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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요소수 품귀 사태,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느껴야 하나?

by 생각비행 2021. 11. 5.

최근 요소수 품귀 현상을 다루는 기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요소수 품귀로 물류망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도 자주 나옵니다. 디젤 차량에 필요하다는 요소수, 연료가 아닌 요소수가 대체 무엇이기에 차가 달리지도 못하게 되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요소수가 디젤차에 필요한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 때문입니다. 요소수는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사용하는 촉매제로 대기오염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NOx)을 인체에 무해한 질소(N2)와 물(H2O)로 환원한다고 하죠. 전 세계적으로 디젤 차량에 의한 대기오염이 화두가 되자 세계 각국은 이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우리나라도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를 적용해 디젤차는 선택적 환원 촉매 장치(SCR)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됐습니다. 

 

출처 - 투데이에너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디젤차를 클린디젤이라 부르며 보급 확산에 나서면서 디젤차가 급속히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차량 중 디젤차는 1000만 대 정도인데요, SCR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하는 디젤 차량은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약 400만 대입니다. 그중에 절반이 화물차입니다. 이 때문에 요소수가 부족해지면 디젤차 중 절반 가까이가 운행할 수 없게 되고, 특히 물류를 책임지는 수많은 화물차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지속된다면 연말을 앞두고 필연적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하겠죠. 결과적으로 식자재나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인상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이는 것일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출처 - 당근마켓

 

요소수 품귀 현상은 일종의 비상상황이니 차량의 정화장치를 무력화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이는 법적인 의무 사항이라 SCR만 무력화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더구나 수많은 차종에 대응하는 개별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데 과연 그 기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결국 요소수 품귀 현상이 왜 발생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중국과 호주의 '석탄분쟁'이 원인입니다. 전랑외교(늑대외교)로 인해 세계 각국의 분노를 산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호주와도 충돌하게 됐습니다. '전랑외교'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출처 - 시사원정대

 

중국이 호주로부터 석탄과 철강 등의 수입을 금지하자 호주는 수출 길이 막혀 일시적으로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겨울을 대비해야 할 때가 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중국은 난방과 전기 생산의 수요를 절대적으로 석탄 발전으로 지탱하고 있는데요, 석탄 수요가 급증하자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석탄을 비싼 값에 사 오게 된 겁니다. 중국과 호주의 무역 갈등으로 석탄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석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 사태가 빗발치게 되었습니다. 인도처럼 석탄 수요가 많은 나라들도 석탄을 구매하려 하니 석탄 가격은 더 치솟게 됩니다.

 

출처 - 매일경제

 

요소수를 생산하려면 일정한 고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생산업체는 채산을 맞추기 위해 석탄을 태워 온도를 유지해왔습니다. 애초 석탄에서 암모니아를 추출해 요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석탄 대란으로 인해 요소 생산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원재료가 모자라고 석탄 가격이 너무 비싸지니까 요소수 생산은 채산이 맞지 않게 됐습니다. 자국 내 석탄 부족으로 중국 정부는 사실상 요소 수출을 중단해버렸습니다.

 

출처 - YTN

 

바로 여기서 요소수를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던 우리나라의 상황이 문제로 등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용 요소의 무려 97.6%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셈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도 석탄 가격 폭등으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문제 상황은 없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상대적으로 EU는 디젤차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도 말입니다. 요소의 수입처를 한 곳에 의존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한 국가에 70% 이상 의존하는 품목의 경우 수입을 다변화하거나 재고 물량을 늘리는 등 전략물자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채산성이 문제라면 전략물자의 경우 세제 혜택 등을 주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코로나19 초기에 우리나라가 마스크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마스크 공급에 어려움이 없었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요소의 경우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2013년을 전후해 국내 요소 생산 업체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요소수 품귀 현상은 단순히 물류나 택배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당장 소방과 구급 문제가 대두하고 있으니까요. 소방청은 지난 11월 1일 전국 소방본부에 공문을 보내 요소수 수급 관리를 철저히 하고 비축량과 사용량을 일주일 단위로 공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국에 운영하고 있는 소방차 중 80.5%, 구급차량 중 90%가 요소수를 사용하고 있는 차량이기 때문이죠. 현재 전국적으로 소방 관련 차량용 요소수는 4개월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은 119 출발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요소수 가격 급등을 노린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국토부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점검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중국 정부가 요소에 대한 수출 규제를 푸는 것 말고는 요원한 듯합니다.

 

출처 - AP

 

요소수 품귀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기울이자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40% 저감 발언을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환경 챙기다 경제 망친다는 터무니없는 얘기까지 하고 있죠. 이런 정보가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당장 EU가 탄소국경세인 CBAM 도입 일정을 2023년부터로 잡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EU 생산품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공정을 가진 공산품에 대해서 초과분만큼 비용을 더 매기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그만큼 관세를 더 매긴다는 얘깁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행 산업 구조로는 관세가 1.6% 추가되면 매년 약 1조 2000억 원을 추가로 내는 꼴이 된다고 합니다. 보수 언론조차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추가 관세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출에 타격이 오지 않겠습니까? 탄소중립과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미 환경 이슈를 넘어 실질적인 경제와 직결된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 내후년부터 말이죠.

 

출처 - IOPSCIENCE

 

콜로라도 대학교가 전 세계 221개국 3만여 개의 화력발전소를 일제조사해 발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사했는데요, 상위 5%의 화력발전소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3%를 차지한다는 충격적 결과를 내놨습니다.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의 67%를 중국과 인도 단 2개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위 10개 탄소배출 화력발전소 보유국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들어 있습니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지금처럼 석탄 가격까지 오르는 세계적인 상황을 볼 때 2030년까지 석탄에 의한 탄소 배출량을 79%까지 줄여야 한다는 파리협약의 목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빌 게이츠 역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렇게 모두가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인류는 공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여기실 건가요? 그렇지 않겠지요. 우리에게는 에너지 전환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에서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번 요소수 품귀 사태를 통해 우리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는 한 국가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공동의 대응, 그리고 함께 정한 목표에 맞춰 각국의 정상적으로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국한해서 이해할 게 아니라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와 각국의 경제 활동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에너지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실천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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