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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한국의 기부문화를 생각한다

by 생각비행 2012. 2. 6.

가야 할 길은 멀지만 희망은 있어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몇 년간 내수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많아졌습니다. 정부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넘치는 물은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거둬들이니 시민에게 돌아갈 '낙수'는 없었습니다. 높아지는 물가와 팍팍한 살림 때문에 많은 시민이 한숨짓고, 수익이 달리는 중소기업의 연초 시무식은 시무룩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1퍼센트에 대한 99퍼센트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대기업 회장의 주가조작 및 횡령사건, 그들을 봐주는 검찰, 국민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민영화 논란, 끝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등록금으로 말미암아 99퍼센트에 해당하는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다다랐습니다. 미국의 시민은 우리보다 먼저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99퍼센트의 돈을 투자라는 핑계로 갈취하며 호화롭게 살아왔던 미국 월가의 금융종사자들을 향해 가진 것 없는 시민이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금융종사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이러한 때에 99퍼센트 위에 군림하며 여전히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푸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이른바 '기부 천사'들입니다. 이름처럼 베풂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양심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1990년대에 IMF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이 땅의 가진 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은 '기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래된 기부문화를 간직한 해외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올바른 기부문화를 세우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외 기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해외에선 어떤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지고 있을까요? 우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환원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기업의 사회참여(CCI)로 이어저, 더욱 개개인의 삶에 밀착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미국에서는 굵직한 재벌들의 통 큰 기부가 하나의 문화를 이뤄왔습니다. 존 D.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독점기업을 만들어 석유 이권을 챙기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거대한 트러스트는 독립 석유업자, 정유사, 운송회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회유, 공갈, 협박, 인수·합병 등의 술책으로 자신의 이권만을 강화하면서 경쟁사를 고사시켰습니다.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악덕기업인 스탠더드 오일과 석유재벌 록펠러의 음흉한 뒷거래와 비열한 상거래 문제를 파헤쳐 《매클루어 매거진》에 19번에 걸쳐 탐사보도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로써 록펠러의 실체를 미국의 국민이 오롯이 이해하게 되었고, 독점기업이 자본주의적 질서를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국민의 반감을 스탠더드 오일은 연방정부에 의해 해체되고 맙니다.

그런데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던 록펠러는 '기부'를 통해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다시 세우려 했습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했고, 록펠러재단을 세워 의학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는 한편, 교회와 학교 등의 문화사업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최초의 의학연구소인 록펠러의학연구소를 세운 사람도 록펠러였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축적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여 록펠러만큼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이를 찾기는 어려울 정도입니다.

앤드류 카네기와 존 D. 록펠러(출처: 위키피디아)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또한 노동자를 착취하며 축적한 자금을 이용하여 엄청난 기부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당시로써는 천문학적 액수인 25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습니다. 워싱턴 카네기협회는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이 협회 덕분에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이 외에도 카네기는 카네기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 등을 설립하여 교육과 문화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카네기홀은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 가운데 하나로 유명 인사들이 오르는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기부'는 개인과 회사의 어두운 면모를 감추면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한 방편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이런 의도로 기부합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돈을 버는 과정이 투명하고 정당하지 않으면 기부를 한들 예전만큼 직접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의식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지요.

기부라는 방법은 세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부자 순위에서 앞다투는 인물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입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출처: 위키피디아)

2010년 《포브스》는 세계 셋째 부자로 워런 버핏을 선정했습니다. 2006년에 그는 자신의 재단의 85퍼센트에 해당하는 370억 달러를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을 포함한 여러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약정서에 서명했습니다. 서구에서는 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지만, 버핏은 잘 운영되고 있는 재단을 찾아서 조건없는 기부를 약속했습니다. 어떠한 이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기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핏은 실질적인 기부 외에도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면서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해서 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영체제(OS)인 '윈도'와 '엑스박스(XBOX)라는 게임기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도 기부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명사입니다. 빌 게이츠는 항상 세계 최고의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로 1995~2007년까지 연속으로 1위, 그리고 2009년에 다시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2010~2011년에는 2위).

세계적인 갑부인 빌 게이츠가 부자 순위에서 떨어지게 된 이유는 2000년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하여 기부 사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 재단은 공공도서관과 고속통신망 개선에 힘쓰는 한편 대학생 장학금 조성, 중국의 결핵 퇴치, 소아마비 퇴치, 빈곤층을 위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사업, 결핵 백신 개발연구, 말라리아 백신 개발연구, 어린이 치료약품 연구비, 빈민 지역 교육환경 개선, 저소득층 장학사업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부문화, 어디까지 왔나

우리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요? 최근 들어 기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공존합니다. 우선 대기업 총수의 기부활동에 대해서 죄를 지은 후 그것을 면피하려는 방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는 SNS를 통해 경제 5단체의 구명운동을 비판했다.

2011년 11월에 SK 총수 형제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뒤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경제 5단체는 탄원서를 내고 SK 총수 형제의 선처를 요청했습니다. SK 최태원 회장이 비리를 저지르고 사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범죄여서 세간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총수들이 처벌받을 때마다 경제단체의 탄원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이재웅 씨는 "배임, 횡령, 비자금이 기업가정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그들의 비리를 눈감아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에게도 일침을 날렸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은 구속될 때마다 면피용으로 기부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제대로 이행된 적은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총수들이 범법을 저지르다 사면될 때마다 하는 '의례적인 기부 약속'이 있습니다. 사회환원을 약속하거나 기부재단을 만들겠다는 공언입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불법을 저지르고 사면되면서 5000억 사재를 출연해 기부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특별사면된 후 1조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기부를 약속하고, 재단을 만드는 일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 하는 반론도 있을 법하지만, 불법적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사면을 받을 때마다 '기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는 것은 왠지 씁쓸하지 않습니까?

대기업 총수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남긴 사건은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십시일반 하여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재단에 기부했는데, 이를 유용하고 착복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무한도전>은 여러 방법으로 성금을 조성해 기부해왔습니다. 해마다 그들의 활동 내용을 담은 달력을 만들어 판매한 기금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기부를 해왔죠. 그런데 <무한도전>의 기부금을 받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시민연합중앙회'는 학생들에게 돈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8000여만 원이라는 거액을 챙겼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랑의 열매', 다들 아실 겁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단체는 연말연시가 되면 성금을 걷어서 이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3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산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직원 32명이 징계처분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업무용 법인카드를 워크숍 경비, 부서회식비 등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십시일반으로 모은 귀중한 성금을 터무니없이 사용한 것이죠.

또 있습니다. 미소금융재단 사업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시민단체가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인데요, 저소득·저신용자들에게 무담보로 저금리의 창업운영자금을 빌려주어 자활을 돕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미소금융재단 사업의 사업자 선정 절차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결국 대표가 서민 대출용으로 지원받은 23억여 원을 빼돌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대표가 소중한 자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는 인면수심의 일을 벌인 셈입니다.

그래도 이름 없는 기부는 이어진다

기부가 면피용으로 전락하고, 각종 기부단체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만,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름 없는 천사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부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단체나 학교 위주의 기부가 성행했다면, 이제는 시민이 '작은 기부재단'을 만들어 돕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님께서 남기고 가신 유산으로 부모님 명의의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이런 일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2년 첫 사업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랍니다. 또한 돈으로 기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부하는 '재능기부' 같은 방식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에 삼성의 백혈병 환자에 대한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자, 이들을 돕기 위해 '드라큘라'라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수혈이 필수적인 악성 빈혈이나 림프종 환자들이 큰 비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혈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SNS를 통해 직접 투자를 받는 소셜펀딩

이 외에 소셜펀딩이라는 방식의 기부방식도 생겼습니다. 소셜펀딩은 웹사이트에 특정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방문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내주고,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불특정 다수가 소액을 기부 또는 투자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해외에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엔젤 기부자를 모아 사업화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어려워도,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살림살이를 걱정해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분들이 존재합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행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아프리카 아동을 위해 1억 800만 원을 쾌척한 군밤할머니의 사례나, 12년째 전화로 기부금액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전주의 한 얼굴 없는 천사, 구세군에 2억을 기부한 90살 노부부의 선행 등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바람직한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하여

지금까지 해외의 기부문화와 한국의 기부문화를 비교해보았습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 사회는 기부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대기업과 재벌은 여전히 면피용으로 기부를 벌이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꼼수가 여전히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식을 성장과 더불어 개인 차원의 기부문화도 날로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남모르게 베푸는 선행, 청년들의 봉사활동, SNS를 이용해 필요한 사람에게 투자금을 유치하는 소셜펀딩과 개인 재단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참여하는 이들의 수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여러분도 기부활동에 동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려운 학생이나 이웃을 직접 지원하는 방법부터 특정 기관을 정기후원하는 방법, 돈이 아닌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 등, 찾으려 한다면 얼마든지 여러분에게 적합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기부문화의 정착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로부터 시작됩니다.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기부에 동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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