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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우크라이나에 국산 포탄 제공, 이대로 괜찮은가?

by 생각비행 2023. 6. 1.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포탄 수십만 발을 이송 중"이라는 내용을 담은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난 5월 24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 내용에 의하면 비밀 합의에 따라 한국이 포탄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차례차례 우크라이나로 보내도록 준비했다고 합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에서 보낸다는 포탄의 출처가 어딘지 메이드 인 코리아가 새겨진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가는 것인지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이 보도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각국의 공식 입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5월 21일 G7 정상회의로 히로시마에 간 윤석열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처음으로 대면하고 정상회담을 했는데요,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의 인도적, 비살상 지원에 감사를 표한 바 있습니다. 그는 특히 지뢰제거 차량을 지원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협력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최근 방한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여사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인 듯합니다. 표면적으로 우리나라는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비살상 장비에 대한 지원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미국 등 세계 각국도 그렇게 공인해왔죠.

 

출처 -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와 관련해 미 국방부는 어떤 방식으로 포탄을 이송 중인지, 이송이 언제 완료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한 반면 한국 정부와 포탄 구매를 두고 협의해왔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에서 "풍산그룹이 포탄 계약을 하는 것은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선 한미 간 협의 중"이라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지원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폴란드를 통해 우회하는 것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여러 정황을 놓고 보면 이런 발언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포탄 크기를 155mm라고 못박았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우리 탄약창 세 곳에서 155mm 포탄 수십만 발이 경남 진해로 이송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당시 운송장에는 포탄이 진해에서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독일 노르덴함 항구로 간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미군이 전쟁 비축 탄으로 가지고 있다가 우리 군에 넘겼던 포탄을 대여 형식으로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는데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포탄이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로 보내질 것이라고 보도한 겁니다.

 

출처 - 뉴스공장

 

사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11월에도 한미 간 비밀 무기 합의를 통해 한국이 우크라이나군으로 갈 포탄을 미국에 팔기로 했다고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으니까요.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는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라는 조건을 달아 협의 중"이라며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이 바뀐 건 지난 5월 26일 한미 간의 워싱턴 선언 직후부터였다고 합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155mm 포탄을 200만 발 넘게 지원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며 물량이 고갈되자 전 세계에 포탄을 수소문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미 국방부는 독일, 이스라엘, 쿠웨이트, 한국 등에 있는 미군 포탄 비축분을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KBS

 

미국은 어떨지 몰라도 문제는 우리나라입니다. 포탄을 제공한 것이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대로 사실이라면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대전제가 되는 원칙을 어기고 분쟁 지역에 살상 무기를 지원했다는 점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헌법 60조 1항에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 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고, 2항에는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헌법 73조에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 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 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할 수 있으나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이번 포탄 지원은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육군참모총장도 모르게 우리나라의 155mm 포탄을 모아서 보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뭐, 엄존하는 세계정세 앞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다른 현실에 눈을 감은 처사라는 게 또 따른 걸림돌입니다. 국회에서 언급된 우리나라 풍산기업이 한 달 동안 만들 수 있는 포탄은 대략 2만 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십만 발은 1~2년을 꼬박 생산해야 만들 수 있는 양에 해당합니다.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항할 수 있는 포탄을 우리가 쓸 양도 남기지 않고 죄다 줘버리면 우리나라는 뭘로 지킬 건가요? 미국도 포탄 재고가 없어 전 세계에 빌리러 다니는 판국에 말입니다. 보수 정권은 왜 국방 정책마저 모순에 빠지는 건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게다가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렇게 미국과 일본에 '몰빵'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중국 의존도가 심한 우리나라 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윤석열 정부는 나라 살림을 말아먹을 심산일까요? 러시아 시장은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7 도중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곧 해빙되는 것을 보게 될 거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날을 세우던 중국과 호주도 화해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최근 중국이 2년 만에 호주산 목재 수입을 재개했습니다. 이런 국제 기류 속에서 중국과 거리를 두는 우리나라는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배터리 보조금조차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은 미국이 그때 가서 과연 우리 편을 들어줄까요? 대놓고 도·감청을 하는 관계인데 말이죠.

 

출처 - MBC

 

물론 이 와중에 G7에서는 반중국 메시지로 가득한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을 구매 대상에서 제외하는 강경한 제재에 들어갔습니다. 한마디로 한 손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상황입니다. 일촉즉발의 정세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국익을 위해 외교적 실익을 계산해야 할 때인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그렇게 할 실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암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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