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조재범 성폭행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by 생각비행 2019. 1. 10.

2019년에도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미투운동은 계속됩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2014년 여름부터 조재범 코치가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한 것은 물론 강제추행뿐 아니라 성폭행을 일삼았다며 지난달 17일 그를 고소했습니다. 성폭행이 시작됐다고 밝힌 2014년은 심 선수가 만 17살, 고등학교 2학년 때여서 더욱 충격적인데요, 이때부터 평창올림픽 개막 두 달 전까지인 4년 가까이나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가해자인 조재범 코치는 범행 때마다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느냐"며 협박하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행사했다고 하죠. 폭력을 이용한 성범죄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출처 – SBS


현재 조재범은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1월 중순께 훈련 과정에서 심석희 선수 등을 비롯한 4명에게 폭행을 가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법정 구속 중입니다.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조재범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들을 때렸다는 얼토당토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선수들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폭행했는데도 겨우 징역 10월에 불과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자 심석희 선수가 용기를 내어 나선 겁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재범이 2심 재판에서 엄벌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죠.


출처 - TV조선


심 선수는 이런 폭행과 성범죄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상습적으로 당해 본인에 대한 상처가 말할 수 없이 많이 누적돼 고통이 매우 심한 상태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메달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지도자의 말이라면 법처럼 따르게 하는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인 훈련 방식도 문제거니와 알리지 말라는 협박과 감시 때문에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심 선수는 운동을 시작한 6살 때부터 무차별적으로 맞았고 고등학생이 되자 성폭행까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선수 생활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가족에게조차 얘기를 꺼내지 못했으나 심 선수가 용기를 낸 건 팬에게서 온 편지 덕분이라고 합니다. 올림픽이든 그 이후든 선수 생황을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는 심 선수가 자신에게 너무 큰 힘이 됐다고 고백하는 편지였다고 하죠.


출처 - SBS


경찰의 1차 조사 결과 미성년자였을 심석희 선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 운동을 꿈으로 가지라고 말을 꺼내기 무서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조사 결과 조재범은 2차 가해를 통해 폭행 피해자 4명 중 3명한테서 합의를 받아냈다고 합니다. 애초 폭행 피해자는 7명이었으나 3명은 두려운 나머지 피해자 진술을 거부한 터라 4명으로 재판이 시작된 것이었죠. 조재범은 쇼트트랙 현직 선수들까지 동원해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했고 피해자들의 가족에게까지 찾아왔다고 합니다. 운동을 계속시키고 싶으면 합의하도록 종용하는 2차 가해를 한 셈입니다. 성폭력과 별도로 여러 명의 선수를 전치 3주가 넘게 나오게 때린 사실이 명백한데도 1심에서 징역 10월밖에 나오지 않은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참으로 끔찍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를 보고 합의를 해줬던 2명의 선수가 조재범에 대한 합의를 취소하면서 용서가 아니라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당시 잘못을 뉘우쳤다고 하던 조재범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가식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심석희 선수 한 사람의 용기가 다른 선수들이 미투운동에 동참하게 하는 용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에 해당하는 혐의는 당연합니다. 조재범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등을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 수사 중이라고 하죠. 여기서 문제는 성범죄의 범행 장소가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빙상연맹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습니다. 심석희 선수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체육계에 존재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체부는 이날 부랴부랴 체육계 전수조사 등의 성폭행 근절 대책을 사후약방문으로 내놓았습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것보다야 낫긴 합니다. 우선 체육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종전보다 확대하는 동시에 체육단체 관련 규정을 정비해 성폭력 관련 징계자는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 종사를 막을 계획입니다. 체육계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체육계에서 먹고살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죠.

 

금메달리스트조차 무차별적인 폭행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면 그동안 여성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 성폭력 피해 신고·상담건수가 지난해 동안 348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성폭력 신고·상담건수는 93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수사 의뢰나 고발을 단 1건도 하지 않았다고 하죠. 이제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때입니다. 스포츠계 엘리트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조사와 성찰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미투 관련 법안에 대해 국회가 응답해야 합니다. 


출처 - SBS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주목받은 빙상계 사건은 '조재범 성폭행 사건'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규정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죠. 심 선수의 용기 있는 결단을 계기로 가해자에 대한 엄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배상, 그리고 체육계 전체에 성폭력 전과자가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하는 조처가 필요합니다. 오늘 선수촌에 복귀해 월드컵,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전념하겠다며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심석희 선수에게 경의와 응원을 보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