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과 사유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비혼모의 출산권

〈미녀들의 수다〉 일본 패널 출신으로 화제를 모으곤 했던 방송인 사유리가 최근 아이를 출산하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공개되며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자발적 비혼모'이기 때문입니다. 사유리는 자신의 SNS에 지금까지 내 위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아들을 위해 살겠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유리는 현재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한 것인데요. 이는 아이의 일본 국적을 원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비혼 상태에서 정자 기증이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합니다. 결혼한 상태가 아니라면 모든 게 불법인 상태죠. 사유리는 인터뷰를 통해 결혼 상태와 상관없이 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 MBN


우리나라에서 비혼모가 정자 기증으로 출산하는 일이 처음부터 불법이었던 건 아닙니다. 사유리 이전에 이미 허수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 부러지는 말솜씨와 방송 진행 능력으로 199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MC였죠. 그런 허수경은 2007년 독신 상태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을 했다고 공개 선언했습니다. 당시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상태였던 허수경은 2008년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딸을 출산했고 딸에게 자신의 성인 ‘허’를 주었습니다. 이후 세 번째 결혼을 해 제주도에서 단란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결혼한 후에도 아이의 성은 그대로 허 씨입니다. 허수경은 공개 당시 본인을 '미스 맘'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허수경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가부장적인 인습의 탓인지 비난이 더 많았습니다. 비혼은 물론 비혼모 자체에 대한 인식도 굉장히 부정적이었고, 허수경이 당당하게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에 대해 딸에 대한 아동 학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했죠.


출처 - 동아일보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허수경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허수경의 공개선언이 있은 2007년 대한산부인과학회 법제위원회는 미스맘을 허용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격론을 벌였습니다. 본인도 아닌 의사가 왜 비혼모의 존재를 허용하느냐 마느냐를 정하는지에 대한 이상함은 둘째치고 당시에도 정자은행을 통한 임신 사례가 적지는 않았습니다. 2005년 당시에도 거의 5만여 건에 이르렀으니까요. 이 중 1.5%인 758건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은 사례였습니다. 이 중에 허수경과 같은 비혼모 사례가 섞여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배우자 없는 여성이 기증받은 정자로 국내에서 임신 시술을 받았다는 공식 기록은 없었습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를 이용해 시술하면 배우자의 동의서를 받는다고 권고하고 있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복지부는 문제가 불거지자 정자 기증으로 임신을 하려면 반드시 배우자의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청했습니다. 인권보다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관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죠. 이로써 우리 사회에서 비혼모는 불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처 - KBS


물론 비혼 출산은 전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재 법적으로 독신 여성에게 정자 기증을 허용하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 일부 국가 등입니다. 아직은 불허하는 국가가 더 많습니다. 비혼 출산을 허용하면 전통적 가족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대리모 출산이 산업화할 우려가 작용하는 듯합니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프랑스가 발의한 법안에는 독신 여성뿐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을 허용하고 의료보험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찬반 시위가 계속되어 법안의 2300군데가 수정될 정도로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이전까지는 법의 지원 대상이 남녀 커플에게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 SKT


EU 회원국 중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등 17개국과 영국은 독신 여성 또는 동성 여성 커플에게 인공생식을 통한 출산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10개국은 그동안 금지해왔고요. 이 때문에 아이를 원하는 여성들이 다른 EU 국가로 원정 시술을 가는 경우가 많아 불필요한 비용과 위험을 높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어왔습니다. 비혼모 출산을 인정하는 흐름이 생긴 건 결혼제도의 한계와 신체 자기 결정권, 그리고 성 소수자 권리와 대안 가족 인정 필요라는 측면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는 1999년 동거, 동성 결합을 법으로 보장했고 2013년엔 동성 결혼도 합법화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반대 시위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프랑스에서 인공 생식에 대한 찬성 여론은 60%가 넘습니다. 출산할 권리, 가족을 이룰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공개 선언하자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는 비혼모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도 난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12년 전 허수경이 공개 선언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죠. '정상 가족'이라는 근시안적 전통에 갇혀 가부장제를 수호하려는 발상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12년 전과 달라진 건 우리 사회의 여론이 비혼모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정부 역시 비혼모 출산 지원 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할 경우 논의해보고 개선이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은 그나마 달라진 점입니다.


출처 - 시민건강연구소


연일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면서 정작 아이를 낳고 싶다는 사람은 범법자로 만들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일을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혼과 비혼모를 인정하고, 나아가 '정상 가족'의 프레임에 갇힌 인식을 깨고 가족의 개념을 확장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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