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로 보는 변화의 조짐

지난 11월 1일 대법원이 중요한 판결을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죠.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오 씨가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건에 대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죄 9, 유죄 4의 의견으로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무려 14년 만에 판결이 뒤집어진 겁니다.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의 자유 등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처벌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일률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병역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전투행위, 다시 말해 무기를 쥐는 것을 거부하는 집총 거부 형태도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종교적인 교리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의 상당수도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1세기 들어서는 다양한 이유로 병역을 거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2001년에는 불교 신자이자 평화주의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오태양 씨가 있었고, 2002년에는 반전주의 신념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 나동혁 씨가 구속 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에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여론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남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적으로 병역을 이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 많은 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신념'의 문제라기보다 '형평성'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비아냥으로 "그럼 군대 간 나는 비양심적이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이 나고 하루 뒤인 지난 11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청원이 300건이 넘었습니다. 대부분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청원이었습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군 복무를 한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는 감정은 공감합니다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오해하거나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선량하다, 착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쓰이는 양심과 헌법에서 사용된 양심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양심에 관해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 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은 단순히 착하다, 올바르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개인의 소신을 함부로 국가가 간섭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 사회 일반에서 통용되는 생각과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단순히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히는 정도가 아니라 죽음을 불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1만 20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고, 일제강점기 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일제의 징병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33명이 수감되고 5명이 사망했죠. 주권을 상실한 상황에서조차 양심적 병역거부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국방력이 상실된다는 주장도 입증된 사실이 아닙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있기 이전에도 매년 600명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60만 명에 달하는 군 규모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군복무 면탈을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하는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면 지금까지 구속 수감하는 철퇴에 의해 입영자가 줄어 사회적 문제가 되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인생 좀 편하게 살겠다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도 좋을 만큼 한국 사회가 녹록지 않습니다. 몇십 개월을 위해 빨간줄까지 그어가며 병역을 면탈하려 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겁니다. 더구나 그 수조차 해마다 거의 같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단순히 입대하기 싫어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방증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속해서 처벌했으나 거부자 수가 줄지 않았던 추이를 볼 때 이들을 계속 수감시키는 것보다 대체복무라는 대안을 마련해주는 편이 국가적으로나 국방력 측면에서 유익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게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형평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권'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입니다.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라 난항이 예상되긴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를 받아들이더라도 대체복무 기간과 복무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징벌적인 성격'을 부과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들은 대체 복무 기간이 현역 기간보다 너무 길다면 이는 또 다른 인권침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징병자에 대한 병역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 복무자의 2배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출처 - SBS 마부작침

 

현재 대체복무 기간에 대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부터 2배까지 다양한 법안이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국방부가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핵심인데요, 현재 국방부는 3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체복무제 신설 과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지 적합 여부를 심사하고 운용하는 부서를 어디에 두느냐에 대해서도 첨예한 대립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한데요, 정부와 주관 부서들은 국방부와 병무청이어야 한다는 의견에 반해 인권단체 측은 심사와 운용 모두 군에서 독립된 제3의 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안은 대체복무 기관으로 소방서와 교도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근무는 현역병과 마찬가지로 합숙 형태입니다.


출처 - 뉴스1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는 2020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병무청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때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영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정하고 인권적이며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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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18.11.06 20:29 신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종교적' 병역거부로 명칭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종교 교리가 어떻길래
    다른데는 가는데 왜 여기만?
    뭐가 다른지 알게되고 거기서부터 제대로 된 이해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요
    다짜고짜 양심적이라고 하니까 갔다온 사람은 비양심이냐 이소리도 나오고요

    • 2018.11.07 04:10 신고

      종교인이 아니어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이유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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