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일 오후 6시 정각.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가 화면에 떴고, 서울 중구 정원오 캠프에서는 환호가 터졌습니다. 출구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51.4%,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46.0%로 5.4%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로구 오세훈 캠프는 침묵에 잠겼습니다.

13시간 뒤. 두 캠프의 표정은 정확히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개표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득표율 49.22%로, 48.07%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1.15%포인트 차로 꺾으며 승리했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오전 9시 30분쯤 "서울 시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들겠다"며 승복 선언을 했습니다. 같은 밤, 같은 일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됐습니다. 경남에서 김경수 후보가,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가, 부산 북갑에서 하정우 후보가 한때 앞섰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깊어질수록 우세 상황이 하나씩 무너졌습니다. 이번 6·3 지방선거의 진짜 이야기는 출구조사와 본투표 결과 사이의 13시간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혼란의 시작, 12.3 내란이 남긴 정치적 좌표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1980년 5.17 이후 44년 만의 일이었죠. 그러나 이 계엄은 역대 어떤 계엄과도 결이 달랐습니다. 군이 국회를 포위하고 특수부대가 본회의장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고,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 앞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계엄 선포 2시간 40분 만인 새벽 1시 2분, 재적의원 300명 중 190명이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계엄은 약 6시간 만에 사실상 종료됐습니다.

그런데 12.3 계엄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은 한국 민주주의의 자기 방어 능력이 검증된 밤이었고, 동시에 깊은 상처가 새겨진 밤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도 거리로 나왔고, 이후 수십만 명이 매주 광화문과 여의도를 가득 채웠습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실존적 위기감이 집회 현장을 감돌았습니다.

12월 14일, 국회는 재적의원 204표 대 85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이탈표가 나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듬해인 2025년 4월 4일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을 선고했습니다. 8인 전원의 만장일치라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이 헌정사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일탈이었는지를 증명했습니다.

조기 대선은 2025년 6월 3일 치러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2%를 득표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약 283만 표 차이로 누르고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3년 만의 정권교체였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하고,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습니다. 취임 첫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한국갤럽 기준 64%로,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4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였습니다. 이후에도 지지율은 65~67% 구간을 유지하며 견고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계엄 사태는 정치 지형만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와 문화의 지층도 흔들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치적 무관심층, 특히 2030 세대의 각성이었습니다. 그간 정치와 거리를 두던 청년층은 계엄 당일 밤 SNS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역사 현장을 목격했고, 이후 대학가 시국선언, 자발적 집회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윤석열 정서를 넘어, 민주주의의 절차와 가치에 대한 세대적 재인식이기도 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계엄과 탄핵의 경험이 빠르게 콘텐츠화됐습니다. 그날 밤의 기록은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로 재생산됐고, '국회를 지켜라’는 집단행동의 서사는 시민 연대의 상징적 장면으로 각인됐습니다.

국제사회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계엄을 6시간 만에 무력화하고, 헌법재판소를 통해 대통령을 파면한 과정은 '민주주의의 회복력(democratic resilience)'의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법 계엄이 가능한 제도적 허점이 실재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민주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여당에 유리했던 6.3 지방선거 판세,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만에 치러진 6.3 지방선거는, 이례적으로 명확한 구도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취임 초기 국정 지지율이 65~67%에 달했고,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분열 조짐을 보이며 지리멸렬했습니다. 어느 정당이든 이 정도 지지율을 바탕으로 치르는 지방선거는 통상 집권당의 압승으로 귀결됩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민주당 압승' 헤드라인을 준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선거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야당 견제론'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특검을 둘러싼 논란이 보수 결집의 트리거로 작동했습니다. 집권 여당에 대한 국정 부정 평가 이유 중 '도덕성 관련 지적'이 증가했고, 민주당 지지율은 소폭 하락세로 꺾였습니다. 보수 결집이 현실화되면서 격차는 서서히 좁혀졌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오자, 언론사들은 헤드라인을 다시 써야 했습니다.

새벽의 역전극 — 같은 곡선을 그린 도시들
개표 초반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을 포함해 광역 대부분에서 우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박빙 지역이 하나씩 국민의힘 쪽으로 넘어갔고, 최종 확정은 광역 민주 12 대 국힘 4로 굳었습니다. 출구조사가 그린 압승의 윤곽이, 아침이 오면서 '충분한 승리, 그러나 압승은 아닌 모양새'로 변모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박빙 지역의 곡선이 거의 동일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전투표 비중이 큰 초반 개표에서는 민주당이 앞섰으나 본 투표가 본격 반영되는 후반에 보수가 결집하며 역전하거나 격차를 크게 벌리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1. 서울시장: 정원오 → 오세훈
개표율 20% 시점일 때 정원오 후보 65.29%, 오세훈 후보 32.41%까지 득표율이 벌어졌습니다. 두 배 차이였습니다. 이 숫자만 봤다면 아무도 역전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표율 93.8% 시점일 때 두 후보의 득표율이 역전됐고, 최종적으로 오세훈 후보가 49.22%를 득표해 48.07%를 득표한 정원오 후보를 1.15%포인트 차로 승리했습니다. 초반 30%포인트 넘는 격차가 새벽을 지나며 1%포인트 차의 역전으로 수렴된 것이죠. 이런 흐름을 설명하는 열쇠는 세대별 표심입니다.

출구조사가 공개한 세대별 데이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오세훈 후보는 20대 이하에서 56.8%로 정원오 후보(35.9%)를 20.9%포인트 앞섰고, 30대에서도 59.7%로 정원오(36.7%)를 23%포인트 차이로 앞섰습니다. 반면 40대에서는 정원오가 53.2%, 50대에서는 60.7%의 득표율로 오세훈(40대 44.9%, 50대 37.9%)을 앞섰습니다. 60대에서는 오세훈이 60.4%(정원오 38.8%), 70대 이상에서는 71.1%(정원오 28.1%)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분석하자면 이런 그림입니다. 2030과 6070이 오세훈 쪽으로 쏠리고, 4050이 정원오 쪽으로 몰리는 'U자형' 세대 분포를 보인 것입니다. 이 구조가 역전의 해부도입니다. 사전투표에 더 많이 참여하는 민주당 성향 4050의 표가 초반 개표를 압도했다가, 당일투표를 선호하는 보수 성향 60대 이상이 개표 후반 판세를 뒤집었습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에서 진짜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20대 남성의 75.3%가 오세훈에게 표를 던졌고, 정원오 지지율은 20.6%에 그쳤습니다. 20대 남성은 오세훈을 정원오보다 54.7%포인트 더 많이 지지한 셈입니다. 30대 남성은 오세훈(61.8%)을 정원오(29.6%)보다 훨씬 많이 지지했습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비교 대상을 놓으면 분명해집니다. 대구 출구조사에서 추경호 후보를 지지한 대구 20대 남성은 63.7%였습니다. 서울 20대 남성이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20대 남성보다 오히려 더 강한 보수 성향으로 투표한 셈이죠. 단,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출구조사 세대·성별 수치들은 선거 당일(6월 3일) 발표 당시에는 사전투표자 예측치가 누락된 오류 데이터였습니다.

KEP(방송사공동예측조사위원회)는 6월 11일 공식 사과하며 서울·대구·울산·충북 4개 지역의 성·연령별 데이터에서 한국리서치가 사전투표 예측치를 빠뜨렸음을 인정했습니다. 전체 당선자 예측치(정원오 51.4% vs. 오세훈 46.0%)는 정확했지만, 세대·성별 세부 수치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수정된 데이터를 보면 20대 남성의 경우 오세훈 지지 방향은 유지되지만 격차가 축소되고, 60대 남성은 당초 오세훈 우위(56.7%)로 발표됐다가 정원오 우위(57.7%)로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세대는 30대 여성입니다. 오류 정정 이후 데이터에 따르면 서울 30대 여성에서는 정원오 51.3%, 오세훈 45.3%로 정원오 후보가 약 6%포인트 앞섰습니다. 오류 발표 당시 오세훈이 53.6%로 앞서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이는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0대 여성의 54.1%가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지지했던 흐름과 유사하게 민주당 지지 기조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정원오의 30대 여성 지지율(51.3%)은 4년 전 송영길의 54.1%보다 2.8%포인트 낮아진 수치여서, 일부 이탈이 있었음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두드러진 점은 부동산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입니다. 서울의 지역별 구도를 보면 이 그림은 더 선명해집니다. 오세훈은 서울 25개 자치구 중 15곳에서 정원오에게 밀렸습니다. 427개 행정동 단위로 내려가도 220곳(52%)에서 정원오가 앞섰습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오세훈이 이겼습니다. 승부를 뒤집은 것은 '얼마나 많은 동네에서 이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나 크게 졌느냐?'였습니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용산구, 이 네 곳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오세훈은 강남3구에서만 정원오를 21만 7000여 표 차로 눌렀고(강남 약 10만, 서초 약 7.3만, 송파 약 4.8만), 여기에 용산구(1.9만)를 더하면 네 곳에서만 23만 9000여 표 차가 생겼습니다. 반면 나머지 21개 구를 다 합쳐도 정원오가 앞선 순득표차는 17만 9000여 표였습니다. 결국 오세훈이 최종적으로 약 6만 표를 더 받은 셈인데, 그것은 네 개 자치구가 만들어낸 23만 9000표 차와 21개 구의 17만 9000표 차 사이의 간극에서 나온 것입니다. 서울 전체 유권자의 83%가 사는 21개 구에서 진 선거를 나머지 17%, 강남3구와 용산이 통째로 뒤집은 셈입니다. 이 네 곳의 표심을 가른 것은 부동산 민심이었습니다. 재건축·재개발 기대감과 보유세 부담, 주택 공급 불안이 맞물리면서 서울의 부동산 표심이 오세훈 쪽으로 결집한 것이죠.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규제 기조로 서울 일부 지역의 민심이 악화된 것이 여권에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애초 서울 2030 여성 전체의 '변심'이 오세훈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출구조사 오류가 정정된 이후 근거를 잃었습니다. 정정된 출구조사에서 서울 30대 여성은 정원오가 51.3%, 오세훈이 45.3%로 오히려 정원오를 더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고, 20대 여성도 정원오가 56.7%로 오세훈을 크게 앞섰습니다. 그러므로 부동산 이슈가 서울 표심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주된 무게는 강남3구와 용산 등 특정 지역의 고령·자산 보유층의 결집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서초구(66.3%)가 자치구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등 강남3구와 한강벨트의 투표율이 지난 지방선거 대비 상승한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서울의 부동산 표심이 오세훈의 당선을 결정한 이 구조는 16년 전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2010년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22개 자치구에서 승리하며 10만여 표를 앞섰지만, 선거 이튿날 새벽 강남3구에서 오세훈이 12만 6000여 표를 더 받으면서 석패한 바 있습니다. 2026년의 정원오도 25개 구 중 15곳에서 이겼지만 같은 방식으로 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치 문법이 16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요?
2. 경남지사: 김경수 → 박완수
경남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극적인 출구조사 역전이 일어난 무대입니다. 출구조사에서 김경수 후보 54.3%, 박완수 후보 45.7%로 8.6%포인트 차이가 나왔고, JTBC 예측조사에서도 김 후보가 52.3%로 4.6%포인트 앞섰습니다. 두 조사 기관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그 순간 창원 김경수 캠프에서는 환호성이 울렸고, 박완수 캠프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박 후보 캠프 수석대변인은 "출구조사는 사전투표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고 본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왜 출구조사가 이토록 크게 빗나갔을까요. 열쇠는 경남의 인구 구조에 있습니다. 경남 전체 유권자 중 50대가 20.76%로 가장 많고, 60대와 70대 이상이 그 뒤를 잇습니다. 50대 이상 유권자가 전체의 58.44%를 차지하는 반면, 20대와 30대를 합친 청년층 비중은 22% 선에 머무릅니다. 고령층이 절대 다수인 도에서, 당일투표 선호 성향이 뚜렷한 보수 고령층의 표가 개표 후반에 대거 쏟아진 것이죠.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구조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여론조사 단계에서 김경수 후보는 20~50대에서 앞섰고, 박완수 후보는 60대 이상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출구조사가 상대적으로 젊고 진보적인 사전투표자의 패턴을 과잉 반영했다가 실제 개표에서 60대 이상 당일투표자의 표심이 흐름을 뒤집은 것입니다.

지역별 분포도 역전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경남 18개 시군 중 최대 도시 창원시에서 민심을 얻지 못한 점이 패인이었습니다. 창원 유권자는 경남 전체의 30%를 차지하는데, 김경수 후보는 창원시 1곳에서만 3만 표 가까운 차이로 박 당선인에게 뒤졌습니다. 창원 유권자는 85만 8000여 명으로 경남 18개 시군 전체 유권자의 30%를 넘습니다. 창원 한 곳에서 진 표차가 전체 패배 표차(약 5만 표)의 절반을 넘은 것입니다. 창원을 잡지 못하면 경남을 잡을 수 없다는 공식이 이번에도 확인됐습니다. 창원이 이렇게 기울어진 데는 박근혜라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 막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남을 두 차례 찾아 박완수 지지를 호소했고, 이 점이 김경수 후보가 판세를 뒤집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박근혜의 지지 기반인 TK 이주민과 60대 이상 유권자가 많은 창원·진주 등지에서 보수 결집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는 단기적으로 보수 결집에 기여했지만 중도층과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정적인 신호로 작용하는 양면성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반면 김경수가 선택한 전략은 서울 우상호와 거울상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원팀을 이룰 도지사'를 내세웠고, 선거 직전 진보당 전희영 후보와 단일화도 이뤘습니다. 그러나 경남에서 40년 이상 행정·선출직 경험을 쌓아온 박 당선인과 민선 8기 박완수 도정에 대한 지지세가 예상보다 견고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소 취소 특검법을 발의하는 등 당 차원의 악재도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됐습니다. 사전투표 직전 단일화를 했지만 역부족이었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원에서는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라는 슬로건이 국책사업 기대감을 자극하며 주효했습니다. 그런데 경남에서는 중앙정부와 연계하는 같은 전략이 역풍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반감이 강원보다 경남에서 훨씬 뿌리 깊다는 뜻이겠지요. 경남의 최종 투표율은 64.4%로 2022년 53.4%보다 11%포인트나 높았습니다. 투표율이 높으면 결과가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경남에서는 정반대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높은 투표율은 고령 보수층의 결집을 의미했고, 그것이 8.6%포인트 우세를 2.85%포인트 패배로 뒤집는 연료가 된 셈이죠. 이처럼 경남은 '출구조사의 한계'와 '영남 보수 저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현장이 되었습니다.
3. 대구시장: 김부겸 → 추경호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이 개표 초반 앞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선거의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출구조사 단계에서 방송 3사 기준 추경호 후보(49.9%)와 김부겸 후보(49.1%)의 차이가 0.8%포인트에 불과했고, JTBC 예측조사에서는 오히려 김부겸 후보(49.7%)가 추경호 후보(49.2%)를 0.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표 초반에 김 후보가 앞서는 국면이 연출됐지만, 개표가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추 후보가 역전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추경호 당선인은 약 52.73%, 김부겸 후보는 약 46.24%를 득표해 6.49%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보수의 심장'에서 민주당 후보가 개표 내내 경합을 이어가며 잠시라도 1위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영남 보수 블록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대구 최종 투표율은 64.2%로 역대 대구 지방선거 투표율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전체 유권자 204만 9683명 가운데 131만 6880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이해하려면 이전 선거 결과를 살펴봐야 합니다.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당시 대구 투표율은 43.2%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64.2%는 그보다 21.0%포인트 높은 수치이며, 종전 최고 기록인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의 64.0%마저 0.2%포인트 차이로 넘어선 31년 만의 최고치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구는 이번 6.3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이 18.65%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사전투표에서 꼴찌를 기록하고도 최종 투표율에서 역대 최고를 찍은 것입니다. 그만큼 본투표 당일의 유권자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4년 전에 비해 무엇이 달라져서 대구 시민 21%가 투표장으로 더 나온 것일까요? 이번 투표율 급등은 '보수 텃밭'에서 이례적인 초접전 구도가 형성된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국무총리를 지낸 김부겸 후보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추경호 후보가 맞붙으면서 대구 경제 회복과 보수 정치 재편, 지역 변화론이 선거 막판까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게다가 추경호 후보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습니다. 12.3 비상계엄의 그림자가 '보수의 심장' 대구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 것입니다. 선거 막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칠성시장과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추 후보 지원에 직접 나섰다는 점도, 이번 선거가 대구에서 단순한 지방선거를 넘어선 보수 정체성의 총력전으로 치러졌음을 보여줍니다.

문화일보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5월 25~26일 대구 유권자 8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구시장 지지도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 40%,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 38%로 나타났습니다. 두 후보의 격차는 오차범위(±3.5%포인트) 내였습니다.

개표 결과에 나타난 세대별 표심을 들여다보면 균열의 층위가 더 선명해집니다. 출구조사 기준으로 대구 40대는 김부겸 66.3%, 추경호 33.2%였고, 50대는 김 후보 57.3%, 추 후보 42.2%로 집계됐습니다. 30대에서도 김 후보가 50.7%로 추 후보 47.0%를 앞섰습니다. 반면 20대 이하에서는 추 후보가 54.9%로 앞섰고, 70대 이상에서는 추 후보가 남성 82.0%, 여성 80.9%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성별로 세분화하면 대구 20대 남성은 추 후보 63.7%, 김 후보 33.2%였던 반면, 20대 여성은 김 후보 53.7%, 추 후보 45.2%로 성별 표심이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40대는 남성(김 64.8%)과 여성(김 67.8%) 모두 김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40대와 50대가 민주당 후보에게 각각 66%와 57%를 넘는 지지를 보내며 사실상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 것은 이 세대가 오랫동안 눌러왔던 변화 욕구의 표출이었습니다. 역대 대구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40% 벽을 넘어선 것은 단 한 번, 2014년 김부겸이 40.33%를 얻었을 때가 유일했습니다. 당시에도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55.95%)에 15.52%포인트 모자라 낙선했습니다. 12년 뒤인 이번 선거에서 4050 세대가 보인 60%대의 집중적 지지는, 그동안 묻혀 있던 '비가시적 변화 욕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12.3 이후 누적된 정치적 환멸이 그 욕구를 촉발시켰습니다. 그러나 새벽의 역전은 고령층에서 나왔습니다. 사전투표보다 본투표를 선호하는 대구의 투표 성향은 이번에도 변하지 않았고, 70대 이상의 80%를 넘는 보수 결집이 개표 후반을 뒤집었습니다. "완강한 보수의 벽을 뚫고 대구 시민들이 변화의 열망을 모아주셨다"는 김부겸의 패배 소감은 그런 의미에서 정확한 분석에 근거한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의 열망은 실재했습니다. 다만 그것은 4050 세대에 집중돼 있었고, 고령층의 결집과 20대 남성의 보수 지지가 변화의 열망을 가로막았습니다. 대구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균열을 드러냈지만, 그 균열이 지각변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한 세대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4. 부산 — 한 도시, 두 개의 선택
부산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압축판 그 자체입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전재수 후보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를 꺾고 8년 만에 탈환했습니다. 4년 전 박형준이 66.4%로 압승했던 도시가 민주당 쪽으로 돌아선 것이죠. 전재수는 부산 전체에서 약 50.5%를 얻어 박형준을 2.6%포인트가량 차로 제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살펴봐야 합니다. 같은 부산의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동훈 후보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한동훈 42.96%, 하정우(민주) 41.26%, 박민식(국힘) 15.76%. 1392표 차의 신승이었습니다. 부산 시민은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선택하면서 보궐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출신 무소속 보수 한동훈을 뽑았습니다. 같은 유권자들이 서로 다른 칸에 다른 표를 던진 것이죠. 이런 교차투표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결과였습니다.

이 교차투표가 단순한 혼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데이터로 증명됩니다. SBS 탐사기획팀의 행정동 단위 분석에 따르면, 북구갑 8개 행정동 전부에서 시장 1위는 전재수, 국회 1위는 한동훈이었습니다.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무효표에 있습니다. 시장에 투표하고 국회의원 투표를 건너뛴 표가 8개 동을 통틀어 94표(0.1%)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유권자가 두 장을 모두 채우면서, 시장은 전재수를, 국회의원은 한동훈을 나눠 찍은 것입니다. 헷갈려서가 아니라 그렇게 찍기로 마음먹은 결과였습니다.

그 엇갈림의 크기도 측정됐습니다. 같은 유권자들이 시장 투표지에서는 전재수에게 55.0%를 줬는데, 같은 날 국회의원 투표지에서는 민주당 하정우에게 39.8%만 줬습니다. 세대별 표심으로 들어가면 이 역전의 구조가 더 또렷해집니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 데이터를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는 전국 단위 세대별 출구조사이고, 다른 하나는 북구갑 현장의 투표 시점별 실측입니다. 먼저 전국 세대별 출구조사(KBS·MBC·SBS 공동)부터 보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20대 이하 남성은 33.0%만 민주당 후보를, 55.8%가 국민의힘 후보를 택했습니다(개혁신당 3.2%). 반면 20대 이하 여성은 66.4%가 민주당, 25.7%가 국민의힘이었습니다. 30대 남성도 민주 42.1% 대 국힘 48.6%로 보수가 앞섰지만, 30대 여성은 민주 63.5% 대 국힘 32.5%였습니다. 40대(민주 69.4%)와 50대(민주 69.5%)는 압도적 민주, 60대(국힘 50%)·70대 이상(국힘 59.3%)은 보수로 기울었습니다. 핵심은 2030 남녀의 정반대 표심과, 4050이라는 거대한 민주당 블록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성별 단층선이 북구갑에서 어떻게 시간차로 드러났는지를 SBS 데이터가 보여줍니다. 북구갑에서 사전투표함만 열면 하정우가 한동훈을 18.0%포인트 차로 압승했습니다(관내사전 하정우 54.5% 대 한동훈 37.9%, 관외사전은 하정우 56.8%). 그런데 본투표함만 열면 정반대로 한동훈이 46.5%, 하정우 33.4%로 13.1%포인트 앞섰습니다. 8개 동 모두에서 사전투표자가 당일투표자보다 27~35%포인트 더 진보적이었습니다. 동네 성격과 무관하게 일정한 이 격차는 '어느 동네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투표소에 나오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미리 결집해 사전투표함을 채웠고, 더 큰 본투표함(전체의 64%)에서 보수가 결집한 것입니다.

승부를 가른 건 결국 표의 양이었습니다. 당일 표(5만 1747표)가 사전 표(2만 9639표)보다 많았고, 한동훈이 당일에 벌린 표차가 하정우가 사전에 쌓은 표차를 끝내 넘어섰습니다. 부산 북구갑의 최종 투표율은 70.6%, 사전투표 비율은 부산 평균(21.3%)과 역대 최고 전국 사전투표율(23.5%)을 모두 웃돌았습니다.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에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진 자리에서, SBS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진보는 사전투표로 지지층을 단단히 결집시켰지만 그것은 이미 자기 편인 표를 모은 것이지 중도·무당파로의 확장은 아니었고, 정당이 아니라 인물로 움직인 당일의 남은 표심이 승부를 갈랐다는 것입니다.

북구갑의 구도가 특히 묘했던 건 보수표 분산 구조입니다. 국민의힘 공식 후보 박민식과 무소속 한동훈이 동시에 출마했는데도 한동훈이 이겼습니다. 박민식은 북구·강서구가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 있던 시절 18·19대 총선에서 이 지역에서 재선을 지낸 인물이지만, 20·21대에는 지역구를 옮겨 다른 곳에서 출마했습니다. 이번에 북구갑으로 돌아와 국민의힘 공식 후보로 나섰지만 15.76%에 그쳐 3위로 밀렸습니다. 보수 본진이라던 덕천1동에서조차 17.04%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덕천 3개 동 전체에서 한동훈은 44.5% 안팎을 얻었습니다. 보수 결집이 안 된 게 아니라 보수가 '간판'을 바꿔 단 것입니다. 물리적 단일화는 무산됐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심리적 단일화'가 작동한 결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SBS의 추산에 따르면 한동훈 득표의 약 3분의 2는 보수 기반에서, 약 3분의 1은 시장 선거에서 전재수를 찍은 스윙표에서 왔습니다. 한동훈은 한쪽 진영의 후보가 아니라 양 진영의 표심을 동시에 흡수한 후보였던 셈입니다. (이 비율은 SBS의 추정치로 출구조사로 직접 측정된 값이 아니라는 점을 남겨둡니다.)


전임자였던 전재수가 오거돈 이후 8년 만에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시장에 당선됐지만, 정작 그의 옛 지역구이자 2024년 총선에서 부산 18개 지역구 중 민주당이 유일하게 이겼던 북구갑은 범보수계 한동훈에게 넘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산의 모든 지역구를 범보수가 가져가게 된 것입니다. 전재수가 세 번의 총선에 걸쳐 새겨둔 15%포인트의 인물 프리미엄이 국회의원 투표지에선 민주당이 아니라 무소속 한동훈에게로 옮겨갔습니다. 다만 그 새 출발선은 두꺼운 표밭이 아니라 1392표 차의 살얼음판입니다. 북구갑의 표심이 전재수라는 '이름'에서 한동훈이라는 '과제'로 넘어간 지금, 다음 2년이 이 지역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새벽의 역전이 드러낸 대한민국 정치판의 단층선
새벽의 역전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단서는 출구조사 안에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서울시장 출구조사(정정 전 발표 기준)에서 20대 남성의 75.3%가 오세훈에게, 20.6%가 정원오에게 표를 줬습니다. 오세훈이 압도적으로 강세를 보인 서울 20대 남성이, 출구조사에서 0.8%포인트 격차의 초접전을 보인 대구 20대 남성(추경호 63.7%, 김부겸 33.2%)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투표한 것입니다. 서울 30대 남성도 오세훈(66.8%)이 정원오(29.6%)를 크게 앞섰습니다. 이 단층선이 새벽의 역전을 설명합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본투표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높고, 진보 성향층은 사전투표를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높게 나옵니다. 즉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많이 반영된 사전투표가 초반 우세를, 당일 투표에 결집한 보수 표심이 후반 역전을 만든 것입니다. 저녁 6시의 한국과 새벽의 한국이 달랐던 것은, 다른 유권자 집단이 다른 시간에 집계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상 초유의 변수가 겹쳤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당일 밤 사과문 발표 당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서울 14곳에서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전수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규모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중앙선관위 선거정책실은 이후 브리핑에서 실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가 전국 기준 송파구 14개소를 포함해 50개소라고 발표했고, 추가 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전국 140개소로 집계됐습니다. 서울만 보면 송파구 22개소, 성북구·강남구 각 9개소, 광진구 4개소 등이 포함됐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쇄 기준에 있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율 증가를 이유로 본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기존 60%에서 50%로 낮추는 지침을 선거 전 사무총장 전결로 개정했고, 송파구선관위는 이 하한 기준에 따라 선거인 수의 50%, 일부 투표소는 그 미만인 49.27%까지만 투표용지를 인쇄했습니다. 그러나 송파구 전체로는 4만 2000여 매의 투표용지가 남아 있었음에도, 146개 투표소 간 배분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해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동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사태는 투표 당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대가 결집해 투표함 2개가 개표소로 이송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투표소가 봉쇄된 지 35시간 만인 선거 이틀 뒤(5일) 오전 8시 54분, 경찰 기동대 약 1천여 명이 투입돼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투표함 2개를 반출했습니다. 투표함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에 오전 10시부터 개표됐고, 이로써 서울 지역 선거의 개표 완료가 선언됐습니다. 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불러온 파문이 어떻게 번져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이긴 선거인가?
수치만 보면 민주당이 이겼습니다. 광역 12 대 4, 서울 25개 구청장도 2022년 국민의힘 17·민주당 8에서 이번엔 민주당 17·국민의힘 8로 숫자까지 그대로 뒤집혔습니다. 14곳에서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이 4곳, 무소속이 1곳을 나눠 가졌습니다. 숫자 구도만 보면 민주당의 압승입니다. 그러나 6.3 지방선거를 둘러싼 환경을 함께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정권이 교체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선거 시점에 60%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출구조사도 민주당 압승을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최대 승부처인 서울 시장을 내줬고, 부산 북갑에서도 상징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광역 4곳만 가져갔지만, 출구조사나 개표 초반에 민주 우세 또는 박빙이던 곳을 후반에 대거 뒤집었습니다. 서울(오세훈), 경남(박완수), 대구(추경호), 부산 북갑(한동훈 무소속)이 모두 그런 사례입니다. 살아남은 후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장동혁 지도부와 거리를 두거나 지역 기반이 탄탄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오세훈과 한동훈은 당 지도부와 선거 기조를 달리하며 독자 노선을 폈고, 박완수는 현직 도지사로서 지역 행정 기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즉 국민의힘이 살아남은 것은 당의 힘이라기보다 개별 정치인의 힘이었습니다.

이번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민주당은 환경 대비 충분히 이기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진 것치고는 많이 살아남았다." 민주당은 광역·기초·국회·청와대를 모두 쥐었지만 서울을 놓쳤고, 국민의힘은 4개 광역을 지키면서 동시에 오세훈(헌정 사상 첫 5선 서울시장)과 한동훈(무소속으로 원내 진입)이라는 두 장의 잠재적 대권 카드를 살려냈습니다.
6.3 지방선거는 무엇을 남겼나?
선거가 끝나자 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당권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장동혁 책임론과 한동훈 복당론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오세훈의 서울 5선 수성과 한동훈의 원내 진입, 두 중도확장형 주자 사이의 보수 대권 경쟁이 사실상 앞당겨 시작됐습니다. 한동훈이 당선되면서 보수의 대표적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민주당도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전국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대 승부처 서울 패배에 따른 선거 전략 책임론이 불거졌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민주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신 국민들께 감사하다"면서도 "서울을 탈환하지 못해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이번 선거를 평가하는 민주당의 진짜 표정이 있겠죠.

오후 6시 정원오 캠프의 환호와 오세훈 캠프의 침묵으로 시작된 밤은, 개표 13시간 만에 정반대의 풍경으로 끝났습니다. 그사이에 드러난 것은 두 개의 한국이었습니다. 사전투표로 드러난 한국과 본투표로 드러난 한국이 갈리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가른 75.3%라는 서울 20대 남성의 숫자가 있습니다. 12.3이 낳은 정치적 충격은 1년 반 뒤 6.3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정산됐습니다. 그러나 정산 결과를 두고 두 개의 대한민국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겼지만 압승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졌지만 충분히 살아남았습니다. 양쪽 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 결과는, 향후 더 큰 싸움이 남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무대는 2028년 4월 총선, 그리고 그 너머의 대선입니다. 6.3 지방선거는 긴 이야기의 첫 페이지가 막 끝난 지점일 뿐입니다. 그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결과를 단정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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