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n번방 조주빈 징역 42년 확정,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갈 길 멀다

by 생각비행 2021. 10. 18.

지난 10월 14일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해 텔레그램 n번방 일명 '박사방'에 유포한 조주빈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42년의 중형을 확정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처음으로 적용된 범죄단체조직 혐의도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출처 - KBS

 

조주빈은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단체조직, 살인예비, 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징역 42년형 선고와 더불어 신상정보 공개, 고지 10년,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 전자발찌 부착 30년 등의 명령도 원심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힌 지 약 19개월 만에 확정된 형벌입니다. 나머지 박사방 운영진 네 명은 징역 7~13년이 확정됐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5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대법원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어 온라인 성범죄가 반인륜적 강력 범죄라는 입장을 대법원이 분명히 한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성범죄였더라면, 다른 범인이었더라면, 과연 이런 중형이 내려졌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버닝썬 사건'으로 온갖 성범죄를 저지른 빅뱅 승리의 경우 군사법원에서 받은 3년형도 무겁다며 항소한 상태입니다. 이러니 조주빈이 그냥 성범죄자였다거나 재벌 일가의 일원이었다면 형량이 훨씬 낮아졌을 거라고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죠. 그나마 이번 조주빈의 중형 선고는 성범죄를 다루며 최초로 조직범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성착취와 살인 예비를 위해 범죄조직을 꾸리고 확인된 것만 해도 800명 넘는 피해자가 나왔으니까요. 성범죄에 대한 우리 법조계의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사건만 보더라도 명백합니다. 1년 3개월 전 서울 고등법원은 세계 최대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에 인도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 이유로 웰컴 투 비디오 회원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 이후 웰컴 투 비디오 회원에 대한 추가 수사는 없었습니다. 손정우는 3000개가 넘는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을 올리고 회원들로부터 수억 원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징역 1년 6개월이 전부였죠. 국제사법공조로 체포됐기에 미국이 제대로 처벌할 테니 손정우를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인도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가 내건 이유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소비자이자 잠재적인 제작자가 되거나 새로운 관련 사이트의 운영자를 등장시킬 수 있는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 회원들에 대한 철저하고 발본색원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그러나 이후 조치는 없었습니다. 성범죄 피해 여성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원민경 변호사는 "당시 법원은 이례적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언급하면서 범죄인 인도 거부 결정을 내렸다"면서 "법원 결정에 사후적으로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 사법부는 오류를 정정하거나 유감을 표명해야 않겠느냐"라고 지적했습니다. 관련 보도가 나가자 경찰청은 부랴부랴 손정우와 암호화폐를 주고받은 웰컴 투 비디오 회원들을 추가로 확인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혀 빈축을 샀습니다. 조주빈이 42년형을 받았다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 여가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4973명의 피해자에게 제공한 상담, 영상물 삭제 및 수사 지원 서비스가 무려 17만 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피해자 수만 2019년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아무리 삭제해도 인터넷 도처에 남아 있는 디지털 성착취물 때문에 2차, 3차 피해를 받는 피해자도 부지기수입니다.

 

출처 – MBC

 

아동, 청소년 성착취를 목적으로 성적 대화를 반복하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을 형사처벌하고, 아동,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위장수사 제도를 도입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3월 23일 공포되어 9월 24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출처 - 서울경찰청

출처 - 로톡뉴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9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상습범에 대한 권고 형량을 최대 29년 3개월로 높이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안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SNS를 통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파괴하는 인격 살인과 같은 위중한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약간만 방심하면 승리나 손정우처럼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범죄자에 대해 제대로 된 사법 판결이 나오는지, 권력이나 돈이 있다고 불기소 처분되는 사례는 없는지 우리 사회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