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4.19혁명의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4.19혁명이 일어난 지 5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또한 생각비행 창립 2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작년 4월 19일에 <시와 함께 읽는 4.19>라는 기사로 여러분께 4.19혁명이 일어난 사회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을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고 아울러 시민이 이뤄낸 혁명을 체험한 김수영과 신동엽 시인이 화답한 시로 민중의 힘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사료를 통해 과거를 다시 돌아보고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4.11 총선 무엇을 남겼나

역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가 무엇이며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를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해방 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민주주의의 확립과 민족통일이었습니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갈구하는 민중의 여망과 직결된 변화의 움직임이었습니다.

4.19혁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4월 26일 이승만이 물러난 뒤의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 나옵니다. 이승만 정권 때 실현하지 못했던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민족 자주성을 이룩하려는 새로운 지향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반봉건·반외세·반매판자본의 민족민주혁명을 위해서는 민족통일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4.19혁명 52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과연 우리는 역사가 제시한 과제를 제대로 해결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경제의 토대를 세우고 통일국가를 전제로 경제 전망과 계획을 꾸리기에 이명박 정부 3년간의 행보는 그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천안함 사고 직후에 있었던 2010년 6월 2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여권은 이번 4.11 총선 또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꾼 전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구도로 여론을 형성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와 많은 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총선 다음 날,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유권자들이 지난 4년간 집권세력이 자행한 실정과 비리를 용인한 것은 아니라"며 "이번 총선은 한표, 한 표에 깃든 민심이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권의 집권 4년을 심판했으되 '박근혜 새누리당'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는 수권세력으로서의 위상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민심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 이는 곧 시민들이 여야의 승패라는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 대오각성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1987년 체제의 공과를 결산하고 2013년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라는 시대적 요구가 그것이다. 우리는 지금 19대 총선을 통해 미래로 가는 관문을 지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총선은 여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야당의 패배라고 해야 옳다. 야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치러진 선거인 점까지 고려하면 야당의 성적은 더욱 초라하다.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서의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공천 실패와 잇따른 잡음 등으로 차려진 밥상도 챙기지 못했다"고 일침을 놓는 한편 새누리당에 대해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권위주의와 폐쇄주의적 태도는 여전했고, 친재벌·부자 노선을 수정하지도 않았다. 눈 밝은 상당수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이런 화장술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주목하기 바란다"고 꼬집었습니다.  

여야 어느 쪽으로 완전하게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은 정치권에 변화와 쇄신이라는 숙제를 남겼다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권은 이번 총선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국민의 선택이 뜻하는 바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떤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민은 곧 있을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엄정하게 판단하리라고 봅니다.  

4.19 정신에서 찾은 우리의 현실과 미래

4.19는 1960년 4월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조작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었습니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은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며 그 역사적 의의를 애써 축소했습니다.

4.19 당시 표출된 학생과 시민의 요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이승만의 장기적 독재정권의 종식.
2. 부정선거와 야당의 탄압으로 장기집권과 자유당의 전횡을 조장한 반민주행위자들의 처벌.
3. 자유당치하 강권과 불법으로 축적된 재산의 사회환원과 부정축재자들의 응징.
4. 부패한 행정의 능률화, 침체된 경제의 발전, 외교 및 통일정책의 현실화 등을 포함하는 정책적 혁신.
5. 헌법개정 등을 통한 민주적 법질서의 수립.

그런데 1982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나옵니다.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역사 37장면 2》 분문 중에서 그 내용을 인용합니다.

제2공화국이 "4.19의거 전후의 사회 정치적 불안과 무질서를 진정시켜 반공·국방 안보태세를 확립하고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한 국력신장과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나", "일부의 분별없는 정치세력이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를 내세우면서 가지각색의 자기 주장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크고작은 시위를 계속하였다. 심지어 어떤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이와 같이 매일처럼 시위를 함으로써 사회혼란은 극도에 달하였다.

시의와 쟁의, 정치집단 간의 파쟁이 빈발한 상황을 '불안'과 '무질서'로 인식한 5.16 세력의 인식이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과 참으로 유사하지 않습니까? 앞서 소개한 4.19혁명으로 표출된 학생과 시민의 요구사항도 가만히 살펴보면 언론을 장악한 채 소통은커녕 시민을 사찰하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과 매우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4.11 총선 결과를 두고 "어러울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하지요. 이런 아전인수가 또 있을까요? 국민의 절반가량이 이명박 정부를 향한 심판의 목소리를 담아 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4.11 총선 결과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취향이나 세력의 이익을 꾀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역사의 과오를 청산할 길이 열립니다. 학창 시절 대학신문에서 발행한 4.19 기념 호외 논설면에 기고했던 개인적인 글을 조금 다듬어 소개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

1960년 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피 흘림이 있었다. 그 피 흘림은 몇 가지 사건에 의해 촉발된 단순투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쌓여왔던 반민족적, 반자주적, 반통일적 움직임에 대한 불만의 토로였으며, 장기집권을 위해 저지른 부정과 부패에 대한 정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4.19의 절규에도 오늘까지 사회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소외되고 고통받는 민중의 삶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민족통일 또한 아직 이룩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현실은 4.19 정신이 시간이 갈수록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열려 있던 사회적 관심이 점점 개인적인 관심으로 대체되어버린 결과요,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사소한 불의에 침묵하고 타협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해마다 돌아오는 4.19를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고 있는가? 그 당시 젊은이들과 같이 자유와 정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패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현재 우리의 삶에서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1960년 봄과 같은 혁명의 외침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올곧은 역사인식과 냉철한 상황인식, 그리고 불의에 항거하며 죽어갔던 젊은이들의 피맺힌 함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4.19 정신은 아직도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확실하게 정착시키고 민족분단을 종식해 민족이 통일될 때까지 우리 젊은이들이 가슴속에 간직해야 할 소중한 정신이다. 과거 수많은 젊은이가 4.19 정신을 품고 그 시대의 질곡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쳐왔다. 과연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미래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밋빛 환상이 결코 아니다. 현재의 질곡과 모순이 지양될 때 미래는 우리의 눈앞에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미래는 지금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다. 4.19 세대가 고민하며 이루기를 소망했던 미래를 지금 우리는 구체적 삶의 현장 속에서 고민과 실천으로 엮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료로 돌아보는 4.19혁명

4.19혁명을 좀 더 깊이 이해하여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인식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 데 도움이 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누리집을 소개합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던 민주화운동 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2001년 7월 24일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법률 제 6495호)에 의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특수법인에 해당합니다. 사업회는 민주발전을 위한 지원과 기념사업, 추모사업, 유적지 발굴 보존사업 등을 수행함과 아울러 전시관, 사료관, 연구소, 교육센터 등이 마련된 민주화운동기념관과 기념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누리집에서 특히 '사료관(아카이브)'을 소개하려 합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사회로 다시 돌려주어 민주화운동 이후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사료관은 '민주화운동 컬렉션, 사진 아카이브즈, 사료로 배우는 민주화운동, 구술 아카이브즈'라는 항목으로 자료를 구분해놓았습니다. 각 항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화운동 컬렉션: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건과 단체, 인물을 선정하고 해당 사료를 분석하고 묶은 결과물입니다. 시대순으로 사건과 단체, 인물의 개요, 주요 사료의 소개, 관련어, 사료 목록 등을 정리하였습니다. 2011년 현재 142개의 컬렉션을 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사진 아카이브즈: 사진은 텍스트가 말해주지 못하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60,000컷의 한국 민주화운동 사진을 디지털 사진 아카이브즈에서 보세요.

사료로 배우는 민주화운동: 사료로 배우는 민주화운동은 사료를 활용하여 제작한 교육용 콘텐츠입니다. 현장의 역사 선생님들과 함께 제작하였고, 여러 학교에서 교육 교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구술 아카이브즈: 구술기록은 기억의 역사를 기록의 역사로 만드는 중요한 역사의 증거입니다. 4월혁명 구술 아카이브즈에서 1960년 4월혁명의 현장을 확인하세요.

꼭 한번 방문해보시기 권합니다. 방대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청소년 대상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에 그만입니다.  

다음으로 4.19혁명이라는 누리집을 소개합니다. 4.19민주혁명회가 '자유, 민주, 정의'라는 4.19혁명의 3대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국민 대화합을 선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4.19혁명


4.19혁명 항목에서 '4.19 바로알기'라는 내용을 보시면 4.19를 '혁명전야/혁명의 그날/혁명 그 후'라는 분류로 나누어 연표, 사진자료, 도표 같은 다양한 자료를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편집으로 구성해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9가 궁금해요 하위 항목으로 '만화로 보는 4.19'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6.12전쟁의 영향, 이승만 정부의 독재, 4.19혁명'까지 총 3편의 만화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구성해놓았습니다.

4.19혁명 누리집은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은 물론 학술세미나 자료와 혁명 당시 각계각층에서 공표된 성문문, 결의문, 구호 등을 웹진 형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활용할 만한 자료가 많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방문해보세요.

아직 4.19혁명의 깃발을 내릴 때가 아니다

1960년 4월혁명에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학생 중에는 전한승(수송초등학교 6년), 정태성(금호초등학교 6년) 군 등이 있었습니다. 4월 26일에는 수송초등학교 어린이 100여 명이 '국군 아저씨, 부모형제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수송초등학교 강명희 어린이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 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도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4.19 민주이념이 우리가 지향하고 수호해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반민족, 반민주, 반민중, 반통일의 길을 걷는 이들이 여전히 사회의 한 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민족, 민주, 민중, 통일을 지향하는 이들이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루기까지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4.19혁명의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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