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식량위기, 그 전조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올해 뜻하지 않게 찾아온 극심한 폭염으로 생활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예년보다 가물어 농부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요, 요사이 충남권에 내린 집중호우로 이젠 물 때문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시대에도 농사는 여전히 대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올해 가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지난 6월 초까지만 해도 안정적이던 세계 곡물가격이 7월 들어 20~40퍼센트나 급등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 중서부와 남미, 러시아 등 세계 주요 곡물 생산 지역이 가뭄 탓으로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1400만 톤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식량안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곡물 자급률이 329퍼센트에 이르고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도 100퍼센트를 넘습니다.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외국 수출국의 공급량이 달릴 경우 해당 물가는 4배 이상 급등한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제는 식량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1980년 전국이 냉해 피해를 당했을 때 한국 곡물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한 미국 곡물메이저 카길사가 한국에 대한 쌀수출 가격을 세 배나 올려 요구한 전례가 있습니다. 식량과 사료용을 불문하고 우리나라가 곡물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식량위기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다

1956년 이래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과 세계 3대 밀수출국인 러시아와 남미 우크라이나 등을 휩쓸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달 만에 세계 옥수수 생산량은 17퍼센트, 콩 생산량은 12퍼센트가 줄었습니다. 옥수수와 밀 가격은 각각 45.6퍼센트, 44.4퍼센트나 치솟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식량 수출국인 미국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런 상황은 세계적인 식량가격 폭등을 유발해 경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극심한 가뭄으로 옥수수 밭이 말라가고 있다.

가뭄 때는 곡물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투기성 '곡물 사재기' 현상입니다. 이는 곡물 가격을 더욱 부추겨 안정적인 곡물가격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2012년 9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가격은 부셸(곡물 중량 단위, 옥수수의 경우 25.4kg)당 8.10달러를 보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옥수수 가격이 8달러대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2007, 2008년 곡물 파동 때보다도 높은 수준에 해당합니다. 옥수수 가격이 50퍼센트 상승하는 경우 식량가격이 평균 1퍼센트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옥수수 가격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옥수수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식량이라고 할 때 우리는 주로 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곡물은 옥수수입니다. 그다음으로 밀, 쌀 순서입니다. 옥수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작물입니다. 옥수수에서 액상과당을 추출하여 청량음료, 주스, 과자를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요 가공식품 1500종 가운데 약 1300종에 옥수수가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그 산업적 중요성을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이렇게 중요한 옥수수를 우리나라는 얼마나 생산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옥수수 자급률은 1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해마다 1000만 톤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하는군요. 옥수수 가격이 국제적으로 상승하면 축산 농가의 사룟값 부담이 늘어나는 까닭에 소나 돼지 등의 육류가격도 인상됩니다. 그러다 한계점에 달하면 축산 농가는 사육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육류 가격은 일시적으로 내려가겠지만, 대량 도축의 파장으로 우유, 치즈, 버터 등의 생산량이 감소하여 낙농품 가격이 오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식으로 곡물가격의 상승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경제운용의 기본인 물가체계를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생활비가 오르고 인건비 상승압력이 높아져 경제가 안정될 리 없죠. 최근 글로벌 애그플레이션(곡물가격상승) 공포가 확산하자 불똥이 바이오연료인 '에탄올'로 번지고 있습니다. 가뭄 때문에 옥수수 수확량이 급감했는데, 상당 물량이 에탄올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바람에 옥수수 가격폭등을 부추긴다는 얘깁니다. 56년 만에 미국 중서부를 덮친 최악의 가뭄 탓으로 지난 6월 초 톤당 200달러가 조금 넘던 옥수수 국제 거래가격은 현재 300달러를 웃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출처: 한국일보)

지난 2007년 제정된 에너지법에 따라 미국은 수확된 옥수수의 일정량을 에탄올 생산에 사용해왔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는 전체 수확분의 42퍼센트인 45억 부셸이 에탄올 원료로 투입될 예정이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흉작에 거둬들인 옥수수의 절반을 에탄올 생산으로 돌려야 하니 국제 곡물가격은 갈수록 폭등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죠.

우리의 밥상,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는 지금까지 가격경쟁력이 없고 쌀 소비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논농사 면적을 줄이도록 유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쌀을 비롯한 전반적인 곡물생산계획을 다시 짜야 할 시점입니다. 비록 생산비가 외국에 비해 비싸더라도 자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식량자급률이 낮을수록 세계적인 곡물메이저들의 손에 우리의 밥상이 놀아날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하위(26%)에 속합니다. 식량자급률이 낮지만 일본이나 스위스 같은 국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항시 곡물을 충분히 확보하는 체계를 갖춰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전조가 보일 때마다 수입곡물 할당관세 적용, 사료구매자금 저리 지원, 조사료 재배 확대 같은 단기 대책 외에 국가조달시스템 구축, 해외농업개발, 비축제도,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등의 대책을 시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합대책이 하나의 국가적인 시스템으로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감지될 때마다 일시적으로 급등했던 국제 곡물가격이 몇 개월 지나 안정세로 돌아서면 국민의 관심이 떨어져 관련 대책의 추진동력이 약해지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민소득이 높아져 가계에서 식료품 지출 비중이 낮아지고 쌀이 남아도는 까닭에 식량 부족을 우려하지 않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식량은 에너지와 달리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자원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문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식량도 해외나 국제교역시장에서 확보해야 할 중요한 자원의 하나로 보고 비상시를 대비하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때입니다.

누가 우리의 밥상을 움직이는가?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어 우리 쌀이 남아도는 상황인데도 세계적인 개방 압력을 타고 더 많은 쌀이 수입되고 있습니다.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쌀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은 저렴한 쌀을 먹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곡물메이저인 카길을 비롯한 다국적 곡물상들이 추구하는 시나리오대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산성이 낮은 농업에 매달리기보다 휴대전화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 저렴한 식량을 사 먹는다면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농업을 포기하면 바로 뒤이어 식량재앙이 닥칩니다. 많은 전문가는 식량이 21세기 최고의 전략 무기가 될 것이며, 그 가공할 무기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밥상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 곡물의 자급 비율은 현재 26퍼센트대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나마 쌀을 빼면 2.7%에 불과하죠. 한정된 토지에 인구가 많으니 낮은 식량 자급률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러나 진실은 이런 낮은 식량자급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나라의 식량위기에 한몫을 한 것은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이 장려한 자유시장 정책이었습니다. 멕시코의 식량위기는 1980년대 초에 불어닥친 부채위기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당시 개발도상국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채가 많았던 멕시코는 국제 민간은행에 대한 부채 상환을 위해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세계은행과 IMF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경제정책 프로그램을 멕시코 정부에 제시합니다. 고율의 관세를 비롯, 각종 무역규제를 없애고 이를 위해 멕시코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노골적인 계획이 담긴 경제정책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농민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을 펴왔으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이 같은 정부 지원을 모두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정부 지원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거나 급격히 줄어들자 멕시코 농업의 생산성은 크게 하락합니다. 여기에 1980년대 들어 실시한 일방적인 농산물 무역자유화 조치로 농민의 기반은 더욱 허물어졌고, 1990년대 중반에는 NAFTA가 발효되면서 그동안 자급했던 옥수수마저 수입하더니 결국 식량 수입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길, ADM, 타이슨 같은 다국적 농산물기업들은 자기들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를 펼치고, 그 정부는 각종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충실하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엄청난 농산물 수출국이며 한동안 WTO를 쥐락펴락해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추구하는 다자간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으니 아예 1대 1로 만나 각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네요. 

대량생산 방식의 농업체계를 돌아볼 시점이 되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연스럽고 현명한 농업방식에서 억지로 이탈시키고 산업화시켜 불구로 만듭니다. 자급자족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곡물메이저의 고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다국적기업인 곡물메이저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소농과 가족농을 다 죽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전 세계의 먹을거리를 단 몇 개의 다국적 농산물기업이 주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먹거리를 통제할 힘을 상실한다면 우리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문제인식을 전 국민이 함께해야 할 때입니다.


댓글(2)

  • 2012.08.16 18:41

    우리나라의 농업이 거의 파탄난 상황에서 FTA를 계속 추진하고, 오래된 교과서에 나올법한 경제논리만으로 식량 주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정부 역시 현실적인 대책이 FTA라고 하지만 공상에 가까워 보이구요.

    • 2012.08.17 13:46 신고

      요즘 신문 어디를 봐도 답답한 소식밖에 없습니다. 미래 성장동력을 생각해야 할 시점에 국민은 온갖 비리로 얼룩진 현 정권의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선 정국이라 정치 논리가 경제 현안을 깡그리 덮어버려 서민의 삶은 팍팍해지고만 있는 실정이고요. 이 어려운 때, 함께 고민하면서 힘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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