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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 SPC 불매운동을 보는 우리의 시각

by 생각비행 2022. 10. 27.

파리바게트를 필두로 SPC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 국민 수준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습니다. 경기 평택의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가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새벽 6시 20분경 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혼합하던 23세의 여성 직원이 혼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였는데요, 앞치마가 혼합기에 끼여 기계로 상반신이 딸려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 한겨레

 

국내 제빵업계 1위 기업의 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음의 빵을 불매할 이유는 충분합니다만, SPC의 대처 방식을 보면 추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사고의 원인부터 사후 대처와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오로지 수단으로만 보고 돈독이 오른 악의의 결정체와도 같았으니까요.

 

출처 - YTN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사망한 노동자는 평소에도 격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피해자가 생전에 어머니와 나눈 톡을 보면 갑작스러운 야간 출근이 잦았고, 애초 근무는 12시간 맞교대 방식이었습니다. 사망 시간도 야간작업이 10시간에 이른 때쯤이었습니다. 생전에 빵을 좋아한 피해자는 고등학교에서 베이커리과를 전공할 만큼 빵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빵을 만드는 매장을 여는 게 꿈이었던 피해자는 고교 졸업 후 비정규직이지만 파리바게뜨 매장 제빵사로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좇던 젊은이조차 7개월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업무 환경은 살인적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빵 쪽 일을 그만둘 법도 한데 그래도 빵을 만들고 싶었던 피해자는 파리바게뜨에 빵 반죽 등을 납품하는 SPC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출처 - 비즈한국

 

SPL 평택공장은 법률로 정한 안전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습니다. 산업안전법 시행령에는 일하는 사람이 기계에 끼이는 걸 막기 위한 설비를 두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반죽 배합기에는 덮개나 자동멈춤장치가 없었습니다. 사고를 막기 위해 2인 1조로 근무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는 작업지시서에만 적힌 공수표일 뿐 실제로는 따로 근무하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더 어이없는 사실은 이 기계에 끼임 사고를 당한 사람이 불과 일주일 전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때는 천만다행으로 손가락 끼임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 노동자가 협력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추후 폭로되었죠. 안전 조치에 책임이 있는 공장 관계자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30분간 훈계를 했다고 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요. 그런데 다친 노동자는 다음 날 정상 출근해 똑같이 일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출처 - 한겨레

 

사람을 한낱 도구로 보는 SPC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올해 있었던 노조의 투쟁은 포켓몬빵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당시에 진행돼 생각비행에서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노동자 착취로 만든 포켓몬빵, SPC 노조 탄압 중단하라! : https://ideas0419.com/1291 

노동자를 착취하는 SPC의 행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망 사고 이후의 대처를 보면 SPC는 갈수록 참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PL 평택 공장은 사고 다음 날 곧장 기계를 재가동했습니다. SPL은 노동부가 9대의 소스 혼합기 가운데 인터록이 없는 7대에 대해서만 작업중지 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나머지 2대를 소스 배합 작업에 다시 투입한 겁니다. 국과수 감식이 끝나지 않아 사망자의 선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인데 SPL은 직원을 정상 출근시켜 빵을 만들게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동료 직원이 빨려 들어가 사망한 장소에서, 원인이 된 기계를 얇은 천 하나 두른 채로 일을 하게 하다니요! 심지어 일부 노동자는 회사의 지시를 받아 사망사고 직후인 16일 밤에도 출근해 재료를 폐기해야 했다고 하죠. 당시 사고를 목격하고 수습했던 노동자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피해자를 숨지게 한 기계를 옆에 두고 작업해야 했던 냉장 샌드위치 공정 노동자 150여 명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한 뒤인 지난 17일에야 휴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료 노동자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16일 오후 늦게 고용노동부까지 나서서 3층 샌드위치 공정 전체에 작업중지를 권하고 나서야 말입니다. 노동부는 해당 노조가 항의하자 뒤늦게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산업재해 사고의 경우 동료 노동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2차, 3차 사고의 위험성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PTSD까지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사고 발생 직후 피해자를 교반기에서 꺼낸 이들도 현장 동료 노동자였고, 기계 안에 피로 물든 소스를 퍼낸 이도 그들이었는데, 이런 참혹한 상황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출처 - 트위터

 

그런데 돈독 오른 SPC는 평택 공장 생산 라인을 세우는 게 마뜩잖았나 봅니다. 노동자의 사망사고로 평택 SPL 공장 라인이 멈추자 사측은 직원들에게 갑자기 짐을 싸라고 통보합니다. 그러더니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고 대구에 있는 샤니 공장으로 보냈다고 하죠. 평택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니 거기 가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라는 겁니다. 동료의 사망 사고만으로도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노동자들에게 생활 터전인 평택을 떠나 하루아침에 대구로 가라는 요구를 한 것이니, 이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사측은 이들이 언제까지 대구에 있어야 하는지, 쉬는 날은 언제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싸구려 숙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출처 - MBC

 

그런데 놀랍게도 SPC의 소홀한 대처는 여기서 멈추질 않습니다. SPC 그룹 계열사의 제빵공장에서 숨진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빵을 경조사 지원품이라며 빈소에 두고 갔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빵 소스 배합 작업을 하다 숨진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그 소스가 들어간 빵을 놓고 가는 건 상식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없죠. 유족들은 "우리 아이가 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숨졌는데 이 빵을 답례품으로 주는 게 말이 되냐"라고 분노했습니다. 시민들도 SPC가 사실상 고인을 능욕한 것이라며 격분했고요. SPC는 모든 임직원한테 보내는 장례물품이라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빵을 안 보냈으면 생산직이라 차별하는 거냐는 얘기가 나왔을 것 아니냐며 오히려 남 탓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SPC 측은 노동자에 대한 존중은 없고 오로지 사태를 빨리 덮을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SPC의 황당한 대응이 속속 알려지면서 SPC 사주 일가의 도덕성이 세간의 입에 오르고 있죠. 2018년 마약 사건으로 경영에서 배제됐지만 '영구'라는 말이 꼭 영원히란 뜻은 아니라는 명언을 남기며 복귀한 차남이 있었습니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과 그 부인의 행태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역사상 최대 금액이라는 647억 원의 부당내부거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8월에는 SPC 계열인 던킨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뒤통수를 쳐 각종 필수 물품을 두 배 이상 비싸게 공급한 사실도 알려졌고요. 차곡차곡 쌓인 악덕이 이번 노동자 사망 사고로 폭발하면서 SPC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출처 - MBC

 

파리바게뜨 불매운동으로 타오른 분노가 SPC 그룹 전반에 걸친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SPC가 신청한 파리바게뜨, 던킨, 배스킨라빈스 배장 앞 1인 시위를 금지한 법원 판결 이후 SNS에서는 오히려 법원이 금지한 59개 문구들이 #소비자 59라는 해시태그로 더 널리 공유되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뒤늦게 허영인 SPC 회장이 대국민 사과라는 이름으로 사과했지만 질의응답을 생략한 것과 누가 봐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게 드러나는 성의 없는 사과로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대국민 사과 당시 기자들이 "잘 안 들려요!"라고 더 크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을까요?

 

출처 - 한겨레

 

사고가 일어난 SPC 계열 SPL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작업 중지를 명령한 뒤 사업장 측의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7일 이 법이 시행될 때 경총과 전경련 등 기업 단체는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불평불만을 쏟아냈죠. 그런데 이번 SPC의 대처와 성의 없는 사과를 보면 법을 더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명백해졌죠. 노동기본권, 노조결성권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까지 무시하다가 전국적인 불매운동이라는 역풍까지 맞게 되었으니까요.

출처 - 전국민중행동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노동자의 끼임사 이후 SPC 불매운동은 SNS에서 확산돼 진화하고 있습니다. 바코드를 찍으면 SPC 계열사 제품인지 판독해주는 누리집도 생겼습니다. 익명의 개발자가 만든 깜:빵집이라는 누리집에서 바코드 사진을 찍거나 바코드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제품이 SPC  제품인지 알려줍니다. 바코드 번호에 제조사 코드 정보가 들어가 있는 점을 활용한 방법입니다. 개발자들은 2019년 남양유업의 오너 리스크로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때 만들어진 남양유업 불매 바코드 판독기 '남양유없'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출처 - 깜:빵집

 

이런 적극적 불매운동은 MZ세대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MZ세대 9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치소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8명이 자신을 가치소비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기업의 ESG 활동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제품/브랜드 선택 시 ESG 영향을 받는다'(5점 척도)가 평균 3.5점을 기록했습니다. 응답자의 78.2%는 친환경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는데요, '리사이클링'(40.7%), '플라스틱 프리'(36.1%), '제로 웨이스트'(29.4%), '업사이클링'(15.7%), '비건'(14.6%), '플로깅'(12.7%)을 실천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2개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응답자가 45%를 차지해, MZ세대가 친환경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MZ세대는 기업의 윤리성을 따지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에서 적용 가능한 실천을 능동적으로 합니다. SNS 환경에 익숙한 이들은 강력한 정보 생산력을 바탕으로 온라인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SPC  제품 불매운동의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 머니S

 

정부는 노동자 끼임 사고에 대해 법을 엄정히 적용하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멈추고 산업재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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