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열강의 각축장 되나?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탈레반에게 탈취되면서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하자 수도 카불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서방국 대사관 인력은 앞다투어 출국했습니다. 카불 공항으로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공항을 지키던 미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필사적인 탈출 행렬에 카불 공항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출처 - SBS

 

미군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우려고 노력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SNS에 무려 600여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빽빽이 앉은 미 군용 수송기 C17 글로브마스터3 화물기 내부 사진이 공개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륙 전 열려 있던 수송기 출입구로 난민들이 밀려 들어와 탑승하자 기장은 고민 끝에 화물을 버리고 난민들을 태우기로 했다고 하죠. 절박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문이 닫힌 미 공군기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자 떨어진 사람들도 있고, 랜딩 기어에서 죽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하죠.

 

출처 - 트위터

 

국제사회는 탈레반을 상대로 현지 주민의 출국을 허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65개국 이상이 이름을 올렸는데 한국도 포함됐습니다. UN은 지난 16일 안보리 긴급회의를 열어 아프간 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아프간 정권이 어이없이 붕괴하고 카불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진 것은 국제사회의 예상을 뛰어넘은 속도였습니다. 미국이 지난 5월 아프간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입니다. 탈레반이 아프간 내 세력을 급속도로 넓힌 이달 6일을 전후하면 불과 10일 만이죠. 무혈입성한 탈레반은 아프간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탈레반기를 게양했습니다.

 

출처 - YTN

 

아프간 정부가 이토록 쉽게 무너진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프간 정부 자체의 만연한 부패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09년,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자행된 대규모 부정을 미국과 국제사회가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선거 결과를 승인한 바 있죠. 미국이 20년 동안 약 103조 원을 할당한 아프간 군부 역시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군부는 가상의 존재인 유령 군인까지 만들고 가상의 명부를 이용하여 급여를 타내 빼돌렸습니다. 아프간 정부군은 서류상으로는 30만 명이지만 실제 병력은 훨씬 적었습니다.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지원한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파키스탄은 앙숙인 인도의 영향력을 무디게 하기 위해 탈레반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부정 선거로 뽑힌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수도 카불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도망쳤습니다. 돈으로 꽉 채운 차 4대와 더불어 탈출했는데요, 탈출용 헬기에 돈을 다 싣지 못하자 일부를 활주로에 버렸습니다. 같이 도주한 가니 대통령의 측근은 자신의 SNS에 '수도 카불은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내용을 남겼다고 하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가니 대통령을 가리켜 '아프간 이승만' 혹은 '이승만2'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출처 – 부산일보

 

아프간 정부가 무너진 가장 큰 요인은 미국입니다.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베트남전의 뒤를 잇는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었습니다. 2001년 알 카에다 섬멸을 목표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국은 약 20년 만인 2021년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아프간 내전 시절부터 무기를 제공했던 미국의 전략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조지 W. 부시는 탈레반을 몰아내자마자 이라크로 눈을 돌렸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 겁니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공식적으로는 개전 42일 만에 끝났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2011년 15일(현지 시간) 종전을 선언하기까지 무려 8년 9개월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이라크 곳곳에서 발생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이라크전쟁으로 사망한 군인 및 민간인은 최소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이라크 보디 카운트(IBC)는 2011년 10월 말까지 11만 3680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15만 5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미군 사망자는 4487명이었으며 이라크 보안군은 1만 6600여 명이 희생됐다고 합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다 목숨을 잃은 언론인이 무려 174명에 달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열을 올리는 동안 탈레반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트럼프는 2020년 탈레반이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고 합의했습니다. 이 회담에 아프간 정부는 끼지도 못했죠.

 

출처 - YTN

 

그러는 사이 미국은 정권이 또 바뀌었고 미군 수뇌부는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하면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강행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익 없는 전쟁을 더는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입장에서 보면 미국 입맛에 따라 휘젓다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고 황급히 떠나는 셈이죠.

 

 

로이터통신은 9.11 테러 20주년 기념일은 탈레반 재집권으로 기록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1975년 베트남과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을 비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이공도 카불처럼 예상보다 함락이 빨랐죠.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대사관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 남베트남 주민들, 외국인들을 헬리콥터로 대피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아프간 철수를 미국 정치권에서는 '바이든의 사이공'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대일로 대응되지는 않겠지만 베트남전처럼 아프가니스탄전쟁도 어떤 형태로든 바이든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출처 – 중앙일보

 

탈레반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며 유화의 이미지를 내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습니다.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의 집권으로 약자,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향한 인권 탄압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택시는 이미 여성 승객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여성이 그려진 벽화는 지우거나 부수는 중이라고 하죠. 기세가 등등한 일부 남성들은 길에 여성이 나다니는 최후의 날이 될 것이라며 여성들에게 비웃음을 던지기도 합니다.

 

출처 - MBC

 

하지만 모든 아프간 사람들이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로 도피했지만, 부통령을 비롯한 몇몇 각료들은 아프간에 남아 필사의 항전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암룰라 살레 부통령은 지난 아프간 내전에서도 탈레반과 싸우던 사람이었던 만큼 반탈레반 세력을 규합해 반격하겠다는 태세입니다. 아프간 최초의 여성 시장인 자리파 가파리도 혼란 속에서 아프간을 지키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아프간 최초의 여성 교육부 장관인 랑기나 하미디는 탈레반이 카불에 들어온 8월 15일 당일에도 집무실로 출근해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진정시킨 후 마지막에 퇴근했습니다.

 

출처 - 이포커스/BBC

 

랑기나 하미디는 BBC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나는 11살 딸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를 나 역시 느낀다. 내 딸이 꿈꿔왔던 모든 미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수백만 소녀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이 버리고 간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여성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과연 아프가니스탄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세계 열강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대리전을 치르는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유럽, 아시아, 중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이죠. 유럽은 아프간에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것과 탈레반 정권이 테러집단화하는 것을 우려합니다. 중국은 아프간을 억제해서 중국 내 신장 위구르 이슬람 독립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아프간 국경 인근에서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합동 군사훈련에 나설 계획인데요, 이는 탈레반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출처 - 조선일보

 

시아파의 맹주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의 세력 확장에 따른 대규모 난민 발생 및 유입을 우려합니다. 터키는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 운영과 경비를 맡겠다고 미국 측에 제안해 협상 중입니다. 반면 파키스탄은 이슬람 동맹국 확대 차원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열강의 이해득실 앞에서 험난한 역사를 경험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냉정한 국제사회의 이권 경쟁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를 위해 분전하는 분들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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