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새해 하루하루입니다. 지난 1월 12일 외교부와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를 두고 하는 소립니다. 그동안 루머처럼 돌던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이 공개석상에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박근혜 정부 당시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빼다 박은 꼴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국장이 공개한 해법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돈을 대신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관련 학계의 교수가 했다 해도 욕을 먹을 판국인데, 해당 부문 담당자가 나와서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의 전범 기업을 대신해 제3자인 우리나라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한다는 걸 '해법'이랍시고 들이민 겁니다. 서민정 국장이 얘기한 내용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한국 기업인 포스코가 낼 40억 원으로 갚아준다는 게 핵심입니다.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요한 대위변제보다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 없는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보면 박근혜 정보 당시 위안부 합의를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 형국입니다.
출처 - YTN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는 요식 행위는 하고 싶었나 봅니다. 지난 12일 공개토론회장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발언을 위해 일부 참석한 상태였으니까요. 참석 자체가 굴욕이라고 생각한 일단의 피해자들은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당일 참석한 피해자 8명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도 5분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의견을 청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요식 행위로 그들의 참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죠. 결국 광주에 계신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인터뷰를 통해 그런 돈 받지 않겠다, 내가 동냥하는 사람이냐고 하며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요구는 배상금이 아니라 일본 전범 기업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겁니다. 이는 기초적인 역사의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문제일 테죠. 배상금 논의는 제대로 된 인정과 사과 그다음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절차적 문제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내세운 해법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일본 전범 기업의 강제징용 가해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의 취지는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일본 기업이 벌인 강제 노동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자료를 가해자가 아니라 제3자가 지급한다면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셈이 되고 일본 기업은 손도 안 대고 코 푼 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게 일본은 대체 어떤 의미이길래 피해자는 물론 사법부의 판결까지 무시해가며 남의 나라 일본의 구둣발을 핥는 걸까요?
출처 - JTBC
일본 언론, 특히 우익 언론들은 환영일색입니다. 《산케이신문》은 토론회 전인 1월 4일 '지난해 말 열린 국장급 협의에서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 국장이 일본 쪽에 공청회와 공개 토론회 이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수십 년을 견디며 역사적인 투쟁 끝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최종 재판에서 승소했습니다. 피해자의 연대와 시민들의 지지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나라 정부가 이를 무력화하는 발표를 하고 있으니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겪는 분노와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강제징용 문제는 단순히 빚을 청산하는 민사소송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우리나라가 내린 사법 행위가 실제로 구현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야 하는 사법 주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에 대해 국민의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의 정부안에 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외교부의 생각은 12일 요식행위인 토론회를 끝으로 서둘러 일본에 최종안을 갖다 바치는 것이었겠죠. 하지만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말할 것 없고 일반 국민의 여론이 이렇게 차가울 줄 몰랐나 봅니다. 토론회 직후 주요 언론이 내놓은 사설을 보면 정부안을 지지하는 건 《조선일보》, 《문화일보》 정도밖에 없습니다. 좌우를 가지리지 않고 정부안이 미흡하거나 반대한다는 사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 전범 기업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 안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외교부는 이번 토론회가 최종안은 아니라고 한 발 뺐습니다.
출처 - JTBC
결국 공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어갔습니다.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없는 제3자 대리 변제 방식의 강제 징용 해법을 밀고 나갈지 말지 결정하는 건 최종 결정권자의 몫이니까요. 취임 첫해 지지율이 30%를 간신히 넘긴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재 대통령은 윤석열이고,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버금가는 외교적 참사가 될 강제징용 대리 변제를 하고도 남을 위인이죠.
출처 - 노컷뉴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각) UAE(아랍에미리트)에서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을 만나던 중 "UAE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라며 "UAE는 우리의 형제 국가다. 형제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란을 한국의 적으로 규정한 것이죠.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즉각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적국'으로 규정된 이란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디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국가들과 이란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와, 신속하고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직격했습니다.
출처 - KBS
이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비외교적'이라고 비판하며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요구했습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이란 국영통신 IRNA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디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윤 대통령의 최근 간섭적인 발언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카나니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과 UAE를 포함한 페르시안‧걸프만 국가 간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또 긍정적인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어떤 입장일까요?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대통령께서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이란도 우리의 발언의 취지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외교부의 수준입니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네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미국 순방 중 했던 욕설 파문("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을 두고,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억지를 부리더니,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 아예 없다는 식으로 해명하는군요.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이란이 발언의 취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니,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출처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외교 참사를 일으켰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1월 18일 오전 국회 본청 당 대표 회의실에서 "이번 순방에도 어김없이 외교 참사가 발생했다"며 "형제국이라는 UAE를 난처하게 만들고, 이란을 자극하는 매우 잘못된 실언이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현지 교민들은 물론이고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우리 선박도 적지 않은 곤경을 당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1월 18일 오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른 외교 참사는 무지(無知)해서입니까, 아니면 무치(無恥)해서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의 실언에 국격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의 외교력이 멍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실언에 국격이 훼손된 또 한 번의 외교 참사"라며 "우리나라가 이란산 석유 수출대금 70억 달러를 동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불필요한 오해를 키운 것도 국익에 해만 끼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른 외교 참사는 무지해서입니까, 아니면 무치해서입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출처 - 전북일보
윤석열의 외교 참사, 그 끝은 어디일까요?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숱한 외교 참사를 일으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설익은 통치관, 왜곡된 역사관으로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압수수색이 국가 통치 행위의 전부일 뿐인 윤석열 정부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걸까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들끓는 민심의 후폭풍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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