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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페미니즘 백래시를 보는 우리의 시각

by 생각비행 2021. 9. 15.
"선생님, 메갈이죠?"
"선생님도 페미나치 아니에요?"

 

20대 여성 교사 세 명 중 두 명이 학교에서 페미니즘 백래시에 해당하는 조롱이나 공격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피해를 보고도 과반이 2차 가해 등을 우려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지난 9월 9일 발표된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사의 34.2%(여성 37.5%, 남성 19.6%)가, 20대 여성 교사 중에서는 66.7%가 최근 3년간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보복성 공격)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여성 교사라도 연령대가 낮을수록 백래시 피해 경험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백래시 가해자는 다수가 학생이었으며(66.7%), 그 뒤로 동료 교사, 학교 관리자 순이었습니다. 

 

출처 - 교육희망

 

사람들의 왜곡된 성인지, 언론의 클릭 장사를 위한 여성혐오 가짜뉴스 기사, 이대남(20대 남성)이 표가 될 것 같으니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이들을 두둔해온 정치권 등 우리 사회에서 백래시가 해악을 끼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지난여름 올림픽 9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여자 양궁의 스타인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 논란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죠. 

 

출처 - 연합뉴스

 

어떤 누리꾼이 왜 그렇게 머리를 자르냐고 물었는데요, 이에 대해 안산 선수가 그게 편해서라는 답을 달았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문답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산이 페미인 증거 찾기 놀이가 벌어졌습니다.

출처 - KBS

 

'숏컷 머리'가 페미의 증거라는 억지부터 '여대 출신'인 것도 페미의 증거이고 '마마무라는 가수를 좋아하는 것'도 페미의 증거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SNS에 '웅앵웅'과 '오조오억년' 등의 표현을 쓴 것을 두고 페미의 증거라고 들이대기도 했죠. 이런 반지성주의적인 행태에 많은 국민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안산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산 선수는 무사히 결승전을 마치고 3관왕이 되었죠. 그러나 도쿄올림픽이 끝난 지금까지 젠더 갈등을 기반으로 하여 페미니스트를 낙인찍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출처 - 제민일보

 

전문가들은 이런 낙인찍기가 놀이처럼 퍼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언론이 일부 남성들에게 잘못된 효능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일전의 '남혐 손가락 논란'을 생각해봅시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메갈리아의 손가락을 가져와 그때의 메갈들이 업계 곳곳에서 페미니즘 사상을 퍼뜨리려고 암약한다고 우기는 주장을 언론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GS리테일은 사과하고 포스터를 삭제했고 스타벅스 역시 손가락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들 기업이 정말 페미니즘을 유포하려고 이런 광고를 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영리 기업으로서 불필요한 논란을 속히 잠재우기 위해 사과문을 올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이른바 '남혐 손가락'이라고 우기던 이들에게 자기들의 논리가 옳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굴복했다는 효능감을 준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남혐 손가락'을 찾아 죄다 낙인찍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놀이가 아니라 '사이버 테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런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사람을 하찮은 음모론에 빠지게 합니다.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을 암약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며 "사건의 진위 여부, 만약 참이라면 그 전말을 밝히고 관계자들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페미니스트 단체가 일루미나티라도 되는 걸까요? 정부가 모르는 사이에 수년을 암약하며 사람들의 정신을 좌지우지하다니요? 애초 이 정보의 최초 발신지는 국내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야구갤러리였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 백래시를 위해 또 가짜뉴스로 선동하는구나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 성격의 청원이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의 동의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31만 4254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논란이 지속되자 교육부는 경찰청에 청원 내용 관련 사실관계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두 달 동안 수사했으나 피의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청원인이 올린 웹사이트 내 게시물 작성자의 닉네임 중 경상북도 소재 한 초등학교의 이름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학교 관계자와 담당 교육청 등을 조사했지만 피해를 본 학생은 없었습니다. 선생님 메갈이냐고 놀려대는 아이들이 정말로 이런 단체가 암약하고 있었다면 옳다구나 하고 교육부나 경찰에 신고를 했을 텐데 접수된 피해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죠. 애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그저 그렇게 믿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교조가 배후네, 좌파들이 빼돌렸네 하며 음모론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출처 - OBS

출처 - MBC

 

정치권과 언론, 기업 등이 지나칠 정도로 이대남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익이 크진 않습니다. 애초 20~30대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행태 자체를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남성들조차 정치권이 남녀 갈등을 너무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국민의힘의 경우 대선 후보들이 여성을 아예 유권자가 아닌 양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출처 - KBS

 

20대 여성은 같은 세대 남성보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유일한 세대로 조사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회 참여를 시위, 집회 참여와 정당 가입 등 전통적 참여와 해시태그, 청원 링크 공유 등 온라인 참여로 나눠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세대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전통적 참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회나 시위에 남자들이 더 많이 나갔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20대에서는 이 집회나 시위 같은 전통적인 정치 참여에서조차 남성보다 여성 참여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선거에서 젊은 여성일수록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데 정치권은 음모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대남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손가락 모양이나 헤어스타일을 찾아다닐 시간에 남성을 위한 정책을 생각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정작 자신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페미니즘 백래시를 그만두고 공격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남성의 일자리와 부를 뺏는 자들은 여성이 아니라 당신보다 위에 있는 남성일 테고, 당신의 군 생활을 괴롭게 한 건 여성이 아니라 당신의 선임이었던 남성과 국방부였을 테니까요.

 

출처 - 디지틀조선TV

 

성추행으로 시작된 보궐선거가 성차별로 문제를 키웠는데, 그 주체가 정치권이라는 게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여성 정책이 성차별 극복을 위한 방책이 아닌 편향된 혜택이란 시각과 지금 세대 여성에 대한 차별 수위가 낮아지면서 남성이 되레 차별받게 되었다는 논리. 여성 할당제를 폐지하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키면 젊은 남성들의 권익이 향상될까요? 이에 호응하는 이대남이 많을수록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필요한 젠더 갈등만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출처 - 백악관

 

청년실업처럼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다른 나라에서는 갈등을 부각하기보다 대안을 마련하는 실용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합니다. 유럽연합은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채택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도왔고,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가 청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부처별로 정책조정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참여했고 결과에 실망했을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저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절대 냉소에 빠지지 마십시오.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며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출처 - MBC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봅시다. 일자리와 소득, 주거 등 사회·경제적 문제는 20대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특정 세력을 향한 적대감을 드러내어 사회의 균열을 유발하는 정치인을 믿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정치는 희망을 희망을 이야기하고 정책으로 이를 실현해야 합니다.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란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생생하게 살아서 숨쉬고 있다. 비록 대중 기반의 운동 역량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게 우리의 첫번째 목표다. 우리 삶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선구적인 페미니즘 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 우리의 현재를 고심하게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젠더 평등이라는 목표에 있어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이러한 전진은 더 멀리 나갈 힘을 줄 것이다. 우리는 용감하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페미니즘 원칙들이 우리의 공적 사적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를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는 지배를 종식하여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존 남성 중심 사회에 도전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약자를 위한 정치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향상에 국한된 사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근거로 이제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물을 때입니다. "누구를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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