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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군사법원법 개정안 통과, 드라마 <D.P.> 열풍과 국방부의 변명

by 생각비행 2021. 9. 9.

최근 한 드라마 때문에 군대 다녀온 분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계시죠. 네. 넷플릭스 드라마 <D.P.> 얘깁니다. 웹툰 <D.P. 개의 날>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D.P.'라는 탈영병 추적조에 속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군대라는 조직의 불합리와 부조리한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혹자는 '현대판 추노'라고도 하더군요.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군대에서 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이런 <D.P.>의 대대적인 호평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는지, 극중 가혹행위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 국방부가 자진에서 입장을 내놨습니다. 드라마 속 군대는 한참 지난 과거의 일들로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현재는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도 없고 병영 환경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 및 각 군은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국방부의 입장에 동의하는 분이 과연 얼마나 계실까요? 드라마 <D.P.>의 원작인 웹툰은 2005년의 군대를, 드라마는 윤 일병 사건이 터진 201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1년 현재까지도 국방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압니다. 모병제도 아니고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성인 남성 대부분이 직접 겪은 일이 있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출처 - JTBC

 

국방부의 입장문 발표가 있었던 바로 다음 날인 지난 9월 7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 등으로부터 집단따돌림과 구타, 폭언을 겪은 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크게 다친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휴가를 다녀왔지만 선임들은 꿀 빨고 있다며 폭행과 폭언, 욕설을 지속했다고 하죠. 함장 등 간부들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도 사실상 방치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생각도 안 했습니다. 참다못한 피해자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 로톡뉴스

 

군 관계자는 드라마 <D.P.>의 내용이 15년 전에나 있을 수 있었던 군대 부조리라고 얘기하며 현실을 부정했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최근 2년 사이 가혹행위로 기소돼 군사법원에서 판결한 사건만 해도 44건입니다. 2020년, 2021년 단 두 해만 해도 민간법원에 연루된 사건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아지겠죠. 병영 생활은 수십 년 전과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습적인 폭행과 금전 갈취는 물론 전기로 지지거나 관물대에 가두는 가혹행위도 비일비재합니다. 최근 늘어나는 변태적인 성추행은 또 어떻습니까? 상황이 이 지경인데 실형이 선고된 가해자는 단 1명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국방부가 바뀌고 있다는 2021년 군대의 민낯입니다.

 

출처 – 박주민 의원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8월 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는 겁니다. 이로써 군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수사를 1심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육해공군에서 잇따라 성범죄가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군 자체로는 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입니다. 군사법원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보통군사법원에서 맡았던 성범죄와 군인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 등에 대해서는 민간인과 똑같이 1심 과정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관할합니다. 다만 군사반란, 군사기밀 유출 등 군사범죄는 1심을 군사법원이 맡고 2심부터 민간 고등법원이 맡게 됩니다. 이에 따라 군사법원들은 통폐합되어 재편될 예정이며 부대장 등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봐주기 판결이 가능했던 관할관, 심판관 제도도 폐지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15년 전인 2005년 하정우의 데뷔작이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를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고소를 당하기도 했죠. 군의 촬영 협조를 받을 때의 시나리오와 내용이 달라졌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1000만 명이 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보도연맹 사건과 강제 징집 등을 그린다는 이유로 촬영 협조를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군은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합리성을 보이지 않을 조직입니다. 그 민낯을 까발린 드라마에 대해서는 자진해서 변명을 발표했지만 성전환으로 강제 전역한 뒤 군과 싸우다 세상을 등진 변희수 하사의 인권을 두고서는 민간인의 죽음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죠. 불합리와 부조리를 숨기거나 외면할 수 없도록 <D.P.> 같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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