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지상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그룹 빅뱅 출신 승리의 군사재판이 열렸습니다. 버닝썬 사건을 피해 군대로 도망친 후 처음으로 열린 공판입니다. 지난 1월 30일 불구속기소 되자 승리는 2달 후인 3월 9일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혐의에 대해 일반 재판이 아닌 군사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승리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8가지로 성매매 알선, 성매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횡령,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횡령 등입니다. 그런데 지난 16일 승리의 변호인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만 인정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부인했습니다. 특히 성매매 알선과 성매매 관련 혐의 등에 관해서는 전혀 기억 못 하고 유포만 했을 뿐 자신이 촬영한 게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사회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여론의 질타를 받았을 법한 발언이었죠.
출처 - 법무법인 인강
승리의 전역 예정 시기는 내년 9월이지만 총 3심제인 군사재판의 최종 선고에 따라 전역 시기가 달라질 전망입니다. 보통군사법원, 고등군사법원을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6년 이상이 확정될 경우 승리는 병역법에 따라 전역 후 복역하게 됩니다.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 실형이나 1년 이상 징역 혹은 금고 집행유예를 받게 된다면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돼 복무를 이어가게 됩니다.
출처 - JTBC
약 한 달 전인 지난 8월 7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는 n번방 조주빈의 공범인 이원호(닉네임 이기야)의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기야'는 경기도 한 부대에서 복무 중인 현역 육군 일병이었고, 그는 박사 조주빈의 최측근으로 성 착취물 유포와 박사방 홍보를 담당했죠. 이날 아동 청소년성보호법 위반과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음란물 소지·배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기야는 관련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출처 - 한국경제
2년 전에는 동료 여성 연예인을 성추행하고 흉기로 협박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던 배우 이서원이 갑자기 입대해 군사재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현행법상 재판 출석이 병역 연기 사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해 11월 20일 이서원은 군에 입대했습니다. 이로써 사건은 군사재판으로 넘어갔고, 이서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서원은 2020년 6월 30일 만기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죠.
출처 - 세계일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병역 면제를 받거나 최대한 늦게 입대하려고 발버둥 치는 젊은 남성과 연예인들이 왜 성범죄에 연루되면 앞다퉈서 군대에 가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특히 버닝썬, n번방 등 사회를 경악하게 한 성범죄 관련 범인들이 일제히 입대해서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요? 그 이유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군이라는 집단의 불합리함이 성범죄에 연루된 그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군인에 대한 사법 절차는 군사경찰 수사와 군검찰 기소, 군사법원 재판 등 대부분 군에서 진행됩니다.
출처 - 세계일보
n번방의 경우 워낙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서울지방경찰청과 공조할 수 있다고 군 관계자가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군의 재량입니다. 군사재판이 여론의 감시로부터 떨어져 있다 보니 법과 원칙에 의한 판결보다는 지휘관의 자의에 따라 봐주기식 판결이 속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효율 역시 큰 문제입니다. 그중에서도 성범죄에 대한 군사재판은 솜방망이 처벌이 주를 이룬다는 게 핵심입니다.
출처 - JTBC
일례로 지난 2014년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던 군 성범죄 근절은 구호에 그쳤습니다. 고등군사법원에서 군 성폭행범들이 줄줄이 집행유예로 감형을 받았죠. 귀가 중이던 23살 여성을 납치하고 두 차례 성폭행한 한 간부, 미성년자인 18살 여성을 성폭행한 이병 모두 1심에선 징역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습니다. 이런 결과는 군사법원이라는 한계, 그리고 군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예우 등이 합해진 결과입니다.
출처 - JTBC
정권이 바뀌었다곤 하나 군의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작년에는 군 최고법원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이 뇌물을 받아 민간 검찰의 강제 수사를 받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재작년에는 군사법원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 상황을 묘사하라고 강요하고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시대착오적인 재판 끝에 성폭력 혐의를 받은 장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도 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의 직속 부하로 해군 소속 여성 장교였습니다. 군 성범죄 중 징역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1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솜방망이 처벌로 지탄을 받는 민간 법원의 징역 판결 비율인 35%와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죠.
출처 - 한겨레
애초 군에는 성범죄 전담 부서가 없습니다. 낡은 군 사법제도 때문에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구조입니다. 군대라는 위계 조직의 특성상 성희롱과 성범죄가 수시로 발생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군이 성범죄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특히 2015년 이후 디지털성범죄 재판이 군사법원에서도 많이 열렸는데 피고인이 군검찰 조사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하거나 군사법원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형량과 판결에 문제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집단의 특성상 이런 사실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출처 -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트위터 / NEWSCAPE
결국 n번방 사건의 이기야는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군사재판을 받으러 입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기야의 군사재판 과정에서 군 판사는 외장하드와 휴대전화 메모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하죠. 승리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군인 신분이면 군사재판을 받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일 테지요. 수사와 재판을 군이 맡으면 민간인 신분일 때보다 확률적으로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 데다 군 특성상 외부의 감시와 관심이 극히 제한되는 특수성을 노렸을 겁니다. 군대라는 곳이 원래 피해자는 보호받기 어렵고 가해자는 숨기 쉬운 구조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여기에 군 출신 변호사의 전관예우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독립성, 전문성에 문제가 있는 군 검사와 군 판사, 나아가 상급 지휘관의 의중까지 개입하면 피해자는 2차 가해에 쉽게 노출되는 반면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조차 받지 않는 엉망진창인 재판이 이뤄지는 겁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군사법원의 솜방망이 형량이 같은 범죄에 연루된 공범들의 형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갓갓의 공범 오프남은 1심에서 실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습니다. 먼저 선고를 받은 또 다른 공범이 군사법원에서 봐주기 재판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같은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 오프남도 형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감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출처 - 한겨레
이 때문에 최근 화두가 되는 디지털성범죄 관련 범정부TF에 국방부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민간 법원과 군사 법원, 민간 수사와 군사 수사의 공조가 원활하지 않으면 동일한 하나의 범죄 집단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수사나 재판을 하게 되는 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사 법원이 재판을 맡아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며 군사법원 폐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출처 - 한겨레
2018년 군은 군 사법제도 개혁안을 발표하고 2020년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평시에는 군사재판 항소심을 고등군사법원에서 민간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으로 이관한다는 개정안과 관할관의 확인조치권 폐지, 심판관 제도 폐지, 지역군사법원장 민간화 등이 핵심입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출처 - the L
하지만 이 법들이 온전히 개정되기 전까지는 성범죄자들에게 군대는 매력적인 도피처가 될 것입니다. 군이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를 타파하고자 한다면 누구 보다 앞장서서 썩은 군사재판을 혁파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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