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개편안에는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고 외교부 장관 소속으로 재외동포청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가보훈부와 재외동포청 관련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공감하고 있는 바라 문제가 없지만 뜨거운 감자는 여성가족부 폐지였습니다.
출처 - SBS
국회 다수당이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가부 폐지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해 관련 기능을 이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상 수장을 장관에서 본부장으로 격하하는 셈이죠.
출처 - 한겨레
여가부 폐지를 우려하는 야당이 다수당이기에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만에 하나 통과가 된다면 여가부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이후 21년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가 폐지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수장인 본부장이 되더라도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장관급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처럼 말이죠. 그리고 여가부가 담당하던 청소년, 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은 복지부로, 여성고용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부 측은 그동안 복지부와 고용부의 정책이 여가부의 정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국정상 비효율을 초래했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출처 - MBC
정부조직 개편안 보고를 받고 민주당 측은 여가부 장관이 차관급의 본부장으로 격하되면 성범죄 관련 정책 논의 시 국무위원이 아니어서 타 부처와의 교섭력 등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최근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처럼 여성혐오 범죄와 젠더 갈등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여가부를 갑자기 폐지하면 '여성'에 대한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는 겁니다. UN에서도 성평등 관련 독립 부처의 필요성을 권고하고 있죠. 행정 관련 전문가들 역시 복지부와 여가부 기능을 통합하면 복지 행정 효율성을 추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성 권익 증진 등 여성에 초점을 둔 정책은 약화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기능적 측면을 고려하면 여가부가 복지부 산하가 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복지 행정 관점이 아닌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출처 - 경향신문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자문 역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부처가 아니더라도 관련 범죄에 대해 직접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기구 말입니다. 여가부를 정히 폐지하겠다면 여성 대상 범죄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과 연계해 강제 수사 및 집행 기능을 가진 여성위원회 같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이번 폐지 개편안은 국정 운영의 필요를 위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기 때문에 이런 보완책을 마련할 리 만무합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 우려 때문일까요?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월 4일 성명을 발표해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를 규탄했습니다.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한다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가부의 책무와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여가부 폐지는 여가부가 정말 필요 없어서라기보다는 과장된 반대 의견을 근거로 내린 정치적 결정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꼬집었습니다. OECD 회원국 중에 여성 전담기구가 있는 곳이 많고 오히려 확대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만 역주행하는 건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도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부가 나서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출처 - YTN
작년 우리나라 강력범죄 피해자 중 85.8%가 여성입니다. 폭력과 살인에 노출된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뜻이죠. 여가부가 있는 현재도 이에 대한 대처가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여가부가 사라지면 대체 어떻게 될까요. 복지부가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여가부가 복지부 산하가 된다면 다른 복지 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출처 - MBC
외신들 역시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여가부 폐지 소식과 관련해 《텔레그래프》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고 보도했고 《가디언》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GGI)' 순위에서 조사 대상 국가 146개국 중 한국은 99위를 기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WEF는 2006년부터 세계 각국의 성평등 상황을 교육·건강·경제·정치 등 부문별 여성과 남성 격차를 지수로 환산해 순위를 발표해왔습니다. 국가 내 여성과 남성 간의 격차만 보고 평가하는데요,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89(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146개국 중 99위로 지난해 발표와 비교해 0.002점 상승했고 순위도 3계단 도약했으나 여전히 하위권입니다. 우리나라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주장과 대치되는 상황이죠. 여가부를 폐지하면 여권이 더 신장된다는 생각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군요.
출처 - 한겨레
이 모든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개편안을 두둔했습니다. 여성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다뤄야 하는 부처의 장관이 말이죠. 김현숙 여가부 장관 지난 10월 10일 여성계를 대상으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때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단체만 초청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단체는 부르지도 않아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죠. 결국 지난 10월 20일 김현숙 장관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가부 폐지에 반대해온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YWCA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문직여성 한국연맹 등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비공개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출처 - 뉴스1
김현숙 장관과 간담회를 마친 후 6개 여성단체 대표들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민원실 앞에서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를 전제로 한 의례적인 설명회"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간담회 개최 명목이 '의견 청취'였지만 여성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 의견을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라고고 강조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여가부와의 협의를 통해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향후 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지난 10월 15일 서울 도심에서는 195개 여성, 시민, 노동, 사회단체 주최로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가 열렸습니다. 윤석열이 대선 때부터 여성 인권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국민을 기망해온 것과 급기야 여가부를 폐지하기로 한 것을 규탄하는 자리였습니다. 윤석열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여가부 폐지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인정하다시피 '이대남'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컸죠. 일부 의견을 국민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다 여가부 폐지까지 이르렀습니다.
출처 - 한국여성의전화
2022년 10월 4일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연대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고 여성가족부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결집하여 정부와 국민의힘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수만 명의 개인, 전국 643개 여성시민사회단체, 116개 국제시민사회단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후 더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하며 대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1
지난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 등 소관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내걸었습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내걸고 김현숙 장관의 퇴장을 요구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국정감사가 시작되지도 못한 채 감사가 중지되기도 했죠. 국민을 갈라치기해 이익을 취하려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면 투쟁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적 망신 자초하는 이들의 만행을 묵과해선 안 될 일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