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중계로 비난받는 MBC,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도쿄올림픽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형편없는 준비를 비판하던 우리나라가 개최 당일부터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지난 23일 밤 도쿄올림픽 개막식 도중 참가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MBC가 해당 나라와 관련된 음식이나 명소 등의 자료 사진을 띄웠는데요, 참으로 부적절한 사진이나 자막 실수가 반복되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진 겁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사진을 게재하더니 마셜제도에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란 자막을 달기도 했습니다. 또한 엘살바도르를 소개할 때는 비트코인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달러 화폐 사용을 중단하고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지정한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경제 위기와 관련이 있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엘살바도르 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사안입니다. 한편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썼습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을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일본 방송이 한국을 소개할 때 세월호 참사 사진을 게재하고 안전 문제가 끊이질 않는 나라라는 자막을 올렸다고 해봅시다. 우리가 과연 가만있었을까요? 

 

출처 - MBC / 한국경제

 

그런데 MBC의 실수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5일 한국과 루마니아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자책골을 기록한 루마니아 선수 마리우스 마린을 언급하며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띄웠습니다.

 

출처 - MBC

 

인터넷 게시판에서나 볼 법한 저열한 자막을 삽입한 MBC는 또다시 질타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MBC 유튜브 채널은 온갖 밈에 절은 문구들로 선수들의 노력을 희화화하거나 성차별을 하는 등 과연 공영방송이 하는 스포츠 중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출처 - 동아닷컴

 

결국 국내외에서 MBC 중계를 비판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일베나 나무위키 등에 나오는 밈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한 현장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현장의 문제와 실수를 여과하고 수정하라고 데스크가 있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이를 걸러내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 꼴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나라 안팎에서 비판이 폭발하자 지난 26일 오후 상암 MBC 사옥에서 박성제 MBC 사장이 도쿄올림픽 관련 방송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관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보다 참가국을 존중하지 못했던 규범적 인식의 미비라고 본다며 사고와 관련된 이들 중 일부는 업무 배제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부적절한 화면과 자막이 사용된 주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아이티의 경우 국내에서 대사관이 철수해 전달하지 못했다고 하죠.

 

출처 – MBC

 

사실 올림픽 개회식 중계를 하며 MBC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중계 당시에도 케이멘제도에 대해 조세회피처로 유명하다든가 차드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시장, 수단은 오랜 내전 등으로 불안정하다고 소개해 비판받은 바 있으니까요. 당시 방심위는 MBC에 중징계인 주의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 중계와 관련된 민원이 쇄도하고 있어 방심위가 관련 민원 검토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출처 - MBC노보

 

MBC의 중계 문제와 관련해 제작 환경의 변화를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MBC는 올해 1월 스포츠 프로그램 중계 및 제작 기능을 자회사인 MBC플러스로 이관했습니다. 당시 스포츠국 구성원들이 반발하며 도쿄올림픽 개막이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서를 재배치하고 인사이동으로 인력이 흐트러지면 자막과 영상 데스킹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부서 재배치를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스포츠국 PD가 22명에서 10명으로 줄었고 12명이 다른 부서로 전출됐습니다. 인력난이 심각해 출전 선수나 감독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 사전 제작물을 새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호소할 정도입니다. MBC의 스포츠 중계 자회사 이관은 결국 비용 절감이 목적이었는데요, 결과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출처 - 에펨코리아

 

MBC가 두드러지는 문제를 일으켜 욕을 먹었지만 다른 언론이라고 멀쩡했던 건 아닙니다. 경기를 중계하면서 마치 금, 은, 동 메달을 맡겨놓은 것처럼 선수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대표적으로 2020 도쿄올림픽 개막 직전 "노메달이어도 괜찮다"던 《한국일보》는 태권도 경기에서 노골드 소식이 전해지자 "태권도 첫날 한국 '노골드' 수모"라는 타이틀로 선수들을 무시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패배에는 '대망신', '자존심 상처', '종주국의 자존심을 구겼다' 등등 모욕을 주는 표현을 늘어놓기 바빴습니다. 그럼 양궁의 종주국인 영국은 한국에 막혀 수십 년 동안 금메달 하나 못 땄으니 망신이고, 축구 역시 메달 구경한 지 오래이니 종주국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얘긴가요? 구태의연한 표현과 밈에 절어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주제에 선수들을 닦달하는 기사 관행을 언제까지 계속하려는 걸까요?

 

출처 - 여성신문

 

여성 선수들 관련 보도를 보면 더 가관입니다. "태극낭자", "얼음공주", "여우처럼 경기한다" 등등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째 구태의연한 표현을 늘어놓기만 하는 기자들이야말로 올림픽으로 치면 "예선 탈락감"입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언론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예전 낡은 사고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고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언론의 수준 또한 이에 맞춰져야 할 텐데 언론의 윤리 의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시청자들의 각성도 필요합니다. 이번 MBC 사태를 비판하는 시청자들을 통해 윤리 의식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올림픽을 전쟁과 등치시켜 승자가 패자를 일방적으로 모욕해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시청자가 왕왕 있었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나쁜 관념처럼 말입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약하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유독 지독한 면모를 보이는데, 어쩌면 MBC 중계 사태의 원인 중 하나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무시가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 머리를 두고 페미라서 응원하기가 꺼려진다는 저급한 수준의 반응을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출처 - 우먼타임스 / 파울린 쉬퍼 선수 SNS

 

《우먼타임스》는 <[도쿄 올림픽] “노출은 싫다” 독일 여자 체조 선수들의 반란>이라는 기사에서 성차별에 맞서는 운동선수들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지난 25일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체조 예선에서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몸통부터 발목 끝까지 이어진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고 나왔습니다. 기계체조 여성 선수들이 원피스 수영복 모양인 레오타드 유니폼을 입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죠. 독일 대표팀 소속 사라 보스 선수는 23일 연습 직후 가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땐 노출 심한 유니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춘기가 오고 생리가 시작되면 매우 불편하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자이츠 선수는 "모든 체조 선수들은 편안하고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경기복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여성,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입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4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유럽 체조 선수권대회에서도 독일 대표팀은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는데요, 당시 독일체조연맹은 "새 유니폼은 스포츠계 성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시국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화합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최선을 다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자세를 기꺼워하며 시청자로서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올림픽이 되길 바랍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생각하는 스포츠인권 교과서》가 그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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