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차 파문을 다 기억하실 겁니다.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윤석열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치를 풍자한 고등학생의 작품이 현 정부와 집권 세력의 문화적인 퇴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드러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저급한 문화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죠.
출처 - 뉴시스
매년 열리는 부천국제만화축제는 수많은 매체에서 콘텐츠의 보고로 각광받는 만화 중에서 특출 난 작품을 뽑는 유서 깊은 축제입니다. 이번에 열린 전국학생만화공모전 부문이 23회를 맞이했다는 사실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죠. 이 축제는 문체부와 경기도 그리고 축제가 열리는 부천시가 건립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축이 되어 개최합니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문제 삼은 <윤석열차>는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입니다. 달려오는 열차에 놀라 달아나는 사람들과 이에 아랑곳없이 김건희와 칼을 든 검사들을 태운 채 폭주하는 기차를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로 표현하여 정치판을 풍자했습니다. 이 정도 풍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죠. 이 공모전에 정치를 풍자한 카툰이 출품된 것이 처음도 아니고, 수상 역시 처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문체부는 고등학생의 작품에 공식적인 대응 방침을 밝혀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부천국제만화축제의 후원 중 하나인 문체부는 이 작품의 금상 수상 직후인 지난 4일 해당 공모전의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을 엄정하게 살펴보고 관련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죠.
출처 - MBC
문체부는 입장문에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이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 측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내년부터 후원을 중지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 중이라고 언론에 밝혔는데요,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는 만행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콘텐츠를 내는 곳에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돈줄을 우리가 쥐고 있으니 알아서 기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군부 독재 시절 검열이 일상이던 때와 마찬가지로 정권의 가이드라인에 콘텐츠를 끼워 맞추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작품을 심사하고 전시를 주최한 한국만화진흥원 측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전시회는 매년 개최하는 만화축제의 부대 행사로 수상작을 전시했을 뿐 다른 의도나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풍자한 그림은 예전부터 있었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죠. 애초 작품의 모티브도 분명했습니다. <윤석열차>를 그린 학생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던 윤석열의 무궁화호 탑승 사진을 보고 그릴 생각을 했다고 밝혔으니까요. 온라인상에서는 문체부가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문체부가 나서서 엄중 경고 같은 발언을 안 했더라면 대부분은 <윤석열차>라는 작품의 존재도 몰랐을 테니까요. 그런데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두고 XX라는 비속어를 해놓고는 적반하장으로 MBC 등 언론사를 옥죄려 한 탓에 '윤석열 정부가 외치는 자유에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없나 보다'라는 비판이 한층 커지는 계기가 됐죠.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나서서 한 고등학생에게 시비를 건 탓에 <윤석열차>가 국정감사에 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도 문체부의 대응이 과했다는 의견이 나온 가운데, 국정감사에 출석한 법원행정처장은 <윤석열차>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연하지만 법원행정처장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출처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윤석열차> 작품이 논란거리가 됐다는 것 자체가 애초 윤석열 대통령이 UN 총회는 물론 주요 국내 행사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던 '자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방송을 통해 정치 풍자는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라고 말하기도 했고,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힘 있는 기득권자들에 대한 풍자가 많이 들어가야 국민 박수를 받는다면서 정치 풍자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본인의 입으로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의 얘기대로 한 고등학생이 카툰이라는 형식으로 권력을 풍자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결국 이번 논란은 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괘씸죄'가 본질입니다. 저급한 문화 인식으로 정부 부처가 고등학생을 상대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꼴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출처 - 전국시사만화협회
이번 사건에 대해 시사만화협회는 <'윤석열차' 외압 논란에 대한 성명서>라는 제목으로 ‘자유!’만 33번 꽉 채운 논평을 냈습니다. 윤석열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절에 해야 할 얘기는 제쳐두고 연설 13분 동안 ‘자유’란 단어만 33번 강조한 것을 패러디한 것이죠. 과연 시사만화협회다운 적절한 대응입니다. 이뿐 아니라 7개 만화단체를 비롯한 여러 예술단체와 시민단체 들이 성명을 내어 이는 명백한 차별이며 사상 검열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사실상 정권 비판적 내용에 대한 검열 메시지를 주입하는 블랙리스트라고 입장을 같이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프레시안
정부의 겁박이 먹히지 않자 국민의힘은 '표절 의혹'을 들먹였습니다. 보수언론들은 앵무새처럼 기사로 받아적었고요. <윤석열차>가 2019년 《더 선》의 논평 기사에 등장한 브렉시트 풍자 일러스트를 표절했다는 주장이었죠. 전체적인 구도는 비슷합니다만 풍자만화의 특성상 이를 오마주 했거나 우리 상황에 맞춰 패러디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각국 언론의 해외 만평을 봐도 해당 카툰의 패러디가 차고 넘치니까요.
출처 - SBS
국민의힘이 제기한 표절 의혹조차 윤석열 대통령에게 짐이 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훨씬 더 큰 표절 사태인 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으로 불똥이 튀었기 때문이죠. 누가 봐도 표절이 명백한 논문을 정부와 대학이 나서서 막아주고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생 작품에 표절 의혹을 제기하려고 해 봐야 긁어 부스럼일 뿐입니다.
출처 - 오마이TV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가 되레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한 고등학생의 작품을 전국적으로 유명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어른을 학생들이 인정할 리 없죠. '자유'를 남발하더니 정작 남의 자유를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먹이며 침해하려 드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지난 24일 국정감사에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윤석열차> 사건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뻔뻔한 것도 정도껏이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어디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만 죄다 모아뒀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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