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등을 이용해 최대한 사람의 신체에 가깝게 만든 성인용품, 이른바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리얼돌 수입을 허가하는 내용의 판결이 나온 뒤 여성계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리얼돌 수입을 기다려왔던 남성들은 리얼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어 성대결 양상까지 보입니다.
출처 - KBS
우리나라에서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2017년 한 리얼돌 수입업체가 행정소송을 걸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세관은 리얼돌이 관세법을 어기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이유로 수입을 규제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수입 규제는 적법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며 1심을 뒤집었습니다.
출처 - KBS
그런데 문제는 대법원판결이 나고부터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리얼돌에 대한 커스텀 주문 제작을 해주겠다는 광고가 나오면서부터죠. 해당 업체는 활동 중인 여성 연예인의 얼굴이나 사진만 보내주면 주문자가 원하는 얼굴로 리얼돌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리얼돌 그 자체만으로도 법원의 판결이 엇갈릴 정도로 뜨거운 문제였는데, 실존하는 사람의 얼굴이나 체형 등을 그대로 따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했으니, 초상권부터 시작해 개인의 인격권 등 수많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습니다.
출처 - KBS
여기에 더해 아동 성착취에 대한 우려까지 불거졌습니다. 국산 리얼돌 판매 업체는 신장 100센티미터의 아이 몸에 가슴만 D컵으로 만든 리얼돌을 판매옵션에 넣고 있습니다. 리얼돌을 허용하고 있는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아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아동 크기의 리얼돌은 유통을 금지하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아청법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삽시간에 20만 명을 넘는 사람이 서명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리얼돌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법원 판결에서 명시하듯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 판단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증장애인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리얼돌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성관계를 하기 힘든 장애인들도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됐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 리얼돌에 대한 수요를 얘기하기도 합니다. 연예인이나 지인, 아동을 본뜬 리얼돌은 규제할 일이긴 해도 리얼돌 자체를 금지하는 건 지나치다는 입장인 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에 대해 여성단체는 아동의 모양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 리얼돌 자체를 여성혐오의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대법원판결은 국가가 개인의 은밀한 영역에 침범하는 걸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판결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은밀한 영역에서 사용해도 되는 도구나 방법을 국가가 승인한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가슴이 크고 저항하지 않으며 무엇을 해도 받아주는 리얼돌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사용하는 페니스 모양의 딜도와 리얼돌을 동일 선상에 놓고 내로남불 아니냐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갈수록 남성 성기 모양에서 벗어나는 딜도와 갈수록 여성을 닮아가는 리얼돌을 보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성욕 해소의 대체품이 갈수록 사람에 가까워진다는 건 위험한 신호라는 겁니다. 리얼돌이 생기면 성폭력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성운동가들은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인형이 필요하다는 것은 성폭력이 성욕 해소라는 논리라며 성욕은 강간욕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2015년부터 섹스 로봇 금지 캠페인을 벌여온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는 성적 욕구만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얼돌은 사람을 사물로 보게 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며, 리얼돌이 인간을 사물화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에 불과하다고 보는 관점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지난 7일 방심위가 여성 어린이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던 배스킨라빈스 광고를 내보낸 CJENM 계열 방송사 채널에 중징계인 경고를 보냈습니다. 공개 직후부터 소아성애, 성상품화 등을 강조하는 연출 기법을 썼다는 비판이 팽배해 논란에 휩싸인 광고였죠. 당시에도 리얼돌처럼 광고 자체가 여성혐오, 아동성착취라는 주장과 광고는 광고일 뿐이라는 주장이 대립한 바 있습니다.
출처 - BBC
영국의 광고심의 기구인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는 미국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광고와 독일 폭스바겐 광고의 방영을 금지했습니다. 성역할을 정형화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아빠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담고 있고 여성은 주차를 잘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또한 남성은 우주비행사, 멀리뛰기 선수 등 활동적인 모습이지만 여성은 유모차 옆에서 책을 읽는 등 수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습니다. 영국의 광고 심의 기준으로 보자면 광고를 제작할 때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별걸 다 시비 건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이제는 이런 고정된 성역할이 담긴 광고가 실제 사회에 유해함을 끼칠 수 있다며 광고를 금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출처 - BBC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되곤 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백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특정 성별을 착취하거나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겁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리얼돌도 결국 영국의 광고 방영 금지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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