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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논란 많은 실사 영화 <뮬란>, 비난 자초하는 디즈니

by 생각비행 2020. 9. 22.

디즈니가 최근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 전부터 설화에 휩싸였습니다. 1998년 애니메이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뮬란〉의 실사 영화 얘깁니다. 유역비, 견자단, 이연걸, 공리 등 내로라하는 중국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22년 만에 제작했습니다만, 공개 직후부터 이 영화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출처 - 트위터


영화가 개봉되기 전 먼저 논란이 된 것은 주인공 뮬란 역을 맡은 유역비의 친중 발언이었습니다. 2019년 8월 14일 유역비는 자신의 SNS 계정에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고 홍콩 경찰을 응원하는 글을 올려 전 세계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죠. 이 때문에 실사로 제작 중이던 〈뮬란〉은 개봉하기도 전부터 '#BoycottMulan'이란 해시태그가 붙으며 불매 운동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지난 9월 17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 전 각종 시민단체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주요 극장 체인을 향해 이 영화의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일도 있었죠.


출처 - 아시아경제


〈뮬란〉은 애초 2020년 3월 전 세계 개봉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네 차례나 개봉을 미뤘습니다. 결국 디즈니는 미국 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9월 4일 OTT 서비스인 디즈니+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극장 개봉은 그 이후 미국을 제외하고 가능한 국가에서만 하기로 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뮬란〉이란 영화의 걸림돌은 주연들의 친중 발언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정도로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죠.


출처 - SBS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가장 큰 비난에 직면한 부분은 시대에 뒤처진 '오리엔탈리즘'이었습니다. 20년 더 된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어떤 의미에서 더욱 심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사화 작업의 제작진으로 동아시아계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서양인들의 상상 속에나 있을 법한 이상한 동양 문화가 스크린에 펼쳐졌습니다. 중국 시장을 주 타깃으로 한 영화였지만 시대적 고증은 물론 중국과 아시아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동양인 얼굴을 한 극 중 인물들이 서양인의 마인드로 움직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동아시아계 관객들이 〈뮬란〉 제작진은 구글 검색을 한 번도 안 해보고 영화를 만들었냐고 비판했을까요?

 

출처 - 세계시민선언

 

동양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진취적인 여성에 대한 젠더 문제마저 이상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최근 시대적 흐름에 맞게 실사 영화 〈뮬란〉은 감독이 여성이고 주인공 역시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디즈니는 한계를 넘는 진취적인 캐릭터를 선보일 것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 제국인 디즈니가 미흡한 면이 있을지언정 그동안 계층, 젠더, 인종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예전 작품인 애니메이션 〈뮬란〉도 그랬지만 최근 작품인 〈겨울왕국〉까지 이어지는 디즈니의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나름대로 시대 조류를 품으며 잇달아 큰 성공을 거뒀죠.


출처 - 한국경제


이번 실사 〈뮬란〉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제작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무협영화에 존재하는 여성의 역할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디즈니는 〈뮬란〉을 진지한 실사 무협영화로 만들겠다면서도 여성은 남성과 달리 '기'를 다루면 안 된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보는 남녀노소 모두를 의아하게 했습니다. '남존여비' 사상은 과거 대부분의 문화권에 존재한 악습이지만, 무협 장르에서 출중한 여성 고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디즈니는 가장 유명한 무협 주인공인 양과의 스승이기도 한 '소용녀'를 제대로 알지 못했나 봅니다. 〈뮬란〉 역을 맡은 유역비는 그 소용녀 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배우인데 말이죠. 또한 일종의 크로스드레서이자 성별이 변화하기도 하는 '동방불패'는 또 어떻습니까? 

 

출처 - 신조협려

 

디즈니는 젠더 문제를 지나치게 인식한 탓에 무협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진지한 무협 영화를 추구했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주요 수용자인 동아시아 관객의 눈에는 애니메이션 〈뮬란〉보다 훨씬 유치해 보이는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동아시아 문화, 무협 장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 실사 영화 제작에 참여했더라면 이런 치명적인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텐데요.


출처 - 일간스포츠


그런데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가장 크게 불거진 문제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나타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자본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뮬란〉의 엔딩 크레딧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는 특별 감사 문구가 마지막에 명시됐다고 하죠. 

 

출처 - 시선뉴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위구르인 탄압의 중심지입니다. 디즈니가 특별 감사를 표한 투루판 공안국은 탄압받는 위구르인을 수용한 동투르키스탄 수용소에 관여해왔습니다. 이 수용소에는 무슬림이 100만 명 넘게 강제 수용되었고 수많은 이들이 학살된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 정부가 관여한 이 수용소는 수용자들을 세뇌하고 이슬람에서 금하는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한족 남성들이 위구르 여성들을 성폭행해 인종을 개량하는 대량 강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죠. 2019년 위구르족 출생률이 24%나 급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계가 중국 정부의 대량 학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출처 - BBC


인종 차별과 젠더 문제 등 시대정신을 이끈다며 자신만만하던 디즈니가 중국 시장과 돈을 의식해 인권 말살, 인종 차별, 대량 학살, 강간 혐의를 받는 기관에 특별한 감사를 명문화해 넣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 아닐까요? 또한 인류애적 가치를 단지 돈벌이를 위해 끌어다 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출처 - 데일리투데이

 

크리스틴 매카시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위구르인 인권 탄압이 자행된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뮬란〉 촬영을 진행한 것에 대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영화 제작을 허락한 나라와 지방 당국을 엔딩 크레딧에서 언급하는 것은 관행"이라고 해명했다고 하죠. 이런 디즈니의 태도는 또 다른 의혹은 낳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했던 디즈니였기에 더욱 그렇죠.


출처 – 트위터


결국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의회가 나섰습니다. 〈뮬란〉 촬영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의혹을 정당화했다는 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미국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지난 11일 밥 샤펙 디즈니 CEO에게 〈뮬란〉 제작 과정에서 중국 신장 지역 안보 및 선전 당국과의 연관성이 있었는지 설명하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며 위구르족이나 그 외 소수민족 등 현지 노동력을 사용했는지, 촬영 과정에서 강제 노동이 동원됐는지도 물었습니다. 잔학 행위를 저지르거나 그 범죄를 은폐한 책임이 있는 중국 정부의 관리들과 디즈니의 협력 관계가 명확해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영화 촬영 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반인권적 행태에 대한 정보가 이미 많았는데도 중국 당국과 협력하여 촬영을 진행한 것은 암묵적으로 대량 학살 가해자들에게 정당성을 보장해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의혹마저 국제적인 논란이 되자 중국 정부는 〈뮬란〉에 대한 보도와 홍보를 금지했습니다. 디즈니로서는 영화로 얻고자 했던 명분과 실익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디즈니라는 거대 기업이 영화 한 편으로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미국 의회를 비롯해 세계 수많은 팬들의 문제 제기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인권을 무시하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요. 시대 조류를 타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온 기업인만큼 명분을 잃는다면 그동안 쌓아온 기업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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