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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세계적 식량 위기 앞두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열 내는 윤석열

by 생각비행 2022. 3. 2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세계 각국의 식량 안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국제 곡물시장에 영향을 주는 농업 대국이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의 밀 수출 비중이 전 세계 밀 공급의 30%에 육박하며 옥수수는 15%에 가깝다고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를 담당하는 두 나라가 전쟁을 하고 있으니 곡물 가격이 치솟을 수밖에요. 

 

출처 - 아시아경제

 

지난 3월 17일 관세청과 식품업계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 2월 톤당 곡물수입 가격은 386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26%나 올랐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20년 2월 당시 262달러와 비교하면 2년 만에 무려 50여 %가 오른 셈이죠. 밀가루와 옥수수가 식료품을 만드는 기본 재료이다 보니 다른 식품의 값도 연쇄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의하면 2월 3주 차 기준으로 떡볶이는 4개월 전보다 28%, 피자는 최대 20%가량 가격이 급등했다고 하죠. 햄버거, 커피, 맥주, 과자 등도 일제히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코로나19 펜데믹 여파로 곡물의 생산 단가가 올라가고 국제 수송이 원활하지 않은 와중에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오르내렸습니다. 이 역시 러시아의 유전과 천연가스가 큰 원인입니다.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군데서 전쟁이 터지면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휘발유 가격은 세계 평균보다 약 26% 비싼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3월 21일 기준 세계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33달러였는데요, 우리나라의 휘발유 가격은 이보다 25.9% 높은 1.68달러(1994.39원)였습니다. 한국은 집계 대상 세계 170개국 가운데 휘발유 값이 42번째로 높았습니다. 디젤 차량 비중이 큰 유럽 지역은 경유 수요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경유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자 국내 경유 가격도 덩달아 폭등하는 겁니다. 지난 3월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 가격 안내판에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높은 가격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 언론들은 식량 위기와 식량 안보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앞다투어 알리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년 전보다 20.7% 급등했다고 발표했고요.

 

출처 - YTN

 

블룸버그통신은 글로벌 식품, 사료 가격이 22%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CNN은 세계가 식량 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앞으로 수백만 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식량 수출국들은 식량을 무기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러시아는 지난해 밀에 수출세를 부과하더니 오는 6월 말까지 밀, 보리 등 주요 곡물과 설탕의 수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한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옥수수 수출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고, 헝가리도 이달 초 모든 곡물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팜유의 내수 공급 의무 비율을 20%에서 30%로 높였죠. 

 

출처 - YTN

 

문제는 코로나19 펜데믹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이 당장 끝난다고 하더라도 식량 위기 국면은 쉽게 종료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곧 파종을 시작하지 않으면 세계 식량 안보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수확 시기에 우크라이나 밀 생산량이 떨어질 경우 2~3배까지 밀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출처 - 시사위크

 

하지만 이보다 더 위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기후위기 상황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점점 불규칙해지는 기후 때문에 몇십 년 안에 우리의 식량 사정은 완전히 뒤바뀔 겁니다. 숭늉을 완전히 대체했다고도 할 수 있는 기호식품인 커피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수급이 위태로워지겠죠. 지구의 기온이 2도 더 올라간다면 가나에서 코코아를 재배할 수 없게 됩니다.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전 세계 커피 재배지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향신료 작물들도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죠. 인도에서 가장 큰 샤프란 재배지인 카슈미르는 건조한 기후로 작황이 나빠졌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최근 기후 탓으로 바닐라 생산이 큰 타격을 받았죠. 2017년에는 사이클론으로 작물의 30%가 날아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바닐라 가격이 킬로그램당 6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은 가격을 잠시나마 추월한 수준이라고 하죠. 이처럼 기후위기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던 식재료가 중세 시대처럼 귀족이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 되거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는 먹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녹색연합

 

식량 자급률이 45%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로서는 식량 안보와 먹거리 조달에 관심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농업관과 식량에 대한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2021년 8월 윤석열은 농지법과 관련된 여러 법률을 보면 경자유전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며 경자유전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죠.

 

출처 - YTN

 

농업이 하나의 비즈니스여야 하는데 법 규정이 이를 막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농업에 대한 것이 전략 농업물자, 농산물 비축, 경자유전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에 갇혀 있어 문제라고 했습니다.

 

출처 - YTN

 

 헌법을 강조하는 윤석열 당선인이 과연 헌법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땅을 소유해야 한다는 말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1항 :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되어야 한다.

 

농지법은 다섯 번의 큰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부 개인에서 농업생산자 단체나 농업법인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기는 했어도 농지법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농지법 제6조(농지 소유 제한) 2항 :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다만 소유농지는 농업경영에 이용되어야 한다.

 

경자유전 원칙은 우리나라만 적용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헌법이나 법률로 명시해 지키고 있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우리와 똑같이 경자유전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출처 – the 300

 

그런데 어떤가요? 윤석열은 경자유전을 폐지해야 하며 농업물자나 농산물을 비축해두는 건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했죠. 그의 말처럼 경자유전의 원칙이 폐지된다면 농지를 누구나 사서 용도 변경을 하고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게 될 테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사서 용도 변경을 한 땅을 농사를 지을 땅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부동산 투기 대상이 된 땅을 누가 농사짓는 데 쓰려고 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서 땅 주인은 농부가 아니더라도 기존에 농사짓던 농부에게 위탁한다고 해봅시다. 말이 좋아 위탁이지 사실상 소작농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소작농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자유전 원칙의 폐기는 개헌이 필요한 거대한 담론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우리는 코로나19 초기에 해외 수많은 나라 국민이 마스크가 없어 죽어나가던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초기엔 10부제를 시행하며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기도 했지만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죽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스크 생산 시설을 국내에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스크 산업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기고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코로나19 방역은 처음부터 틀어졌을 겁니다.

 

출처 - 뉴스웨이브

 

식량 안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기준 식량안보 세계 1위 국가는 어디일까요?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계열사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 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발표한 2020년 '글로벌 식량안보지수(GFSI, Global Food Security Index)'를 보면 세계 1위 국가는 농업국가와는 거리가 먼 핀란드였습니다. 북유럽 국가에 속하는 핀란드는 농업 비중이 전체 경제의 2%밖에 안 되는 나라인데도 식량안보로서는 세계 1위입니다. 핀란드가 식량을 자급률이 높거나 식량을 많이 생산해서 1위가 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상황까지 벌어지는 판국에 식량 전체를 해외에 의존하며 위기를 관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을 자급하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21년 언론 보도를 보면 호주의 식량자급률은 275%, 캐나다 174%, 프랑스 168%, 미국 133% 등 이른바 잘 사는 국가들의 식량자급률이 대부분 10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죠. 통계청이 내놓은 '2020년 경지면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경지면적은 156만 4797헥타르로 2019년 158만 957헥타르에서 1만 6160헥타르가 줄었습니다. 2012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8년 사이 여의도 면적의 551배에 해당하는 16헥타르 사라진 셈이라고 합니다.

 

출처 - kbc광주방송

 

코로나19로 상황의 장기화로 국민들은 물가를 견디지 못해 장 보기가 버겁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런데 "민생이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선거"라며 호소하던 윤석열 당선인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열을 올릴 뿐입니다. 중대한 위기의 길목에서 민생을 챙길 생각은 않고, '경자유전'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을 걸까요? 국민이 괜심 없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보다 정말 시급한 먹거리 문제나 신경 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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