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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세계 출산율 최저 기록 8년 연속 경신, 대한민국에 드리운 그림자

by 생각비행 2023. 3. 3.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안 그래도 출산율이 낮은 것으로는 세계 최고였는데 다시 한번 기록을 갈아치운 겁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출산율을 기록한 이래 85개월, 그러니까 7년 1개월간 단 한 번의 증가 없이 연속으로 감소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1.59명이고, 우리나라보다 한 계단 높은 이탈리아의 경우 1.24명입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됩니다. 안정적인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인데, 우리나라는 그 3분의 1인 셈이죠.

 

출처 - 뉴스1

출처 - 연합뉴스 / 서울신문

 

우리나라의 지난해 4분기 출생아 수는 5만 6357명으로 전년 대비 1400명 줄었습니다. 이는 출생아에 대한 통계를 낸 이래 분기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치입니다. 이 상태라면 50년 안에 인구가 1241만 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노인부양비는 전 세계 236개 국가 중 독보적인 1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일어날 문제도 많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고생할 것도 뻔합니다. 우리나라는 2020년에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로 3년 동안 출생아 수가 감소했으니 실질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셈입니다. 외신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CNN은 <한국,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 경신>이라는 타이틀로 뉴스를 냈고, 《워싱턴포스트》도 <한국은 자체 세계기록을 깼다>고 뽑았습니다.

 

출처 - 가디언

 

CNN은 인구 감소는 일본, 중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발생하는 경향이라면서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한국은 이례적이라고 했습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힘든 직업 문화, 정체된 임금, 증가하는 생활비, 결혼과 성평등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을 꼽았습니다. 또한 경제적 요인도 크지만 저출산 극복은 돈만 쏟아붓는 걸로 안 된다는 것이 한국의 사례로 판명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이 2006년부터 16년간 저출산 대응에 투입한 세금이 무려 280조 원에 달하니 외신이 주목할 만합니다. 전문가들은 돈도 돈이지만 몇 가지 뿌리 깊은 사회 문제의 개선과 아이들의 삶 전반에 걸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출처 - 로이터통신

 

 《워싱턴포스트》 역시 현금 인센티브보다 장시간 노동, 치열한 경쟁 사회의 교육 환경 등 가족 자원을 고갈시키는 근본적인 사회·문화적 원인을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양성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높은 집값과 교육비로 결혼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는 겁니다. 외신의 분석은 다 맞는 말이고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기득권은 이득을 나누려 하지 않고, 소시민은 살기 바빠 사회를 변화시킬 엄두를 못 내는 형편입니다. 임신 소식을 알리면 회사에서 축하는커녕 해고 통보를 받는 게 일상일 정도죠. 특히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상황이 심각합니다.

 

출처 - CNN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직장인의 35.9%가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 비율은 여성 직장인으로 가면 44.7%가 되고, 비정규직일 경우 54.3%,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59.9%, 월수입 150만 원 미만은 65.3%로 늘어납니다. 육아휴직은 이보다 더 심한 상황이죠.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쓰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복귀하면 무작정 나가라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출산휴가 중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면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회사는 법을 지킬 의지가 없고 동료들 역시 자기에게 돌아올 불이익부터 생각해야 하니 노동자들이 연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출처 - 시사저널

 

그렇다면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겐 대한민국이 과연 행복한 곳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잘 키워도 엄청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정원보다 입학할 학생 수가 이미 적지만 사회적으로 짜인 성공가도에서 벗어나면 죽는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이며 살아갑니다. 올해 대입 관련 통계를 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 쏠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정말 광풍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입 정시모집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자 중 29%가 등록을 포기했으니까요. 다른 대학의 의약학 계열로 빠졌기 때문입니다. 의대에 가겠다며 다니던 대학마저 자퇴하는 학생의 규모가 최상위권 대학,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더 커지고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이공계에서는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합니다. 대기업 취직이 보장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던 반도체 관련 학과조차 의대 광풍 앞에서는 무의미했습니다. 연세대의 경우 올해 반도체와 컴퓨터 관련 학과의 최초 합격자가 단 한 명도 등록하지 않았다고 하죠. 다른 대학의 의약학 계열로 학생들이 빠져나가 전부 예비 합격자로 채웠다는 얘깁니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되어 취업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는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모집인원 16명의 3배 가까운 인원이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탓에 등록 포기율이 275%에 달했습니다. 고려대, 서강대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최초 합격자는 대학 간판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다른 대학의 의약학 계열로 갔다고 보면 됩니다. 왜 이런 기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직장 생활을 할 때 금전적 처우, 유지 기간, 사회적 대우 등을 따진 결과다 보니 의약학 계열로 옮기는 학생들을 욕할 수만도 없습니다. 결국 성공가도의 레일을 잘 탄 극히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부모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고 태어난 아이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출처 - 최재천의 아마존

 

2021년 11월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왜 낮아졌는지,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지에 관해 생각을 정리한 유튜브 영상을 공유했습니다. 이 영상은 한국의 정치판과 남성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가 엉망이고 젠더 의식이 낮다는 얘깁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아이를 낳는 것은 바보거나 아이큐 두 자릿수 정도나 할 일이라고 작심하고 이야기합니다. 평소 점잖은 분의 말씀이라 짐짓 놀랄지도 모르지만, 영상을 보면 대한민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반어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매년 경신하는 나라, 10년 새 자살률이 100% 증가해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 최고인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함께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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