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일본 전시 검열, 일본 우익의 한계 드러내다

일본의 비상식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보다도 평화롭게 교류하고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할 예술 분야에서 말입니다. 지난 8월 1일 일본 나고야에서 시작된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열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예술제 중 하나로 4회째를 맞아 도약을 위해 야심 찬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표현의 부자유전,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최근 일본에서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던 예술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습니다. 이 전시에 우리나라의 부부 조각가인 김서경, 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되어 화제를 모았죠. 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를 함께 지키는 그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개최 당일부터 전시회는 홍역을 치렀습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경제보복과 역사왜곡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우익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는 무엇보다 눈엣가시였기 때문입니다. 소녀상 전시에 대해 일본 우익진영의 테러 예고와 협박성 항의가 잇따랐습니다. 게다가 이때를 노리고 우익적인 일본의 정부 인사와 지자체장들이 전시를 중단하라며 공공연하게 요구했습니다. 행정부의 실질적 집행자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는 이 전시 행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거론하며 전시 중단을 압박했고, 예술제 개최지인 나고야 시장은 시민의 혈세로 일본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전시는 철거해야 한다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소릴 해댔죠. 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않는 건 헌법 위반이라며 예술제의 실행위원회장이자 아이치현지사는 나고야 시장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일본에 있어서도 전후 민주주의의 근간인데 예술 작품인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건 정부에 의한 검열이라는 거죠.


출처 - YTN


항의가 빗발치자 예술제 측은 결국 3일 만에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4일부터는 소녀상뿐 아니라 '표현의 부자유전, 그 이후' 기획전 전시실 자체가 폐쇄됐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5일까지 웹사이트와 아이치 현청에 협박성 메일과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고 하죠. 전시의 표제처럼 일본 정부는 표현의 부자유를 온몸으로 증명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전시의 기획의도를 완성시킨 셈입니다. 과정 전체가 하나의 현대미술 같네요.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전후 일본의 최대 검열이라는 오명과 함께 국제 행사로서의 생명이 끊기게 됐습니다. 정부가 압박하고 우익이 협박하는 등 소란만 피우면 언제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라는 걸 일본이 스스로 증명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술제 측이 3일 만에 물러나 버린 것도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는 대목입니다. 예술제 측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경찰력의 확보나 안전 확보 노력 등의 과정을 건너뛰고 전시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출처 - MBC


물론 일본 우익들의 대척점에 서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연대하는 또 다른 일본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 기자는 세금을 왜 이렇게 불쾌한 전시에 쓰냐고들 항의하는데 불쾌한지 어떤지는 함께 보고 논의하자고 이러한 공공의 장이 오히려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헌법 9조 지키기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어리석음'이란 작품으로 기획전에 함께 참여한 조형가 나카가키 가쓰히사는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이번 사태는 문화의 독립성을 훼손했고 협박과 폭력을 긍정하는 일이 돼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란 나라가 점점 퇴행해 태평양전쟁 시기로 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번 전시에 함께 출품한 한국 작가 임민욱과 박찬경 역시 뜻을 함께해 자신들의 작품도 자진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치 논리로 예술을 검열하는 일에 미술 공간이 굴복한 것이 수치스러우며 이에 항의하기 위해 철거한다는 안내문을 작품 대신 붙였습니다. 불의한 국가 폭력에 맞서 예술가들의 연대가 시작된 겁니다.


출처 – JTBC


이 연대는 '내가 소녀상이다'라는 퍼포먼스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일본 전시 중단을 풀어달라는 국제 청원 사이트에는 전 세계에서 2만 5000명이 서명했고, SNS에는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처럼 옆자리를 비우고 의자에 앉은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검열과 폭력에 주저앉지 않으며 더 넓은 세계의 장으로 그 예술을 퍼뜨려 이 사태를 뛰어넘겠다는 연대 의식의 발로입니다. 소녀상을 통해 일본 국민들이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극우 정권의 두려움이 그들의 검열을 통해 오히려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일로 전시를 닫도록 한 일본 정부를 비판해야지 일본 시민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게 중론입니다. 소녀상 철거를 철회하라고 지지 성명과 시위 등으로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도 많기 때문이죠.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제 곧 시작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한 일본 영화를 내려달라는 요구가 제천시의회로부터 있었다고 하는데요. 고심 끝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측은 예술을 통한 순수 민간 문화 교류인 만큼 일본 영화를 그대로 상영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상영하기로 한 일본 영화는 오히려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화인데 감독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영을 금지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일본 극우와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천시의회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주최 측과 시민들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괜히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려 하지 말고 진짜 상대인 일본 정부와 지자체와의 싸움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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