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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이재용부터 일반인까지, 마약류 범죄 판치는 세상

by 생각비행 2021. 3. 11.

2020년 2월 제기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여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병원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프로포폴 투여를 중지한 게 아니라 병원을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용과 병원장 사이에는 연락책인 브로커가 따로 있었고 이재용을 '장 사장'이라는 암호로 불렀다고 하죠. 브로커가 '오늘 장 사장님이 가신다'라고 전화하면 병원장은 직원을 모두 퇴근시키고 혼자 이재용을 맞이했습니다.

 

출처 - MBC

 

직원을 다 퇴근시키고 병원장이 혼자 밤늦게 프로포폴을 투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경찰은 정상적인 투약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용은 작년과 똑같이 의사가 합법적으로 처치한 것이며 불법 투약이 아니라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지난해 해당 사건과 관련된 병원장과 간호조무사 등은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불법 투여 의혹을 받은 채승석 전 애경산업 대표도 징역형을 받았죠. 이재용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유죄가 확정된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문제는 이재용, 채승석 같은 내로라하는 부자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 우리나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물론 '마약 청정국'이란 위상을 국제 기관이 부여해준 적은 없습니다. 마약을 관리하는 식약처는 마약 청정국 지위와 상한선에 대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1970~1980년대 마약류 유통이 심각하여 1990년대 들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마약류 범죄에서 깨끗한 사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난해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의 딸이 1급 마약인 LSD를, 그것도 수십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양을 밀반입했지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을 뿐입니다. 추징금은 17만 8500원이었습니다. 1억 7850만 원도, 1785만 원도, 178만 원도 아닌 17만 8500원이요. 홍정욱의 딸이 귀국 직전까지 확인된 것만 9차례 투약 혹은 흡연한 것으로 조사됐던 사실을 생각하면 끼리끼리 봐주기로 일관하는 고무줄 판결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풀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어이없는 판결에 대해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유명인의 자식이라고 더 무겁게 처벌받아선 안 된다는 법감정을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마약 사범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LSD도 아닌 대마 밀수 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니까요. 이렇게 볼 때 1급 마약인 LSD를 밀반입하고 수차례 투약하기까지 한 홍정욱의 딸이 훨씬 가벼운 판결을 받은 까닭은 판사의 말과는 달리 유명인의 딸이었기 때문이겠죠.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이른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총수와 한때 대선 후보로 거론된 사람의 친딸은 불법 마약으로 재판대에 섰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치자, 점점 많은 이들이 마약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MBC

 

작년 10월 부산 해운대 도심에서 연쇄 추돌사고를 낸 운전자는 강력한 합성대마를 흡입하여 환각 상태였습니다. 시속 100km 과속으로 포르쉐를 몰다 연달아 승용차들을 들이받은 운전자와 동승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합성대마를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출처 - SBS

 

한편 이런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이 마약에 손을 댄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달 용산구 주택가에서 한 남성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마약에 취해 덜덜 떨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필로폰을 여러 차례 투약했다고 실토했는데 알고 보니 현직 소방경이었습니다. 소방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사람이 마약에 절어 있다니 대체 마약이 어디까지 파고든 건가 싶습니다.

 

출처 - SBS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약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함께 있던 남성과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그날 처음 만났다고 하죠. 지난 1월에는 택시에 두고 내린 가방을 찾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수차례 전화해 독촉한 손님을 수상하게 여긴 택시기사가 가방을 경찰에 전달했더니 마약이 발견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 20대 남녀 3명이 설날에 강남 호텔에서 대마와 해피 벌룬이란 마약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고, 한 편의점에서는 30대 여성이 마약을 투약한 채로 강남 거리를 배회하다 들어와 살려달라며 마약을 했다고 말해 출동한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마약에 손대는 사람들은 이재용이나 홍정욱의 딸 같은 속칭 '셀럽'들만이 아니라 학생, 직장인, 주부 등 일반인인 경우가 대폭 늘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만 8639명에 달하며 9월 한 달 기준으로 801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9%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홍정욱의 딸을 비롯한 고위층에 대한 관대한 판결이 마약류 범법 근절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검찰이 내놓은 2018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1심 재판 결과는 실형 52.4%, 집행유예 40%, 벌금 4%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 재벌가 자제나 유명인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출처 - 뉴스1

 

마약류 관련 범죄는 형량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골치가 아픕니다. 마약중독자 치료보호제도 지정병원에서 일하는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최근 마약 중독으로 찾아오는 환자 중 20대 초반과 여성의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언급합니다.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마약을 구하기가 너무 쉬워졌다는 점을 꼽습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구글 검색이나 텔레그램을 이용해 손쉽게 LSD, 엑스터시, 허브 등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천 원장은 국내 마약 상습 투약 인구가 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확산 속도인데 2015년도에 1만 명을 돌파한 이래 5년 만에 2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천 원장은 마약 초범이나 재범을 무조건 교도소에 보내면 안 된다고 제안합니다. 교도소에서 마약류 중독자들을 모아놓으면 전국적 공급망 정보를 얻어서 출소하게 되므로 마약 중독을 오히려 키워서 나오는 꼴이라는 겁니다. 천 원장은 현재 있는 치료명령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마약 범죄율이 낮았지만 이제는 마약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위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청소년들까지 손쉽게 마약에 손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무법지대인 암호화된 웹사이트 일명 '딥웹(deep web)'에서 비트코인으로 마약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 마약 근절을 위해 기관 간 공조는 물론 제도 개선, 새로운 입법 등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제라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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