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16] 평화는 시민의 연대에서 움튼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널리 알리고자 여러번에 걸쳐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최근에는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의 문제점을 두 번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뤘는데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주시 당국이 도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해군기지를 건설하도록 용인하면서 어떻게 사기성이 농후한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캠페인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는지 그 아이러니에 기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법정다툼으로 비화한 전화투표 의혹>이라는 기사에서 저희는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투표 방식을 두고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둔갑시킨 KT의 사기극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문제가 많은 제주-세계7대자연경관선정 캠페인의 의혹을 풀기 위해 제주도에서 여러 시민단체가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했으나 감사원이 감사 여부를 4.11 총선 이후에나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까지 알려드렸습니다.   

4.11 총선이 실질적으로 여당의 승리로 끝난 현 시점에서 과연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와 제주-세계7대자연경관선정 캠페인을 둘러싼 의혹은 어떻게 풀릴까요? 몇 번에 나눠서 이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해군기지 주 시공사인 삼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지난 3월 29일 삼성물산 앞에서 평화활동가들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행위극을 벌였습니다. '구럼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화 행동을 펼치자마자 삼성물산 측 경비 용역들이 이를 저지했고 경찰은 이내 이들을 연행했습니다.     

(출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여러 활동가가 연행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이에 삼성물산은 평화 행위극에 대해 2400만 원의 손해배상 피해 목록을 제출했습니다. 행위극으로 말미암은 재물손괴, 영업방해에 대한 보상비 명목이었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삼성의 대응에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습니다.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기름 유출 사고를 기억하는 분이 여전히 많이 계실 겁니다. 태안 앞바다에서 인천대교 공사를 끝낸 삼성물산 소속 크레인 부선(동력이 없는 배) '삼성 1호'를 경상남도 거제로 끌고가던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정박해 있던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발생한 사고여서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라고도 합니다. 그날 유조선 탱크에 있던 1만 2547킬로리터의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되어 충청남도 태안군, 보령시, 서천군, 서산시, 홍성군, 당진군이 특별재단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출처: 한국재경신문)

한 자원봉사자가 기름을 수거하고 있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서해 앞바다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킨 엄청난 사고를 목도하고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름때에 찌든 해안을 청소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어마어마한 인건비에 관해 삼성은 어떤 도의적 책임을 졌나요? 외면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하라며 평화 행동을 펼친 '구럼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삼성물산은 빨간색 수성 페인트를 지우는 비용마저 손해배상 목록에 넣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출처: 한겨레)

천혜의 자연을 파괴하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의 주된 시공사인 삼성을 향해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이들에게 취한 대응은 도가 지나치다 못해 상식 이하의 수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재벌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지만 삼성의 경우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겠습니다.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삼성은 어떤 책임을 졌던가?

삼성중공업은 2008년 1월 22일 사고 발생 47일만에 조간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합니다.

2008년 1월 22일 한겨레를 제외한 조간신문에 게재된 삼성중공업의 대국민 사과문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서해 북서방 해상에서 저희 해상 크레인이 항해 도중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원유가 유출되면서 서해 연안이 크게 오염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 일로 지역 주민들께서 당하신 고통과 피해,
그리고 생태계 파괴라는 재앙 앞에서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고 직후 저희들은 현장 방제 활동에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이제 긴급 방제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관련 당사자들과 함께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2008년 1월 22일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김징완 외 임직원 일동

이후로 삼성은 2월 29일에 이사회를 열어 지역 발전기금 1000억 원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대국민 사과도 하고 발전기금도 내놓겠다고 하니 발빠르게 통근 결정을 하고 책임지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이 사고는 국내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습니다. 대국민 사과문을 보면 유감을 표현하면서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빠졌습니다. 그저 껌값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자구책이었을 뿐입니다. 삼성은 언론, 방송 앞에서는 책임을 지는 시늉을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법적으로는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2011년 8월 말 《연합뉴스》는 삼성중공업이 3년 전 주민들에게 출연하기로 약속한 지역발전기금을 아직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기사화했습니다. 관련 기사 내용의 일부를 한번 보시죠. (<'태안기름사고 기부금' 3년째 이상한 표류>, 《연합뉴스》 2011년 8월 31일자)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011년 8월) 31일 "발전기금 1천억원을 마련했지만, 정부 조직개편과 주민 반발 등으로 아직 해당 지역에 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주무부처였던 해양수산부가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해당 업무를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부로 넘겨 발전기금을 전달할 대상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충남 보령시 등 인근 주민들이 태안군에만 발전기금을 지원하는 데 반발한 탓에 정부도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측 설명은 달랐다. 주무부처 개편에 관계없이, 삼성중공업과 주민들의 견해 차이로 자금 집행이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피해 지역 주민들은 1천억원이 너무 적다고 하고, 삼성중공업은 금액을 더 올릴 수 없다고 해서 번번이 중재에 실패했다. 삼성 측과 중재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해안 유류피해 총연합회는 애당초 주민과 상의 없이 결정된 발전기금 규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기준을 제시하면 발전기금 분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한국해양연구원은 사고로 인한 환경피해액만 1조2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1천억원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중공업은 2008회계연도에 발전기금 1천억원을 영업외비용 항목의 기부금으로 처리했다. 당해 영업이익은 7천553억원, 순이익은 6천273억원이었다. 회계상 비용으로 기록했지만, 수탁주체가 결정되지 않아 세무상 비용으로는 처리하지 않았다고 회사 측이 설명했다. 사고 발생 후 두 달 만에 40%가량 추락한 주가도 발전기금 출연 발표를 전후로 반등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당시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는 기금 출연으로 기타 보상부담이 줄었다며 투자의견 `매수'를 제시했다.

녹색연합 정인철 국장은 "사고 발생 4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발전기금을 전달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고 당사자로서 어떻게든 전달 수단을 취해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유발자가 책임을 지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과연 삼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앞으로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뒤로는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2011년 3월 7일 태안 기름유출사고의 주요 원인제공자가 삼성중공업이라 판결한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삼성중공업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립니다. 

충돌의 주요 원인을 "삼성중공업 예인선단이 항해 중 급격한 기상변화에 조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조종 성능이 심각히 제한된 상태로 풍파에 떠밀리면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무리한 항해‘를 계속하다가 발생한 것"이라고 규명했습니다. 아울러 "선장단 등은 삼성중공업 통제·감독하에 있었으므로, 원고가 선박들의 운항자"라며 시정명령 대상이 아니라는 삼성의 주장을 기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환경운동연합은 삼성이 수조 원에 달하는 피해배상과 환경복원 등 모든 민사 책임을 단 56억으로 제한해달라며 책임제한절차를 신청해 이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가 1년 이상 진행 중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전했습니다. 형사소송과 행정소송 모두 대법원이 중과실을 인정했음에도 민사 책임을 모면하려는 삼성의 시도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일이었습니다.

1989년 알래스카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던 엑손사는 1조 원 정도를 손해 배상으로 정부에 지급하고 장래 새로운 환경 피해가 발견될 경우 추가 배상하기로 약속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엑손사를 상대로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5000억 원과 징벌적 배상이 결정되었습니다. 배상액은 자그마치 2조 5000억 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엑손사는 2조 원 가량을 들여 10년 간 정화작업도 펼쳤습니다. 이런 앞선 사례가 있는데도 삼성은 국민을 기만했고, 법원은 재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삼성 왕국은 영원한가?

우리에게 삼성은 어떤 기업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초법적인(!) 기관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2007년 11월 23일 국회가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삼성 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일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로써 이른바 '삼성 특검'이 시작되었죠. 말이 특검이지 사실상 삼성의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서울 통신기술과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사건,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발행, e삼성의 회사 지분거래) 및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한 비자금 조성과 로비의혹으로 한정된 수사였습니다.

(출처: 서울신문)

삼성특검 수사결과 요약(출처: 이데일리)

특검 과정 중에 삼성은 쓰레기차 3대 분량의 서류를 폐기하는 등 불법적으로 자료를 은폐했습니다. 또한 참여연대는 삼성 특검팀이 삼성 차명계좌 조성에 핵심적인 인물로 지목되는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만 조사한 후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에 대하여 재계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봐주기 수사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애초부터 특검은 삼성의 불법을 낱낱히 파헤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결국 삼성은 큰 타격을 받지 않고 특검을 넘깁니다. 그런데 2008년 4월 22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퇴진을 비롯한 경영 쇄신안을 발표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건희 회장의 대표이사 회장, 등기이사 등 경영에서 퇴진.
- 홍라희 관장의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 사임.
- 이재용 전무 삼성전자의 CCO 사임. 그러나 삼성의 다른 해외 사업장에서 활동.
- 전략기획실 해체.
- 이학수, 김인주 사장 경영에서 퇴진.
- 이건희 차명계좌는 실명으로 전환.
- 금융사업 투명화. 은행 진출은 없음을 선언.
- 사외이사 선임 신중.
- 지주회사는 당장 추진하지 않으며, 순환출자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 등 검토.
- 삼성의 대외적인 대표에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

(출처: 위키피디아)

이건희 회장의 경영 퇴진은 재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으나 그게 한마디로 '쇼'였다는 사실은 2년이 지나서야 드러납니다. 어쨌든 특검 이후 경영 쇄신안까지 발표하면서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은 2009년 8월 14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습니다. 이 과정은 저희가  <재벌 3세와 경제단체 관계자의 주가조작,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라는 기사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는데요, 관련 부분만 옮기겠습니다.

재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996년 말부터 불거졌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 SDS의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은 또 어떠했습니까? 경영권 불법승계 등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13년 만에 법률적 심판이 사실상 종결되고 말았지요.

그 당시 법원은 쟁점이 됐던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당시 적정 가격을 주당 1만 4230원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이건희 전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가 1999년 당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가격은 7150원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회사에 끼친 손해가 모두 227억 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배임액이 5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법원이 판단함에 따라 이건희 전 회장에게는 공소시효 10년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가 적용되었습니다. 원래 1심 법원에서는 배임액을 44억 원으로 판단해 공소시효 7년인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했고 이 전 회장을 처벌할 수 없다며 면소 판결한 바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적정가격을 판단하지 않고 저가발행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무죄 판결했습니다.

결국 서울고법 형사4부는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등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발행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원심과 같이 이건희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 고발인인 경제개혁시민연대는 "유죄를 인정하고도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기업인 범죄에 대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에 해당한다"고 평가했지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다며 이건희 전 회장을 특별사면합니다. 법무부는 사면에 대해 "범국민적인 염원인 2018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참으로 어이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뒤 이건희 전 회장은 1조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행보는 미국의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로 상징되는 거부 록펠러의 행적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불법으로 얼룩진 경영방식도 그렇거니와 허울뿐인 사회환원이라는 약속까지도 록펠러와 똑같습니다. 록펠러는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였겠지만 어쨌든 약속을 지켰으나 이건희 전 회장은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한 이건희 전 회장의 통큰 기부 소식을 언론과 방송은 앞다투어 소개하기 바빴습니다. 그 와중에 운이 따른 걸까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확정됨으로써 막후에서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이 한몫했다는 얄궂은 분석도 언론 방송이 전하기 바빴습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재계의 거물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한동안 은둔해 있던 이건희 전 회장은 2010년 3월24일 경영 복귀를 선언하고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침체되어 있었으나 삼성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 결과 스마트폰은 물론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등 각 분야에서 세계1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도 비껴가는 듯 유독 삼성만이 빛을 발했습니다. 온갖 법적인 문제를 털어버린 이건희 회장이 삼성 왕국에서 무한한 힘을 지닌 제왕으로 다시 군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삼성을 향한 시민의 분노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자가 삼성에서 일합니다. 삼성에서 주는 월급으로 가족이 삶을 영위합니다. 그렇기에 삼성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수많은 이의 밥줄을 쥐락펴락하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삼성이 그저 열심히 일한 결과로 이와 같은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된 건 아닙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이 땅의 재벌이 얼마나 많은 특혜를 누렸습니까? 구멍가게에 불과했던 많은 기업이 정경유착으로 오늘날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이젠 상식적으로 다 압니다. 

삼성 역시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삼성의 잘못을 용인하며 지내왔습니다. 재벌이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그릇된 통념을 진리인 양 숭상하며 반도체값이 떨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정부가 앞장서서 삼성을 걱정하는 분위기를 조장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바로잡아야 합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경험한 뒤 신자유적인 세계질서가 얼마나 허황한 가치인지 깨닫지 않았습니까? 이명박 정권이 자행하는 터무니없는 재벌 중심 경제정책도 바꿔야 하고, 재벌에 온갖 특혜를 몰아주는 현실도 바꿔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법원이 재벌 일가를 무겁게 양형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경제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며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기 일쑤요, 이건희 전 회장처럼 사면받아 이내 사회로 복귀하여 그들의 왕국을 오히려 더 확장합니다. 이런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언제까지 감내하시렵니까?

모든 삼성맨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도덕적 인간이 모인 사회가 비도덕적이기 쉬운 것처럼, 삼성이라는 그룹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이가 수두룩한 현실을 우리는 이전부터 봐왔고 지금도 목도하고 있습니다. 2010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했던 백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삼성 측에서 몇몇 피해가족과 접촉해 산재보상 청구포기를 조건으로 위로금을 제시한 일이 있었음을 다들 아실 겁니다.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툭 하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삼성의 잘못된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삼성은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공사비를 받으므로 밀어붙이고, 육군과 공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대한민국 해군은 해군기지를 빌미로 밥그릇 싸움에 한창입니다. 동북아 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안보 프레임 속에서 대한민국 공권력은 불법공사를 강행하는 삼성을 비호하며 강정주민과 평화지킴이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해군기지 공사과정에서 수많은 불법이 자행되었고 숱한 거짓말이 드러났습니다. 국가 안보를 걱정한다는 허울뿐인 명분을 앞세우지 말고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바로 섭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삼성물산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행위극을 펼친 '구럼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중의 용기가 무엇인지 이들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삼성물산 앞에서 평화를 외쳤던 시민의 외침이 확산되어 4.11 총선 당일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많은 시민이 구럼비를 파괴하는 삼성을 규탄하는 플래시몹에 참여했습니다.


구럼비를 죽이는 삼성을 규탄하는 플래시몹

명동 플래시몹에 이어 서울 시청 앞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평화는 시민의 연대에서 움튼다

한미FTA 반대집회에 모인 많은 시민

구럼비를 죽이는 정부와 삼성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남기는 시민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이름 없는 대중의 연대가 동북아 평화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 평화의 씨앗이 전국 각지로,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 일에 동참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 일상에서 용기 있는 일을 좀 더 많이 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더 많은 분이 힘을 모으면 더 빨리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백지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평화는 자발적인 시민의 연대에서 움틉니다.

2012년 5월 2일, 촛불집회 4주년 기념 집회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뜻을 전하고 있는 시민들


여러분의 삶에 더 많은 평화, 더 많은 자유가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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