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정인이 사건,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인가?

입양아 정인이의 죽음으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입양 271일 만에 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는데 위독한 환자를 많이 본 응급실 의료진이 보기에도 아이의 상태는 처참했다고 하죠. 정인이는 또래보다 눈에 띄게 왜소하고 온몸이 멍투성이였습니다. 심지어 장기가 찢어져 그 출혈로 복부 전체에 피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응급 전문의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 소견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인이가 사망하고 의료진의 아동학대 신고로 현장에 있던 양모 장씨는 구속됐습니다. 장씨는 단순 사고였다고 발뺌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인이 양부모의 아동학대가 극에 달했음을 알리는 300건에 달하는 제보가 〈그것이 알고싶다〉에 쇄도했기 때문입니다. 장씨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활동하며 아이를 아끼고 입양을 염원하는 사람들인 척했지만, 아이 몸에 새겨진 수많은 학대의 흔적이 그들의 가식을 증언합니다. 이들은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날 어린이집 측으로부터 아이의 심각한 몸 상태에 관해 전해 듣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출처 - 문화일보


정인이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지속적인 학대의 정황이 보여 5, 6, 9월에 걸쳐 세 번의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졌지만 실제적 조치가 전무했다는 데 있습니다. 수사가 이뤄지지도 않았고 정인이가 양부모로부터 분리되지도 않았습니다. 거의 아홉 달 동안 숱한 신고가 있었는데도 입양을 해준 아동복지기관, 신고를 받은 경찰 등이 학대를 일삼은 양부모의 거짓말만 믿고 정인이가 사망하기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출처 - SBS


애초 입양과 사후관리 과정조차 의심스러운 정황이 적지 않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 6일 정인이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7월에 와서야 아동학대 의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5월부터 학대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죠. 7월에는 학대 사실을 협회 차원에서 인지하고서도 정인이가 부모와 애착관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흘려버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월 첫 아동학대 신고 시점에 양부모가 정인이의 배와 허벅지 안쪽에 생긴 멍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했다 내용을 기록하기까지 했으면서도 말입니다. 게다가 영아의 몸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걸 홀트아동복지회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출처 - 한겨레


경찰은 1차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뒤 가정에 방문했으나 애들이 다치는 건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면서 오히려 양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갔다고 하죠. 참 기막힌 현실입니다. 비난이 커지자 사후약방문 격으로 홀트아동복지회와 경찰 모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숨진 아이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출처 - 연합뉴스


정인이의 양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양부는 기독교 계열 방송인 CBS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독교계의 배경을 가진 양부모에게 홀트아동복지회가 특혜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인이의 비정상적으로 짧은 입양 준비 기간에 대해 홀트아동복지회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기독교계와 홀트아동복지회의 유착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한편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이유가 청약 가점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습니다. 결국 아동보호 시민단체들은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한 특별 감사와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출처 - 뉴스1


정인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양부모와 무심무능한 기관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습니다. 정인이 양부모를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3만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마감됐으며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의 진정서도 4일 기준 532건에 달합니다. 사실상 영아를 때려 죽인 양부모의 죄질을 볼 때 형량이 높은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건데 검찰은 정인이의 사망 원인에 대해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아동학대치사죄는 현실적으로 최고 10년 정도의 징역형이지만 살인죄는 고의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최소 10년에서 최고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지난해 검찰은 고의성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아 공소장에 살인죄를 집어넣지 못했고 이 때문에 재감정을 의뢰한 것이죠. 법조계에서는 영아의 췌장이 절단되고 파열되는 상황은 보통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성인의 경우도 폭행으로 췌장이 파열된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정인이의 양부모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마땅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수많은 사람들이 '#정인아미안해'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정인이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CBS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정인이의 학대에 가담하고 방임한 양부 안씨를 즉시 해고했습니다. 공모가 인정될 경우 그 역시 수사를 받고 구속되겠지요. 양모 장씨는 구속되어 지난 13일 첫 재판을 받았습니다. 


출처 - YTN


애초 검찰이 정인이 양모 장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적용한 혐의는 아동학대치사와 유기, 방임이었으나 첫 재판에서 주된 공소 사실을 살인죄로 변경하는 내용의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검찰은 장씨를 기소한 뒤 법의학자 세 명에 대한 재감정을 통해 유의미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검찰의 재감정 의뢰를 받은 아동청소년과 의사회도 교통사고 정도의 큰 충격이 정인이에게 가해졌다는 감정 결과를 통보했다고 하죠. 검찰은 장씨에 대한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기존에 적용된 아동학대치사죄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살인 혐의를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을 때 판단을 요구하는 혐의를 말합니다. 재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민 수십 명이 장씨에 대한 살인죄 적용과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아동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단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정인이가 살아날 수야 없겠지만 앞으로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정인이의 양부모가 입양 준비기간 중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상담 및 조사를 받은 날이 총 9일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정인이의 양부모는 1년 동안 단 9일을 투자해 입양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인 '가정조사서'를 발급받아 정인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 신현영 의원실


입양 부모에 대한 촘촘한 자격 검증과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인이 사건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민간기관이 중심이 되는 입양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입양제도의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입양 시스템을 국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입양 초기 단계부터 공공 개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출처 - 서울경제 / 신현영 의원실


2021년 1월 13일 《서울경제》가 보도한 〈“성범죄 전과자도 양부모로 적격?”…공공주도 심사로 입양조건 송곳검증해야〉라는 기사를 보면 홀트아동복지회가 정인이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를 만난 횟수는 입양 신청부터 교육, 상담, 가정 조사 등 일곱 번이었고 이 중에 예비 입양 부모 교육은 하루 단 8시간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입양 기관 관계자에 의하면 "여러 차례로 나눠 교육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입양 부모 대부분이 맞벌이라 하루에 몰아 진행"되는 현실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최근엔 이마저도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동영상 교육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스웨덴,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는 입양 부모 교육을 20~30시간으로 배정하고 7~10회로 나누어 이수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양부모 자격 검증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범죄경력회신서에 기재된 성범죄 경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입양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의 ‘가정조사서’를 발급해주는가 하면 입양 신청인의 범죄 경력을 조회하지도 않은 채 신청인이 제출한 범죄경력회보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예비 양부모의 자격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입양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도 입양을 최종 허가하는 법원이 입양 기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 아이를 입양하고 가족이 하나되는 시간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가족의 온도》의 저자 이설아 작가는 입양은 어떤 가치나 아름다운 선행이 아니라 매일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가족 됨을 새겨가는 실제의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입양 결정에는 막연한 동경보다 오랜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고 법적으로 가족이 되었다고 해서 진짜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완전한 가족으로 재탄생하기까지는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설아 작가는 입양을 꿈꾸는 부모들을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인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입양과 관련해 구조적이로 체계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아울러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 사랑과 지지 속에서 건강히 성장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정인이를 위한 진정한 애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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