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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전장연 출근길 시위 대책이 겨우 '무정차 통과'라니...

by 생각비행 2022. 12. 21.

국민의힘이 집권한 뒤부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탄압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대한 정부 지자체의 대응이나 언론의 시선도 편견과 혐오로 가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2월 8일 TV조선은 단독 기사로 서울시가 전장연 시위를 해결하겠다는 발표를 보도했습니다. 전장연이 출근길 시위를 하면 그 역을 무정차 통과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전장연 시위가 벌어지는 역사를 무정차 통과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고, 오세훈 시장은 서울교통공사의 보고를 받은 뒤 경찰과 협의해서 무정차 통과에 따른 후속대책을 논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서울시의 결정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이른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기조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 대응처럼 전장연 출근길 시위도 불법으로 보고 법대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는데요, 이는 어떤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중 하나인 파업과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의 시위가 '불법'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 본인과 처가의 불법에 눈감는 사람이 과연 '법'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윤핵관인 국민의힘 권성동은 서울시 발표에 더해 망언을 추가했습니다. 전장연 출근길 시위가 예상되는 역은 무정차 통과를 해야 된다고 선동하면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인 김상훈 역시 전장연이 이동권을 볼모로 6000억 규모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며 특정 단체가 시민을 볼모로 삼아 수천억 혈세를 좌지우지했다는 선례가 생기면 제2, 제3의 전장연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죠.

 

출처 - 민중의소리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존재하는 세금을 장애인 복지에 쓰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혈세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네 당 소속인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사태로 국가경제 경색을 초래한 데 대해 최소한의 책임 추궁이라도 해야 하는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뚫린 입이라고 내뱉는 말들이 죄다 '내로남불'뿐일까요? 전장연 시위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대통령실과 여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죠. 서울시 실무자와 서울교통공사 실무자들은 전장연 시위에 무정차 통과를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 입김이 있었냐는 말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입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죠.

 

출처 - 뉴스1

 

애초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무정차 통과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전장연이 지난 12일 삼각지역으로 출근길 시위를 예고했을 때 진짜로 무정차 통과해버리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삼각지역을 건너뛰면 단순 지연을 넘어 그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예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가 없게 되는 셈인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지하철 공사의 무정차 통과 관련 규정도 애매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승객 폭주, 소요사태, 이례상황 발생 등으로 승객 안전이 우려될 경우 역장과 협의하여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시킬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승객 안전이 우려되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거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전장연 시위가 있는 역을 다 통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 때문에 SNS에는 2호선 역마다 전장연과 연대 시위를 하면 아무 역에도 정차하지 못하고 계속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설국열차 서울판'을 만들 수도 있는 거냐는 풍자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풍자가 무색하게 삼각지역 무정차 통과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처 - 뉴스1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자신들을 거스르는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굴복시키고 싶어 합니다. 화물연대 파업을 무력화한 것처럼 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시가 나서서 전장연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야기하는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방식에 발맞춰 극우주의자들은 장애인 전체를 모욕하는 일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혐오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전장연이 왜 이런 방식으로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 MBC

 

장애인 단체의 시위 현장에서 어떤 사람은 장애인들이 무임승차 안 하고 돈 내고 타면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다 깔릴 것이라는 막말을 했습니다. 인터넷상에는 저상버스 보급 기준이 장애인이라는 소수 집단 이기주의 아니냐는 글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장애인은 사회적 강자 아닌가'라는 망언까지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혐오는 개인의 감정 배설일 뿐, 맞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출처 - MBC

 

우리나라 대중교통 무임승차의 80%는 노인입니다. 장애인 무임승차는 17%에 불과하죠. 17%도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2020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장애인 인구가 전체 장애인의 49.9%로 절반을 차지합니다. 장애 노인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수 있죠. 이처럼 철도 무임승차로 인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건 장애인이 아니라 인구 고령화가 근본 원인입니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건강한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누구든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이기도 합니다.

 

출처 - MBC

 

전장연 시위를 두고 '시위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작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레시안》은 지난 4월 5일 <'이동권 선진국' 핀란드도 '장애인들의 목숨 건 시위'가 시작점이었다>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 그리고 의회는 이를(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평등한 접근권 실현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효과적인 갈등 중재 및 민주적 의사결정을 선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책무가 있다"면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위해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의회와 정당의 모습이 절실히 요청된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장애인'만을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장애인 이동권은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이라는 더 넓은 관점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이며, 미래의 내가 편안한 세상을 앞당겨 만든다는 관점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습니다.

 

출처 -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

 

생각비행에서 출간한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는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편의제공'이란 시설·장비의 설치 또는 개조, 화면 낭독·확대 프로그램, 점자단말기, 확대독서기, 인쇄물 음성변환 출력기, 장애인 보조기기, 수어 통역, 보조인 배치 등을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하는 법적 의무입니다. 과거에는 장애를 질병으로 바라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의료적 모델 관점으로 장애를 인식했기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치료해서 비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장애를 사회적 모델 관점에서 이해함으로써, 장애가 있는 사람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 유모차를 끄는 부모나 보호자도 편안한 환경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편안함을 느끼는데 비장애인이 불편할 리 없으니까요. 국민의힘과 서울시는 약자와 약자를 갈라 싸움 붙이는 갈라치기를 중지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탄압하는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역사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국민의 힘, 서울시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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