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안타깝게도 의인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임세원 교수가 담당 환자인 박모 씨를 진료하던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자기 몸만 지키려면 충분히 살 수 있었으나 남을 챙기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임세원 교수를 추모하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진료 환경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임세원 교수의 담당 환자였던 박모 씨는 예약없이 찾아왔습니다. 조울증으로 격리 입원 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후 수개월간 병원을 찾은 적이 없었다고 하죠. 정규 진료 시간을 훌쩍 넘긴 저녁에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를 임 교수는 마다하지 않고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모 씨는 상담 도중 문을 잠그고 준비해간 흉기로 임세원 교수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KBS

 

당시 진료실에는 만약의 상황에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임 교수는 그곳으로 일단 몸을 피했으나 간호사 등 밖에 있는 이들이 걱정되었던 그는 대피 공간을 나와 "빨리 피하라"고 소리쳤다고 하죠. 남을 피하게 하려다 흉기에 찔린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임세원 교수는 20여 년간 우울증, 불안장애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자살 예방에 힘써온 것으로 알려졌죠. 1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고,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했으며,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KBS

 

이 저서에서 임 교수는 자신도 3년여를 우울증을 앓았으며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허리 디스크로 생긴 통증이 낫지 않자 차를 몰고 나가 난간을 들이받아 죽으려고 했으나 차 열쇠를 찾다가 잠든 가족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하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관해 얘기합니다.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임 교수는 환자와 공감하는 삶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SNS에 환자를 보듬는 마음이 묻어나는 글들을 많이 썼기에 인터넷상에 그를 추모하는 글이 수없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12월 31일 오후 코트를 입고 검은색 모자를 쓴 30살 남성 박모 씨가 집을 나섭니다. 박모 씨는 마트에 들러 흉기를 산 뒤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박모 씨는 경찰에서 "임 교수에게 '내 머리에 소형 폭탄을 넣고 장기는 어디에 팔아먹었냐'며 욕설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죠. 경찰은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 씨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경찰은 박모 씨가 '양극성 정서장애를 앓던 중 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모 씨가 2010년 군 제대 이후 경기도 하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면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되었죠. 박모 씨의 망상은 지난 2015년 강제 입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조울증을 앓고 있던 박모 씨가 가족의 동의로 입원을 하게 되자 당시 주치의였던 임세원 교수에게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출처 - KBS

의협은 새해 첫날 이번 사건이 예고된 비극이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국회에서 응급의료 종사자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반 진료실에서 의사가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졌으니까요. 실제로 지난해 의료 방해 행위로 신고, 고소된 건수는 893건으로 하루 평균 2~3건 수준으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중 폭행이 가장 많습니다. 정신과의 경우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는 병인 까닭에 정신병동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환자로부터 신체 손상을 입을 위험이 다른 의료진보다도 285.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병원 진료실 내 대피 통로(후문)와 비상벨 설치, 보안 인력 배치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의료 현장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할 시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해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과 협조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의료인 안전 대책을 위한 법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 윤종필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9일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건의료인의 신변보호를 위해 경찰서와 연계된 긴급출동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환자 및 보호자가 의료진을 폭행할 때 가중처벌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죠.

 

출처 - KBS

 

임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의료계는 임세원법을 발의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사건이 벌어지게 될 때 현실적으로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진료 공간에 비상벨과 대피 공간이 있다고 해도 진료 특성상 기본적으로 의사와 환자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위해를 가하겠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막을 방법이 거의 없죠. 임세원 교수도 환자의 이상 행동을 보고 비상벨을 눌렀지만 안전요원이 도착했을 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후였습니다. 그렇다고 의사가 환자와 격리된 상태에서 정신과 진료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래도 임 교수의 죽음 이후 병원들도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서울대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상시 배치된 보안 요원을 1명에서 2명으로 증원했고 응급실 등 일부 근무지 보안원을 ‘원내 폴리스’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원내 폴리스는 삼단봉, 전기충격기 등 진압 장비를 착용합니다. 다른 병원들도 보안 인력 근무시간이나 인원을 늘리거나 비상벨 설치 등의 대책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한두 가지 개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안전요원 배치, 폭행 시 처벌 강화 등과 같은 단순한 조처보다 이런 환자들이 지역사회와 시설에서 보호받으며 치료를 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와이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들을 핍박하는 핑계로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인 박모 씨가 앓고 있는 조울증의 경우 꾸준히 치료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높고 격리 입원 치료를 받다가 1년여간 진료를 받지 않아 증상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경우였습니다.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이 정확히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의료계에서 피의자 범행 동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정밀한 정신건강의학적 감정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작년에 한창 언론, 방송에 다뤄졌다시피 의사를 공격하는 사람은 정신질환자가 아니어도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강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보다 평생토록 정신질환자들을 보듬으며 살았던 임세원 교수가 싫어할 일일 테니까요. 평생을 헌신하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임세원 교수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연초에는 지난해에 좋지 않았던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가급적 좋은 기억과 더불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요,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망언을 하는 자들이 생겨 벽두부터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멀리는 초계기 레이더 논란을 일으킨 골치 아픈 이웃 일본이 있고, 가까이는 구시대적인 세계관에 파묻힌 학살자 전두환 같은 이가 있습니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 씨가 최근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지칭하는 망언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죠.


출처 - MBC


새해 벽두부터 극우매체인 뉴스타운TV와 인터뷰를 한 이순자는 전두환의 재판 기피 이유인 알츠하이머를 언급하며 "조금 전의 일을 기억 못 하는 사람한테 광주에 내려와서 80년대 일어난 얘기를 증언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라고 주장했고 한술 더 떠서 "광주 5.18 단체도 이미 얻을 거 다 얻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느냐"며 소송을 제기한 광주 5월 단체들을 폄훼했습니다. 이때 나온 망언이 바로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 인터뷰를 한 뉴스타운TV는 대표가 지난 2017년 박근혜 파면 당일 사망, 부상자가 발생한 과격 집회,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고, 지만원과 더불어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하는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곳입니다. 애초 극우 지라시라 불려도 시원찮을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라고는 해도 도를 넘은 망언이었죠. 학살자 전두환과 부창부수여서 그런 걸까요?


출처 – MBC 유튜브


국민들과 시민단체, 정당들은 분기탱천해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은 실성에 가까운 망언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쓰며 전두환과 이순자의 망언을 비판했습니다. 여기서 자유한국당은 예외입니다. 전두환을 비롯한 친일과 군사독재의 면면을 배출하고 또 이어온 자유한국당은 국회 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식 논평을 낸 다른 정당들과 달리 단 한마디의 논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얼굴에 침 뱉기인 줄은 아나 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했던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전두환은 회고록을 통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뒤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지난 7일 구인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전두환은 그간 알츠하이머, 독감 등을 핑계로 재판에 불참했는데, 광주지법이 3월 11일로 공판기일을 다시 잡은 뒤 또다시 불출석할 경우 강제구인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겁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법원은 구인영장을 발부할 수 있고 강제로 재판정에 인치하기도 합니다. 구인영장 발부는 전두환이 꼼수를 부려 재판에 나오지 않을 경우 법원이 강제 소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전두환을 추종하는 무리가 지난 7일 전두환의 집 앞에 모여 법원에서 전두환을 강제구인하러 온다면 우리를 먼저 밟고 가라며 시대착오적인 충신 행위를 펼쳤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200여 명이 참석한 이 집회에 5.18 관련으로 여러 차례 소송당하고 패소한 지만원이 나서서 가짜뉴스를 또 퍼뜨렸습니다. 차고도 넘치는 증거가 있는데도 아직도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소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가련합니다.


출처 – 뉴스1


이번에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확보한 미국의 3급 비밀전문 〈전두환 대통령 광주방문: 뒤섞인 신호〉에 따르면 전두환은 광주를 총칼로 진압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지 4일 만인 9월 5일 사건 현장인 광주를 찾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전남도지사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이제 더 이상 광주사태를 논의하면 안 될 것이다"라며 "이 지역이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고 다른 지역보다 더 모범적이 되라"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말을 했다고 하죠. 수많은 시민이 군홧발에 짓밟히고 총탄에 죽어간 학살이 일어난 지 넉 달도 안 돼 직접 현장을 찾은 전두환의 저의는 무엇이었을까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조기에 진화하여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학살해놓고 자기 이익에만 눈이 멀었던 학살자 전두환이 29만 원으로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출처 - 이하


이 때문인지 전두환이 죽었을 때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의 과반인 61.5%가 반대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국립묘지 안장을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고 하죠. 사면이 됐으므로 안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은 26.8%에 그쳤습니다. 성향별로 보면 진보층과 중도층은 압도적으로 반대했으며, 보수층도 반대와 찬성이 같은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누리꾼들이 5.18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밟을 수 있는 위치라면 국립묘지 안장도 인정한다며 전두환의 무책임함을 조롱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5.18 관련 단체들은 이번 강제구인 소식을 듣고 "이제 전 씨가 스스로 걸어 나오든지, 아니면 강제소환돼 재판정에 나오는 두 가지 선택 사항밖에 없게 됐다"며 환영했고,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전 씨가 떳떳하다면 재판정에 나와 조 신부와 전 씨 중 누가 사탄인지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구인영장 발부를 계기로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평범한 가치를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학살자가 피해자들의 땅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019년에도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미투운동은 계속됩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2014년 여름부터 조재범 코치가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한 것은 물론 강제추행뿐 아니라 성폭행을 일삼았다며 지난달 17일 그를 고소했습니다. 성폭행이 시작됐다고 밝힌 2014년은 심 선수가 만 17살, 고등학교 2학년 때여서 더욱 충격적인데요, 이때부터 평창올림픽 개막 두 달 전까지인 4년 가까이나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가해자인 조재범 코치는 범행 때마다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느냐"며 협박하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행사했다고 하죠. 폭력을 이용한 성범죄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출처 – SBS


현재 조재범은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1월 중순께 훈련 과정에서 심석희 선수 등을 비롯한 4명에게 폭행을 가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법정 구속 중입니다.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조재범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들을 때렸다는 얼토당토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선수들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폭행했는데도 겨우 징역 10월에 불과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자 심석희 선수가 용기를 내어 나선 겁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재범이 2심 재판에서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죠.


출처 - TV조선


심 선수는 이런 폭행과 성범죄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상습적으로 당해 본인에 대한 상처가 말할 수 없이 많이 누적돼 고통이 매우 심한 상태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메달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지도자의 말이라면 법처럼 따르게 하는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인 훈련 방식도 문제거니와 알리지 말라는 협박과 감시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심 선수는 운동을 시작한 6살 때부터 무차별적으로 맞았고 고등학생이 되자 성폭행까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선수 생활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가족에게조차 얘기를 꺼내지 못했으나 심 선수가 용기를 낸 건 팬에게서 온 편지 덕분이라고 합니다. 올림픽이든 그 이후든 선수 생황을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는 심 선수가 자신에게 너무 큰 힘이 됐다고 고백하는 편지였다고 하죠.


출처 - SBS


경찰의 1차 조사 결과 미성년자였을 심석희 선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 운동을 꿈으로 가지라고 말을 꺼내기 무서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조사 결과 조재범은 2차 가해를 통해 폭행 피해자 4명 중 3명한테서 합의를 받아냈다고 합니다. 애초 폭행 피해자는 7명이었으나 3명은 두려운 나머지 피해자 진술을 거부한 터라 4명으로 재판이 시작된 것이었죠. 조재범은 쇼트트랙 현직 선수들까지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했고 피해자들의 가족에게까지 찾아왔다고 합니다. 운동을 계속시키고 싶으면 합의하도록 종용하는 2차 가해를 한 셈입니다. 성폭력과 별도로 여러 명의 선수를 전치 3주가 넘게 나오게 때린 사실이 명백한데도 1심에서 징역 10월밖에 나오지 않은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참으로 끔찍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를 보고 합의를 해줬던 2명의 선수가 조재범에 대한 합의를 취소하면서 용서가 아니라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당시 잘못을 뉘우쳤다고 하던 조재범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가식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심석희 선수 한 사람의 용기가 다른 선수들이 미투운동에 동참하게 하는 용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에 해당하는 혐의는 당연합니다. 조재범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등을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 수사 중이라고 하죠. 여기서 문제는 성범죄의 범행 장소가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빙상연맹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습니다. 심석희 선수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체육계에 존재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체부는 이날 부랴부랴 체육계 전수조사 등의 성폭행 근절 대책을 사후약방문으로 내놓았습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것보다야 낫긴 합니다. 우선 체육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종전보다 확대하는 동시에 체육단체 관련 규정을 정비해 성폭력 관련 징계자는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 종사를 막을 계획입니다. 체육계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체육계에서 먹고살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죠.

 

금메달리스트조차 무차별적인 폭행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면 그동안 여성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 성폭력 피해 신고·상담건수가 지난해 동안 348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성폭력 신고·상담건수는 93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수사 의뢰나 고발을 단 1건도 하지 않았다고 하죠. 이제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때입니다. 스포츠계 엘리트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조사와 성찰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미투 관련 법안에 대해 국회가 응답해야 합니다. 


출처 - SBS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주목받은 빙상계 사건은 '조재범 성폭행 사건'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규정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죠. 심 선수의 용기 있는 결단을 계기로 가해자에 대한 엄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배상, 그리고 체육계 전체에 성폭력 전과자가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하는 조처가 필요합니다. 오늘 선수촌에 복귀해 월드컵,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전념하겠다며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심석희 선수에게 경의와 응원을 보냅니다.

2019년을 맞이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큰 틀을 놓고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각국의 이익을 위해 셈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겨울 동안 교착 상태에 빠진 건 아닌가 싶었던 북미 관계가 신년사를 계기로 다시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출처 - 뉴스1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미국 대통령과 언제든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면서 미국에 다시 공을 넘겼습니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핵보유국 지위와 비핵화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대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시각으로 1일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시차 때문에 하루가 걸리긴 했지만 북한과 미국 지도자가 각각 새해 첫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의지를 피력한 것입니다. 긍정적 메시지 교환이 지지부진했던 북미 비핵화 협상에 신년사를 통한 관계 회복이 돌파구가 될지 주목됩니다.


그간 북미 간의 대화가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단기적이고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실무급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북한은 실무선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통 큰 협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지난 6월 북미정상회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한꺼번에 양보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데 대한 견제가 매우 심한 형국입니다. 이 때문에 2019년 북미 양국 모두 평화로 가는 협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다각도로 자신의 수단을 확보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연이어 던지기 위함인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일주일 후인 지난 8일 전격적으로 제4차 북중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과 1시간가량 제2차 북미정상회담 사전 조율과 북중 관계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정상은 올해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서로 노력함과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정세안정 노력에 대한 중국의 지지 등을 재확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다 보니 양측의 교류 확대와 관계 강화도 논의되었겠죠.


출처 - 경향신문


이번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앞으로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향한 선행 메시지라는 평가도 많습니다. 보통 방중 마지막 날이나 사후에 보도하던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 사실을 보도한 것부터 이례적이었습니다. 이는 정상 국가 지도자들이 외국 방문 시 미리 공지하고 공개적으로 가는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 역시 정상 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편 미국이 북미 협상 교착 상태 때 매번 중국 배후설을 제기해왔기에 김 위원장의 비공개 방중이 이런 의구심을 확대했다는 관점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중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북중이 밀월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이외에도 중국이라는 경제, 외교적 옵션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미국에 대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중국으로서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여 이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지난해 극한으로 치달았던 미중 무역 갈등 양상을 보면 새해 벽두부터 이런 외교적 과시를 하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나쁠 게 없는 상황인 셈이죠. 미국은 이 북중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오는 29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밝힐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발표한 〈2019 국제정세전망〉 보고서는 올해 한반도 정세의 최대 변수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선순환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북미 관계가 남북 관계를 제약하는지가 될 것이라며 한미 공조가 다시 양국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탐색전을 이어갈 것이며, 북핵 협상은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모두가 대화를 원하고 있는 만큼 평화 분위기가 최소 2~3년은 지속하리라고 전망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함께 독립을 외쳤던 남과 북이 두 체제로 나뉘어 수십 년을 지냈습니다. 인류의 큰 진전은 전쟁이나 분열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발걸음에서 나타났습니다. 삼일운동의 정신은 향후 100년을 이끌어갈 국가적인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공공의 선과 자유, 정의로움, 존중 등이 이 땅에 당연한 가치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걷다 보면 한반도에도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이루는 날이 찾아오겠죠. 새로운 기대와 새로운 마음으로 2019년을 맞이한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2018년과 다름없이 2019년에도 생각비행은 사회에 필요한 책을 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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