 가까운 처벌을 받은 선수는 자신이 한 실수보다는 처벌 자체에 주의를 쏟게 됩니다. 지난 경기나 실수를 차분하게 돌아보기보다는 벌을 받는 '바로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죠.

 

 

 

출처 - 어린이과학동아

 

우리가 어떤 감정에 확 사로잡히게 되면 신피질에 집중되던 에너지가 번연계와 뇌간으로 흐릅니다.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죠. 갑작스러운 상황이나 위험한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험을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처벌을 받거나 혼이 날 때 인간의 뇌는 그 순간을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운동 지도자나 선배 등으로부터 심한 욕을 듣거나, 폭력인지 훈련인지 구별되지 않는 처벌을 받는 선수는 자기발전보다 '자기방어'에 집중하게 됩니다. 과학은 운동선수가 혼이 나야 잘 배우는 게 아니라 혼날 걱정 없이 온전히 훈련과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더 잘 배운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친 말과 처벌이 아니라 적절한 동기 부여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하는 진솔한 대화임을 알아야 합니다.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폭력에 오랜 시간 노출된 채 성장한 선수는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혼이 나거나 처벌을 받아온 선수는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자기도 모르게 원치 않는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경기력을 제대로 펼치기 어렵습니다. 말로 윽박지르거나 체벌하면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고 잘 배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어느 정도의 폭력이 운동의 필요악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마음과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신입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평정심,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인 플레이는 오히려 혼난다는 두려움 없이 최대한 편안한 심리 상태에서 훈련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출처 - 픽사베이

 

우리는 몽둥이로 때리거나 주먹으로 구타하거나 큰 소리로 욕하는 경우만을 폭력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운동선수에게 상처를 주고, 또 후유증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폭력은 은근하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운동선수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문화는 선수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입니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혼이 나는 경험을 반복하며 지도자의 주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길들여진 선수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종목이든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사실상 선수가 거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하죠. 그러므로 감독이나 코치의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움직이는 선수를 만들기보다는 선수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선택을 하며 배우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가르침에만 익숙해지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선수, 더 나아가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시작하는 시간은 있어도 끝나는 시간은 없는 무리한 훈련도 폭력입니다. 선수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해진 훈련 시간을 넘겨 지나치게 운동을 시키는 방식도 바뀌어야 할 나쁜 관행입니다. 훈련 후에는 충분한 휴식이 주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선수는 혹독한 강훈련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수는 각각의 훈련이 어떤 강도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의 팀 노아케스 박사는 뇌과학의 관점에서, 피로는 육체적인 상태가 아니라 운동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뇌에서 만들어진 감정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예상되는 운동 시간과 그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피로감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한창 성장기인 초·중·고등학교 선수들은 부상 위험이 큽니다. 몸이 다 자라지 않아서 관절과 근육이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운동을 하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몸 상태를 잘 살피고 적절한 휴식과 회복 시간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아프다는 말을 제대로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우리나라 운동부에 만연해 있죠. 혼이 날까 봐, 정신력이 약한 선수로 여겨질까 봐, 머뭇거리고 전전긍긍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운동선수의 부상 투혼을 칭찬하는 문화 속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부상 사실을 알리는 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 할 나이에 일찍 은퇴하는 유망주 선수들도 많죠.

 

 

 

출처 - KTV

 

마지막으로 우리가 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폭력의 경험이 피해자의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대물림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11월 7일 공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와 스포츠 (성)폭력 판례 분석 결과'를 보면 숱한 학생선수들이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을 경험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상당수의 선수들이 자신이 당한 폭력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입니다. 신체 폭력을 경험한 뒤 느끼는 감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38.7%의 선수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답했습니다. 폭력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지내는 시간 속에서 폭력을 실력 향상을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이렇게 폭력을 내면화한 선수는 자연스럽게 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운동부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폭력적인 문화가 대물림되는 이유인 셈이지요.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스포츠계에서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학폭 미투는 '스포츠인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이념'에서 밝혔듯이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운동선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우정과 연대 그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에 기반한 상호 이해를 요하는 올림픽 정신에 입각하여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자존감, 타인에 대한 존중감, 긍정적 문제해결 능력, 공정과 공평, 신체 능력의 회복 및 심리적 회복 방법, 공감 능력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습니다.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이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할 때입니다. 과거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이미지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당연히 신체를 건강하게 할 필요가 있죠. 하지만 그것이 스포츠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건강한 신체'를 유일무이한 가치로 보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왜소한 사람은 스포츠에서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1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전하게 운동하기 위해, 장애인과 평등하게 활동하기 위해, 성평등한 스포츠 문화를 이루기 위해 이제라도 모두가 '스포츠인권'을 배우고 권장하여 올바르게 실천할 때입니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인권 침해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의 문제로 인식할 때 건강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갈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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