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규모 7.8의 강진은 금세기 들어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최악의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될 듯합니다. 지진 하루 만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사망자가 80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일주일이 채 안 된 11일 시점에 사망자가 2만 4000명을 넘었습니다. 16일(현지시각)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규모 5.2의 강력한 여진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6일부터 16일 현재까지 사망자가 4만 2000명을 넘었습니다.
출처 - KBS
얼마 전 UN이 앞으로 사망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강력한 여진이 발생하고 있으니 피해 규모가 얼마나 더 커질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에서 기부가 이어지고 구조대가 답지하고 있지만 새벽에 사람들이 자는 중 강진이 덮쳐 그대로 매몰된 사람이 너무 많고 현지의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건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생존자들은 추위와 배고픔은 물론 범죄 위협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입니다. 지진으로 혼란한 시국을 틈타 약탈과 총격 상황이 벌어지면서 튀르키예 일부 지역에서는 구조 작업마저 중단될 정도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21세기 들어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가져온 지진은 2010년 아이티 지진(22만~31만 6000명),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쓰나미(16만~22만 7000명),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7만~8만 7000명), 2005년 파키스탄 지진(7만~8만 6000명)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을 주었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의 사망자수가 1만 9846명이었던 걸 보면, 이번 튀르키예 지진이 얼마나 큰 인명 피해를 내고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맥사테크놀로지
세계 각국의 구조대와 인공위성이 타전한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면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인명 피해가 집중된 주거 지역뿐 아니라 외곽 역시 지진으로 인해 그야말로 땅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8일 미국 민간위성업체가 공개한 위성 자료와 튀르키예 IHA 통신 보도를 종합하면 대지진으로 단층이 이동하면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 전에 없던 협곡이 새로 생길 정도였습니다. 35만 제곱미터 규모의 올리브 나무 밭이 둘로 찢어져 깊이 30m, 폭 200m의 거대한 틈이 생겼습니다. 미국 NASA는 이번 지진이 크고 강력하여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비슷하다며 일련의 단층 구간부터 지표면까지 모조리 파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런 가운데 건설회사들의 부실 공사와 이를 방치한 정부가 이번 대지진의 참극을 초래한 주범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강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3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종잇장처럼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죽는 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진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졸속 공사와 이를 방치 혹은 동조한 튀르키예 정부의 관리 탓이 크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분노한 민심을 달래보고자 100명이 넘는 건설업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했지만 튀르키예 국민은 독재자 에르도안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심판하겠다며 거세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11일 현재 튀르키예 재난관리국 발표에 따르면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만 최소 6500채에 이릅니다. 튀르키예는 1만 7000명의 사망자를 낸 1999년 대지진 이후 내진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2018년엔 지진 취약 지역의 건축물에 고품질 콘크리트 사용과 철근 보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에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건설사들이 불량 자재로 부실 시공한 결과 화를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번 지진의 규모가 컸지만 규정대로 건축했다면 건물의 기둥들만큼은 온전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완전히 무너지는 건물이 줄어 사망자가 훨씬 적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1년 전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최신 방진 규제를 통과한 1등급 건물이라고 광고한 신축 아파트마저 이번 지진으로 완전히 주저앉아버리자 이에 분노한 튀르키예의 한 뉴스 진행자는 건축회사와 허가를 내준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출처 - CANLI
정부는 당연히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1960년대 이후 튀르키예 정부가 안전규제를 위반한 건물에 대한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면제해주면서 부실을 사실상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튀르키예 건축가 연합 대표는 지진 피해 전역에서 7만 5000채에 달하는 건물이 행정처분 면제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지난 1999년 대지진 당시 세계은행의 튀르키예 담당 이사 역시 CNN 인터뷰에서 튀르키예 정당에 자금을 댄 건설사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면제권을 줄 것을 알고 있었을 거라며 이게 더 큰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죠.
출처 - YTN
한편 1999년 대지진 때문에 튀르키예에는 '특별 통신세'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지진세'라는 세목을 생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진세는 지난 20년간 6조 원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년 후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6조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수십년간 걷은 세금이 어디로 간 것이냐며 그 돈이 권력자들에 의해 유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20년 동안 독재하고 있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0년 전 대지진과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부실 대응을 비난하며 국민들의 분노를 대변해 정권을 잡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20년간 독재를 하다 대지진과 경제위기로 인해 시험대에 올랐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죠. 튀르키예는 오는 5월 14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총선도 6월 18일 이전에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성난 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진 초기 국민의 SNS 접속을 차단하는 등 자신에게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 강경일변도였던 태도에서 벗어나 지난 10일에는 피해 지역을 방문해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등 자세를 낮추고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거듭되는 건설 사고 솜방망이 처분, 어떻게 봐야 할까? : https://ideas0419.com/1282 |
이번 참사는 먼 나라의 일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 없어도 프리미엄 신축 아파트가 부실시공으로 무너져 내리는 아찔한 사고가 불과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으니까요. 건설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정경유착은 우리나라도 튀르키예 못지않을 뿐더러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 지대에 있다고 더는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인명 구조와 복구 작업이 잘 이뤄져 인명 피해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동시에 우리나라의 문제 상황에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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