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광주에서 건설 중이던 아파트 외벽이 붕괴하는 참사가 있었죠. 현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6명이 실종됐다가 1명은 곧 숨진 채 발견됐고, 사고 발생 17일째인 27일 오전 구조대원들이 28층 탐색 중 사망자 1명을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건설 중이던 건물이 붕괴한 사고여서 구조와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애초 사고로 34층부터 23층까지 10층이 넘는 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추가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주변이 통제되었고 현장 주변 109세대 주민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져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MBC
이 사고는 고층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졌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컸습니다. 60미터가 넘는 고층에서 건물 잔해가 떨어지는 바람에 주변 도로와 건물이 파손됐고 차량 20여 대도 손상됐습니다. 건물 잔해에 고압 전선이 끊겨 일대 110세대가 한겨울에 난데없는 정전되는 상황을 겪기도 했죠. 알고 보니 이 아파트의 시공사가 지난해 광주에서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를 일으킨 원청 HDC현대산업개발이었습니다. 당시 건물이 무너지며 갑자기 버스 정류장을 덮쳐 버스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죠. 이 사고 소식은 생각비행에서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광주 건물 붕괴사고, 총체적 난국의 인재를 보는 시각 : https://ideas0419.com/1189 |
광주 학동 버스정류장 붕괴사고는 하도급 업체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최종 책임을 피하지 못했고 현재 소속 관계자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당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사고 현장에 와서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습니다만, 불과 7개월 만에 똑같은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기업의 대응이 얼마나 허울뿐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참사를 일으킨 기업이 시내 한복판에서 큰 공사를 맡아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정작 문제는 사고를 수습하는 태도였습니다.
출처 – 뉴시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은 대국민 공개사과를 했으나 불과 5시간 만에 사고 원인 중 일부는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며 언론자료 배포에 열을 올렸습니다. 실종자 수색, 구조,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도 늦을 판에 전부 미뤄놓고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고 잡아 뗀 겁니다. 7개월 만에 건설 참사를 또 일으켜놓고 말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사태 수습보다는 책임 회피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뻔뻔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하고 나섰습니다.
출처 - JTBC
이렇다 보니 현장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외벽이 붕괴한 201동의 타워크레인 해체와 잔해물 제거 등을 업체 측에서 서둘러야 했으나 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실종자 수색이나 구조 작업이 한동안 이뤄지지 못했죠. 추가 붕괴 우려가 큰 상황이었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변명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수색 및 구조를 위해 급파된 광주서부소방서장이 실종자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대산업개발 안전경영실장에게 "이럴 거면 현대산업개발이 대신 수색에 들어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겠습니까?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잔해물 제거 등 작업 상황을 부풀려서 언론에 흘리는 등 실질적으로 아무런 일을 안 하고 버티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뿔난 시민들은 물론 동종 건설 업계 내에서도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현장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졌는데 왜 그렇게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업계 내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재건축이 아닌 신축 아파트에서 붕괴사고는 잔뼈가 굵은 현장 관계자들조차 처음 봤다고 하죠. 건설업계 전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법 완화를 주장하며 복지부동해도 모자랄 시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얼음물을 끼얹은 꼴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YTN
이에 광주광역시는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광주 지역 모든 공사를 중단하라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약 9000가구의 공사 현장이 올스톱된 겁니다. 동시에 건축, 건설현장 사고방지대책본부가 지역 내 모든 건축, 건설 현장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분은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부실 시공'과 '공기 단축'입니다. 붕괴 사고 아파트 현장 관계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중지해야 하는데 윗선에서 무조건 공사 기간을 앞당기라는 지시만 내렸다고 했습니다. 원청과 윗선의 막무가내식 지시로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키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겨울철에는 통상 10일에 한 개 층 정도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해야 정상입니다. 기온이 낮으면 콘트리트가 얼 수도 있고 단단하게 굳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4~5일에 한 층씩 올렸다고 합니다. 충분히 굳지 않은 콘크리트 위에 무거운 콘크리트를 부어대니 건물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문제 외에도 23층부터 38층까지 십수 층이 줄줄이 무너진 것을 볼 때 애초 아파트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원자재값 상승을 핑계로 기준에 미달하는 자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을 비껴가기 위해 윗선에서 그 전에 최대한 공사 속도를 내라고 닦달해댄 탓에 허술하게 공사가 강행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면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영책임자뿐 아니라 발주처까지 처벌을 피할 수 없었을 테지만, 시행 전인 상황에서는 기존의 건설기술진흥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정도만 적용되어 큰 처벌을 직접적으로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행 법률은 처벌할 수 있는 사업주를 사고현장 지휘자로 좁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HDC현대산업개발은 끽해야 1년 이내 영업정지나 5억 원 이하의 과징금 등의 행정처분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현장소장 등 현장 책임자는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처럼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원청은 쏙 빠지는 꼬리자르기식 처벌이 될 공산이 큰 셈입니다.
출처 -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 갈무리 /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이번 붕괴사고와 관련해 근본적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안전사고 사전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대책 강화 등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국회도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대하던 건설사들의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어도 원청업체에 합당한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되어 왔기에 새롭게 개정안을 마련할 것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은 건설 현장 근로자 사망 사고시 시공사에 1년 이하 영업정지나 해당 사업 부문 매출액의 최고 3%를 과징금으로 환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중대재해처벌법을 뛰어넘는 건설관련 안전 특별법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죠.
출처 - 광주드림
정의당 서울시당은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잇따른 붕괴참사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의 건설사 등록말소 처분을 촉구했습니다. 정의당 서울시당은 최근 3년간 건설현장 붕괴사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 33건 중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킨 시공사가 현대산업개발이라고 비판했죠.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시 안전총괄관에게 현대산업개발 건설사 등록말소 촉구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한편 광주에서 신축 아파트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틀 뒤 구미의 한 아파트 신축 건설현장에서 거푸집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런 아파트 사고가 전국적으로 한두 군데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광주 버스정류장 붕괴 참사 때 《뉴스타파》는 GTX 건설을 하는 포스코의 상식을 벗어난 폭파 시공으로 해당 라인 위에 있던 멀쩡한 아파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쿠키뉴스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건설사, 책임은 남한테 미루고 치적만 올리면 된다는 정치인, 허가를 내주며 콩고물을 나눠먹는 담당 공무원... 우리나라 건물 중 정말 정직하게 짓고 믿을 수 있는 건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듭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참사 등이 재조명되지만 수십 년 동안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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