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이른바 지소미아(GSOMIA)를 연장하지 않기로 지난 22일 결정했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외교적 결례 등으로 날카로운 한일 관계 속에서 일본의 적반하장이 심해지고 한일 외교부장관 회의에서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하자 문재인 정부는 군사정보 교류 목적 협정 지속이 우리나라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종료를 결정한 것입니다.
출처 - KBS
지소미아는 '파기'가 아니라 '종료'입니다. 일본 언론이나 우리나라 일부 몰지각한 언론들이 '파기'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파기는 기간 내에 문제가 발생해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판을 깨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종료'는 원래 끝나기로 되어 있던 기간이 되어 자연스럽게 끝이 나는 걸 의미합니다. 노래방에서 시간이 안 됐는데 갑자기 끊어버리면 잘잘못을 다퉈야겠지만, 약속한 시간 동안 노래를 신나게 잘 부르고 종료되면 짐 챙겨서 나가는 게 순리인 것과 마찬가지죠. 노래방 주인이 보너스 시간을 팍팍 넣어줘서 연장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손님과 주인 양쪽이 지킬 건 지키고 관계가 좋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일이겠죠. 지소미아도 연장하려면 한일 양국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하면서도 군사 정보는 계속 받으려 하는 일본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면 일본에 보너스 시간을 넣어주는 게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우리 정부가 판단한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애초 지소미아는 무리하게 맺어진 협정이기에 이런 끝이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소미아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에 체결됐죠.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군사 기밀을 공유하는 게 협정의 뼈대였습니다. 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2급 이하 군사비밀을 공유했습니다. 협정 만료 90일 전에 어느 한쪽이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으로 연장되며 오는 8월 24일이 그 통보 시한입니다.
출처 - JTBC
지소미아는 1945년 광복 이후 한국과 일본이 맺은 유일한 군사협정이었습니다. 처음 얘기가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건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협정이 연기되었죠. 그러던 것이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전격적으로 맺어지게 된 데에는 미국 오바마 정권이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중 행보가 강해지고 있을 무렵 동북아 방위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오바마 정부는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지소미아를 사실상 강요에 가깝게 밀어붙였습니다.
출처 - SBS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협의를 자행했습니다. 미국이 멍석을 깔고 그 위에서 일본과 억지로 손을 잡게 된 한국은 광복 후 처음으로 군사협정인 지소미아를 체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출발한 군사협정이 첫 단추를 제대로 뀄을 리 만무합니다. 2016년 박근혜 당시 국방부 청사에서 있었던 지소미아 조인식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모든 기자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 보이콧을 했을 정도로 졸속으로 맺어진 협정이었습니다. 당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탄핵 요구가 빗발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과거 국정농단 때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과 긴밀한 협의 끝에 도출한 결론입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검토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일 관계 문제로 한미 동맹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안보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지소미아와 관련해선 미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한일 간 소통한 부분을 공유했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따라서 미국은 우리나라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직전에도 미국 측과 소통해 발표문과 입장을 명확히 공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미동맹이 이 일 때문에 흔들릴 거라고 보는 건 기우라는 의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은 문재인 정부의 결정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새입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언론과 접촉을 피했으며, 일본 정부 소식통은 극히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고 방위성 간부들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하죠. 고노 다로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대사를 어젯밤 9시 30분쯤 초치했습니다. 우리 정부 방침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입니다. NHK를 비롯한 언론들은 정규 방송까지 중단해가며 속보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NHK는 통상분야에서 벌어진 갈등의 대항조치로 한국 내에서 지소미아 종료 의견이 나왔다며 한일 간 갈등이 안보 분야로 확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인터넷판에 관련 내용을 전하며 향후 북한에 대한 한일 간 연대에 영향이 발생하게 됐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애초 일본이 시작한 싸움이고, 먼저 잘못된 방법을 써놓고는 적반하장으로 날뛰는 건 이성적이지 못한 모습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우리 통상당국도 WTO에 일본의 경제보복 제소를 서두르는 등 대응 조치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외교 쪽에서 강경하게 대처한 만큼 통상 쪽에서도 보조를 맞추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WTO 제소 등 이 모든 일은 우리나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며 명분도 우리 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일 관계 속에서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우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대변인인 데이브 이스트번 중령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22일 오전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논평을 냈습니다. "미국, 일본과 한국이 단결과 우정으로 협력할 때에 우리 모두가 더 강력하고 동북아시아는 더 안전해진다, 정보 공유는 공동 방위 정책과 전략 수립에 핵심"이라며 "일본과 한국이 함께 견해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길 독려한다, 빨리 해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는데요, 이 논평 내용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미국에 사전 통보됐고 미국도 이를 양해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을 뒷받침합니다. 이스트번 중령의 논평 내용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는 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견해차 해소를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은 것은 오는 24일 지소미아가 종료된 이후에도 한일 간 대화를 통해 입장을 좁혀 갈등을 타개하고 이에 따라 지소미아가 회복되길 원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출처 - JTBC
JTBC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1월 지소미아를 체결하기 전에도 '한·미·일 정보공유협정'(TISA)를 통해 한일 양국은 북핵 등 중요 동향은 주고받아왔다고 합니다. 지소미아는 이 교환 경로를 좀 더 빠르고, 쉽게 만드는 장치였던 것인데, 청와대 관계자는 "지소미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보공백이나 감시공백은 있을 수 없다"며 정보의 효율성을 따져봐도 우리가 불리할 게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청와대 관계자는 지소미아의 절충안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원칙대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JTBC는 한국이 국제협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난할 빌미를 일본에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요? 국민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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