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 정작 우리의 한국어 사용 능력은?

by 생각비행 2021. 10. 16.

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주가로 비유하자면 연일 상종가를 치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다시 말하자니 입이 아픈 BTS는 수주에 걸쳐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으로 다시 한번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죠. 여성 K-팝 그룹인 블랙핑크는 유튜브 조회수에서는 BTS마저 따돌릴 정도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출처 - SBS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영상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는 한국 드라마에 주목했습니다. <킹덤>이나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가 범아시아적인 인기를 선도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K-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최단기간에 1억 1100만 시청 가구를 넘기며 전 세계 시청률 1위 자리를 꿰찼습니다. 아울러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1위에 등극하며 범지구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죠.

 

출처 - 넷플릭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핼러윈이 끝나는 10월 말까지 <오징어 게임> 광고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핼러윈 특수를 맞아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착용했던 가면, 옷, 신발 등이 그야말로 폭발적인 기세로 팔리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속 게임 참가자들이 신고 나왔던 하얀 실내화 같은 운동화의 경우 무려 7800%의 판매량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출처 – 트위터

 

이뿐이 아닙니다. '미국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스포츠인 미식축구 경기에서 스타 선수가 <오징어 게임> 커스텀 신발을 신고 나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신발에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글자와 등장인물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었죠.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동영상이 SNS에 셀 수 없이 올라오고, 유럽의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딱지치기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국의 전통 놀이가 자연스럽게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겁니다.

 

출처 - YTN

 

이처럼 K-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놀라운 점은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BTS가 전 세계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도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의 힘이었습니다. 지난 10월 9일은 575돌 한글날이었는데요, 요즘 K-콘텐츠 열풍에 대해 세종대왕께서 아주 뿌듯해하지 않으셨을까요? 1990년대 프랑스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됐다가 입학하려는 학생이 없어 학과가 폐지될 정도로 인지도가 바닥이었던 한국어가 20여 년 만에 입시경쟁이 치열한 학과로 등극했습니다. 2015년 한국어가 프랑스 의무교육 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인정받은 이래 현재 총 22개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K-드라마와 K-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2018년에는 10: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학생들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19.4:1까지 치솟았습니다.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보르도대학교 한국어과는 무려 28: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하죠. 이처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한국어 공부에 열을 내고 있습니다.

 

출처 - KBS

 

좋은 흐름이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어데 대한 관심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운영을 지원하는 세종학당은 외국에서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교육시설인데요, 이곳의 대기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해외의 한국어 교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최근 1년 사이에 100여 곳이 더 생겼는데도 그렇다고 하죠. 예전엔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종학당이 생겼다면 최근에는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교육시설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교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만으로는 예산이 달려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 과거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정책이 현재의 폭발적인 인기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한글과 한국어 콘텐츠가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과연 한국어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 안타까운 측면도 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이 인기를 끌자 한동안 갓과 한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복(Hanbok)', '한류(Hallyu)' 등의 단어가 등재됐습니다. BTS를 비롯한 K-팝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곤 하는 한복 군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세계의 젊은이들은 우리 문화에서 큰 영감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2일 한복문화주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한복을 입고 국무회의를 했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한복의 위상은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죠. 한복상가의 점포는 감소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명맥이 끊길 지경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한복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괜찮지만, 실제로 입고 싶어 하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업계의 문제와 편견을 가진 소비자의 문제가 얽힌 복잡한 상황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K-콘텐츠의 세계적인 위상과 달리 우리 일상 속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언어 생활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의 주거를 책임지는 아파트 상표에 애칭을 포함해 순우리말만 사용하는 곳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요. 래미안, 힐스테이트, 더샵, 푸르지오써밋, 아이파크, 롯데캐슬 등등 외래어와 한자어가 뒤섞인 형태입니다. 공기업인 LH마저도 기존 우리말 상표를 버리고 휴먼시아나 안단테 같은 외국어 작명에 가세했습니다. 최근에는 당최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외국어, 외래어를 남발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죠. 마포래미안푸르지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둔촌올림픽파크에비뉴포레 등등 택배 주소 칸에 다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출처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층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인 중에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은 상황이라 국민 대부분이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이 읽은 정보가 어떤 의미인지 무슨 맥락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해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단순히 국어 점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글을 읽고 논리와 맥락을 찾아 적절한 판단을 하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면 수학이나 영어 능력도 덩달아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것이 가짜뉴스고 어떤 것이 옳은 정보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재 현재 한국 아이들이 당면한 문제입니다.

 

출처 - 한겨레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지난 5월 발표된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학생(중3~고1) 중 읽기·수학·과학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2009년 6.7%에서 2018년 14.8%로 급증했습니다. 가정환경이 하위 20%인 학생의 읽기 최하위 등급비율은 더욱 떨어져 2012년 13%에서 2018년 25%로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가 소득 간 학력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한편 교육부와 국가평생진흥교육원이 지난 10월 7일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비문해 성인이 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머니투데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이나 직장에서 웃지 못할 촌극도 자주 벌어지죠. 한 국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쪽지시험 날짜를 '금일'로 공지했는데, 왜 '금요일'에 시험을 보느냐고 묻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어국문과였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연휴가 '사흘'이라고 하니 '4일'을 쉬는 것으로 오해하고도 당당히 SNS에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앞장서서 한글을 파괴하거나 가짜뉴스 혹은 선동 기사를 올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일이 많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전 세계로 한국어 콘텐츠가 뻗어나가는데 정작 우리는 한국어를 파괴하고 우습게 여기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를 돌아보고 한글의 중요성을 다시 새기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을 익히는 학습자가 우리의 얼이 담긴 말과 글로 세상과 아름답게 소통할 수 있도록, 우리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끌어올리고 우리의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