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부터 직장 안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일명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적용 대상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로 거의 대부분의 업체가 포함됩니다. 원래 금지되어 있던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은 물론이고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아예 일을 시키지 않는 것도 괴롭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음주 강요 역시 괴롭힘에 포함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실 이런 종류의 직장 내 괴롭힘은 유형에 따라 형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또는 기존의 근로기준법으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위한 법을 명시적으로 나타낸 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 내에서 괴롭힘이 끊이지 않고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국가인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생활 중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 업무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한 번 이상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73.3%에 달했습니다. 지금 출근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26.7%에 해당하는 사람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게 더 신기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주 1회 이상 괴롭힘을 당한다고 응답한 직장인만 해도 25%가 넘었으니 직장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괴롭힘 방지법이 필요했던 건 당연합니다.
출처 - JTBC
이번에 개정된 법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매뉴얼에 따르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첫째, 직장 내 관계 또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했는지, 둘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지, 셋째,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켰는지가 핵심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예를 들어 생각하자면 뉴스에 주로 나오곤 했던 일명 '태움'이나, 회식에서 음주, 흡연 강요 그리고 회식 참석 강요 등의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커피나 담배 심부름도 당연히 포함되고 외모 평가나 사생활 관련 질문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외모 평가나 사생활 관련 질문은 직장 내 성희롱에 포함될 수도 있는 문제이니 더욱 주의해야겠죠. 업무와 상관없이 택배를 받아달라거나 허드렛일을 반복적으로 시키는 등 사적 지시를 반복하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하지만 애매한 사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근무 시간 외에 업무 지시를 한 광고회사 상사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일을 수주하여 처리해야 하는 광고업 특성상 마감시간과 업무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는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폭언을 하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업종의 경우도 고객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불가능하죠.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이런 고객의 행위를 예방하고 직원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각 직장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측인 임원 등 고위직은 이제 부하 직원들 무서워 업무지시도 제대로 못 하겠다며 엄살을 부립니다. 반면 직원들은 이제야 좀 숨 쉬며 일할 수 있게 됐다며 기대를 보입니다. 이번 법개정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누가 봐도 하면 안 되는 일들이라 이를 문제 삼는다면 당연히 엄살이고 위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회사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다면 사용자 측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임직원의 단합을 꼭 회식으로 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이런 일이 실제로 업무 성과에 연관이 되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인쿠르트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의 취지는 간명하게 말해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상식적인 소리를 직장에 한정해 다시 한번 규제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라면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법제도의 미비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법안 가이드라인에 등장하는 특별한 사정이나 사회통념 같은 모호한 표현이 사안 별로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안 하는지 안 그래도 애매모호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편 과태료가 500만 원에 지나지 않아 아예 돈으로 덮어버리고 넘어가겠다는 식의 막무가내 업체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죠.
출처 - 연합뉴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자마자 첫 진정은 언론계에서 나왔습니다. MBC인데요, 2016년~2017년 입사 후 계약만료로 퇴사했다가 법원 판단으로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받은 아나운서들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근거해 MBC를 상대로 노동부에 진정을 냈습니다. 이들은 MBC가 일을 거의 주지 않고 사내 네트워크 접속도 차단된 상태로 기존 아나운서 공간과 격리된 별개의 공간으로 출근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MBC
이 아나운서들의 문제가 박근혜 정권 당시 MBC 파업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 좀 애매합니다. 박근혜 시절 MBC 파업을 정치 파업이라며 그 구성원들을 괴롭히고 불법 해고된 아나운서들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 당시 MBC 경영진이 들인 계약직 아나운서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MBC 파업 당시 노조를 탈퇴하고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를 꿰찬 배신의 아이콘이자 한때 MBC의 흑막이자 실세로 불렸던 배현진은 이 진정이 나오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죄는 부메랑처럼 돌아간다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 소릴하기도 했죠. 현재 그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홍준표의 홍카콜라 제작진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번에 진정을 제기한 계약직들의 경우 파업 당시 경영진에게 자신들의 목줄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여기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배현진을 비롯한 과거 MBC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부역한 치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10년 동안 신나게 불법해고하다가 이제 와서 자신들이 불리해지니 불법해고 당했다고 구제해달라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기네가 10년 동안 망가뜨렸던 노동 시장이 바로 잡히려는 조짐이 보이자마자 바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 법을 써먹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은 좋게 보기가 힘듭니다. 마치 급우들을 괴롭히던 일진이 근신 처분을 받고 한 반에 격리되어 있었는데, 학칙이 개정되자마자 이를 들먹이며 격리 처분을 받았던 자신들이 차별받은 것이라고 외치는 꼴과 같습니다.
출처 - 인쿠르트
물론 법은 법입니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해야 합니다. 현재 개정된 근로기준법인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의하면 현재 MBC가 하고 있던 정황은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할 개연성이 상당히 큰 것이 사실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지는 말아야죠.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의 제대로 된 시행으로 직장인들이 '워라밸'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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