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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이태원 압사 참사, 누구를 위하여 책임을 돌리나?

by 생각비행 2022. 11. 1.

10월 마지막 주말에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적 참사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분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10월 29일 밤 핼러윈 축제가 한창이던 이태원에서 155명이 숨지고 152명이 다치는(11월 1일 현재)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명피해가 난 사고입니다. 사망자 대부분이 10~20대 어린 나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 아픕니다. 핼러윈 축제의 성격상 외국인 피해자도 많았습니다. 14개국 26명의 외국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세월호 사건처럼 고립된 바다 위가 아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숨졌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그 이유가 압사 사고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주로 종교 행사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콘서트장처럼 출입이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번 참사는 서울 이태원 한복판 도로라는 열린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점 때문에 대형 사고가 벌어진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출처 - BBC코리아

 

아직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찰과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번 참사는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폭 3~4m, 길이 40m의 좁고 경사가 있는 골목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보입니다. 참사는 10월 29일 밤 10시 15분쯤 골목으로 몰린 사람들이 떠밀려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출처 - JTBC

 

사고가 발생하자 사람들의 신고로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출동했으나 운집한 사람이 워낙 많아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구조가 시급했으나 지체되는 바람에 밑에 깔린 피해자들은 더 버티지 못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얽혀 있다 보니 현장에 있던 시민들과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사람을 빼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3m 높이로 사람이 포개지면 제일 아래 있는 사람은 가슴에 무려 300kg의 압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혈액이 역류해 목과 머리 부분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되고, 복부가 밟히기라도 하면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어 몇 분 안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출처 - KBS

 

이번 참사의 경우 숨진 사람이 150명이 넘고 다친 사람을 포함하면 피해자가 300명이 넘습니다. 대체 얼마나 엄청난 무게를 피해자들이 받았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사람이 밀려서 깔리는 대규모 참사의 경우 사람 몇 명이 버티거나 조심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여성 사망자가 남성 사망자의 두 배 정도가 되는 것을 보면 힘이 없고 키가 작은 사람일수록 더 큰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우기던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일까요? 참혹한 참사를 앞에 두고 정부의 대처와 대응 방식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17만 명 정도 모였는데 종전과 비교해 특별히 많은 인파가 모인 건 아니어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관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얼마나 모순이 되는 말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나 봅니다. 예전과 똑같은 인파가 모였고 모일 것도 미리 알았다, 그래서 작년과 똑같이 대처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별 탈이 없었는데 올해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 꼴이지 않습니까? 이게 행안부 장관의 말이라니 참담합니다.

 

출처 - MBC

 

행정안전부의 기관 소개 글을 보면 "행정안전부는 국정운영의 중추부처이자 재난안전 총괄부처"입니다.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여 국정을 통합하고 정부혁신을 이끌어가는 부처"입니다. 또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전국을 골고루 함께 잘 살게 만드는데 앞장서는 부처"입니다. 그런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고하기는커녕 책임회피를 하려고 거짓을 이야기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핼러윈 축제 통제에 경찰 200명을 투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투입된 인원은 137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2021년에는 기동대 180명을 포함하여 총 268명이 투입됐습니다. 이번 핼러윈 축제에 투입된 경찰의 경우 순찰이나 동선 통제 등이 주 역할이 아니라 마약 단속 같은 다른 일을 위해 투입됐다고 하죠. 한편 이번에 사고가 난 골목은 경찰이 예년까지는 일방통행으로 통제해 사람들이 원활하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경찰 인력이 부족해 일방통행 통제가 없었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탓에 대혼란이 일어나 수습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출처 - YTN / 루리웹


이태원 상인들은 핼러윈 축제에 앞서 용산경찰서장까지 나온 자리에서 경찰과 지자체에 사전 통제 요청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청은 재난관리기본법상 안전관리 책임이 지자체에 있다고 했습니다. 용산구청에 시민질서유지와 통제를 철저히 하기 위해 2주 전에 있었던 지구촌축제 때처럼 질서요원을 배치하라고 요청했다고 하죠. 하지만 서울시는 용산구로부터 지하철 무정차 등 핼러윈 축제와 관련한 협조 요청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안전 조치에 필요한 질서 유지 요원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맞지만 대규모 통제에 대한 요구가 있지는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상인들을 중심으로 여러 우려가 나와 간담회를 연 것은 맞지만, 자영업자들이 자체 질서 유지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전과 달리 경찰이 통제선을 설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해명했습니다. 경찰은 통제선 설치 여부만으로 통제수준을 평가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찰 통제선이 그어진 게 반드시 더 강한 통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 대비한 경찰 대응 매뉴얼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경찰은 주최자가 없는 대형 사건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17만 명이 몰릴 걸 예상했다고 말할 정도면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경찰을 투입해 시민의 안전을 지키도록 해야 했지 않을까요? 5만 5000명이 몰린 부산 BTS 콘서트 때는 무려 경찰 1300명이 배치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로 출퇴근할 때 동원되는 경찰만 해도  700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17만 명이 운집하는 행사에 경찰 137명이 배치됐을 뿐인데, 이러고도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요?

 

출처 - YTN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태원에 경찰을 더 배치할 수 없었던 이유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촛불집회를 정조준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행안부 장관이나 되는 사람이 관할을 잘 모르고 있나 봅니다. 광화문 시위는 종로경찰서 관할이고 이태원은 용산경찰서 관할이죠. 부족하다는 용산 경찰 인원을 출퇴근할 때 700명씩 빼가는 사람이 대체 누군지, 과연 이상민 장관이 모르고 한 말일까요? 일각에서 '윤석열이 얌전히 청와대만 기어들어 갔어도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해외에 있던 그는 참사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시작한 일이 이른바 효율성 추구였습니다. 효율성과 예산을 핑계로 서울시 안전 담당 공무원 인력 감축과 업무 외주화를 추진한 겁니다. 지난여름 물난리가 났을 때 제대로 대처가 안 됐던 것은 다들 아시는 일일 테죠. 안전은 평소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여 유비무환식 대처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안전을 관리할 사람을 줄이고 외주로 넘겨 해결하려 하니 안전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 아닐까요?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정부는 공무원 감축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보조금마저 끊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참사가 터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공무원 1:1 매칭을 약속했습니다. 안전 담당 공무원을 다 자르는 상황에서 1:1로 담당할 공무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출처 - 연합뉴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 없는 거짓말에 희생자 유족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기자들 앞에 나선 한 어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조치가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라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1:1 공무원 매칭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유족들이 모인 대기실에 모포 한 장 눈물 닦을 휴지 한 장 없다. 유족들에 관한 건 뭐든 제일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미흡하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어젯밤에도 경찰 측에서 연락이 없어 우리가 먼저 실종자 센터에 전화했다. 여기로 이동하는 도중에야 담당 경찰한테 연락이 왔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또한 검안서를 기다리느라 5시간이 넘도록 아들 시신을 이송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검안서에 대해 물어보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그냥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합니다. 속이 터진 유족들이 직접 나서고 나서야 경찰은 부랴부랴 유족에게 검안서 없이 시신을 이송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애초 검안서가 꼭 필요한 게 아니었으면 왜 이송을 막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참사에 가장 먼저 대처해야 했을 지자체장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지 무려 18시간이 지나서야 입장문을 냈습니다. 해외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망망대해에서 벌어진 참사를 수습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언론은 참사 후 하루가 다 되도록 구청장을 비롯한 용산구청 담당자들이 왜 연락이 닿지 않았는지, 왜 입장 표명이 늦었는지, 게다가 그 늦은 입장문에 지자체의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언급이나 사고 예방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 표명이 없는지를 추궁했습니다. 이에 대한 용산구청장의 대답을 들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영혼 없는 사과"를 하기보다 사태 파악을 하고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서울시는 지하철 무정차 통과와 관련한 어떤 협조 요청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루가 지나도록 자신이 책임지는 지자체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사태 파악"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파렴치한 일입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입장 발표 자리에서 잘못된 답변을 하면 안 되니 부서 확인 이후 말씀드리겠다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윤석열, 오세훈, 박희영으로 이어지는 행정 참사를 보면 과연 이태원 압사 사고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내려놓을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왜 이런 작자들은 하나같이 사과하기를 싫어하는지, 사태 수습에는 왜 이리 무능한 건지 모르겠군요.

 

출처 - MBC

 

해외 주요 외신들은 이태원 참사를 보도할 때 정부와 지자체의 사전 안전 관리 미흡으로 인한 인재라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누리집 최상단에 속보창을 띄워놓고 한국에서 평화기에 발생한 가장 치명적 사고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노 마스크 후 첫 핼러윈 축제로 장기간 홍보된 행사인 만큼 정부의 인파 관리, 계획 등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인명피해 사고라고 보도했습니다. AP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고교생이었다고 지적하며 이번 참사도 젊은이의 피해가 컸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세월호 사고 당시 느슨한 안전 기준과 규제 실패를 드러냈는데 이번에 참사가 또 일어났다며 정부 당국자들이 공공 안전 기준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세간의 주목이 쏠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생각해보면 이태원 참사 같은 아찔한 상황은 우리 일상 속에 매 순간 존재합니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사당이나 신도림 같은 환승역을 이용해본 분이라면 계단과 승강장에 몰려 오도 가도 못하는 당황스러운 일을 겪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이태원 골목처럼 말이죠. 지하철역에 스크린도어가 있다지만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예사로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출퇴근을 안 하거나 지하철 이용을 안 하면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사람들이 운집하는 곳에서는 한두 사람이 조심한다고 해서 위험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많이 운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역마다 적절한 통제를 하는 등 관계 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통상적인 조치로 위험을 막을 수 없다면 상급 기관이 나서서 안전시설을 확충할 필요도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이태원 참사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참사가 일어난 뒤 왜 핼러윈 축제 같은 곳에 갔느냐는 식으로 개개인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2차 가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운집하는 곳의 안전을 책임지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가 공권력의 역할입니다. 예전에 하던 조치를 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면 이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합니다. 국민은 희생자를 애도하겠지만 국가가 그 뒤에 숨어 책임을 면피하려고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생각비행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분들께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아울러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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