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속칭 '윤그랩'이라고 불린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첫 해외 순방에서 대통령 대변인이었던 윤창중 보좌관이 스탭 중 한 명에게 성추행을 시도해 모두에게 충격을 안긴 일이었죠. 당시 미국 경찰 보고서에 나온 움켜쥐다라는 뜻의 '그랩(grab)'이란 단어를 따서 '윤그랩 선생'이란 말까지 생기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동성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한 외교관 문제가 보도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습니다.
출처 - KBS
지난 7월 28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는 도중에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가해자인 한국 공사참사관 A씨가 징역 7년에 처할 수 있는 성추행 행위를 세 차례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지만 한국 외교부가 면책특권을 내세워 뉴질랜드 수사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뉴질랜드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이후였습니다. 지난 2월 뉴질랜드 사법당국은 A 공사참사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이 외교관은 뉴질랜드를 떠나 동남아로 부임한 상태였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외교부는 지난 8월 3일 외교관 A씨를 귀국 조치했습니다만 외교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국격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접촉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한국 외교부 사이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습니다. 우선 사건은 2017년 12월에 벌어졌다고 하죠. 피해자인 주뉴질랜드 대사관 현지 직원은 현재 가해자로 지목된 A 공사참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A씨가 엉덩이와 가슴 등을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A씨도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방송사를 통해 공개된 대사관 내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성추행 관련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tap'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신체 접촉은 인정하지만, 장난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진 적이 없고 배를 두드렸을 뿐이라고 부인한 것이죠. 대사관 측은 성고충담당관을 통해 A씨에게 경고장을 발송했고 두 사람을 분리 조치했다고 합니다. 그 뒤 2018년 2월 가해자인 A씨는 뉴질랜드를 떠나 동남아 공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그런데 2018년 10월 A씨가 없는 상황에서 뉴질랜드 대사관 감사에서 피해자는 문제를 거듭 제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사관은 2019년 2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에 대해 대해 감봉 1개월을 결정했습니다. 또한 2020년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간 피해자와 가해자 간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피해자는 정신적, 경제적 피해 보상을 원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고 하죠. 그 이후부터 언론을 통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고 한국으로까지 상황이 알려져 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성추행 피해자는 중재 과정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7월 뉴질랜드 경찰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습니다. 뉴질랜드 경찰은 한국대사관에 대해 CCTV와 내부 문서를 확인하고 관련 한국 외교관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외교부는 공관 조사에 대해 면책특권을 요구했습니다. 공관 조사를 제외하고는 자료를 제공하고 참고인 협조도 하겠다고 밝혔으나 뉴질랜드 경찰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죠.
출처 - KBS
이 과정에서 한국 외교부와 뉴질랜드 외교부의 입장 차이가 드러납니다. 뉴질랜드 사법당국은 거의 무조건적인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했는데 사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입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A씨에 대해 면책특권을 요구한 것처럼 뉴질랜드 언론이 호도한 측면이 있었는데, 사실 뉴질랜드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시점에 A씨는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뉴질랜드에 대한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뉴질랜드 사법당국이 한국 정부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하거나 범죄인 인도절차 등을 절차에 따라 요구했다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뉴질랜드 정부가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언론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좀 의아한 측면입니다. 또한 양국 정상 간의 통화 도중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전 협의 없이 이 문제를 불쑥 꺼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KBS
그렇다곤 하나 1차적인 잘못이 A씨와 외교부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최초 신고 발생 시 경고장 발송에 그친 점, 감사 과정에서 문제가 확인되었으나 감봉 1개월이라는 가벼운 징계에 그친 점만 봐도 동성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라고 하여 안이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동성을 대하는 방식과 신체 접촉 등의 문제는 문화권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뉴질랜드에 부임한 사람이라면 현지 문화를 파악하고 그들의 에티켓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당연한 처신이겠죠.
출처 - 외교부
특히 외교부는 2016년 칠레 외교관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이후 2017년부터 원스트라이크 아웃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외교부는 2017년 7월 21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성비위 관련 복무기강 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ㅁ 찰담당관실 신설 추진 및 감사시 ‘성비위’ 필수점검 항목化
ㅁ 공관내 성비위 발생시 공관장의 지휘‧감독 소홀 엄중 문책
o 사안의 성격 및 중요도에 따라 공관장 및 유관 상급자의 지휘‧감독책임 추궁
성비위 징계 공관장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o 공관장 재직중 성희롱 등 성비위로 인한 징계시, 징계수위 불문 공관장 재보임 금지
【신고‧처리절차 개편】
ㅁ 포털에 고충상담원 직접 신고 가능한 ‘성비위 안심신고’ 탭 개설
o 피해자‧제보자 신상보호 및 인사상 불이익 금지원칙 강조
감사관에 직접 제보 가능한 ‘감사관 핫라인’도 설치
【예방‧교육】
ㅁ 직급별 맞춤 성비위 예방 교육 실시
o 특히 사건예방‧처리에 공관장 역할이 중요한 바, △재외공관장 회의, △공관장 부임교육시 성비위 관련 별도교육 마련
ㅁ 외부전문가의 재외공관 현지 출장 대면교육 실시
ㅁ 성비위 근절 위한 리더쉽의 강력의지 지속 표명
o 장관의 전직원 대상 메시지(시청각 자료에 포함), 고위급 간부 해외출장시 공관직원 대상 성비위 관련 교육 및 고충청취 기회 마련
【조직문화】
ㅁ 전직원 대상 성비위 조사 및 정기적 주의환기 시행
o 정기적 공지 통해, 행동규범* 재확인 및 신고방법 홍보
*「외교부 성희롱예방지침」, 「성희롱 예방 12대 행동지침」
권위주의적‧차별적 관행 청산 및 상호존중문화 확립
성비위 사건 발생 공관‧부서의 사후회복 및 지속 관리제도 확충
하지만 그 이후에도 캄보디아 주재 외교관 여직원 성추행, 일본 주재 총영사 여직원 성추행 등 성비위 사건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이번 뉴질랜드 성추행 사건을 볼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출처 - KBS
지난 2019년 몽골헌법재판소장이 우리나라 승무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의 공분이 얼마나 컸습니까? 그러므로 이번 뉴질랜드 대사관 공관 직원을 성추행한 A씨의 문제에 대해 뉴질랜드 국민의 분노를 우리는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외교부는 A씨에 대해 귀임 명령을 내리고 지난 8월 3일 한국으로 귀국시켰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귀국 직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후속 절차는 이달 중순 이후에나 A씨에 대한 소명이나 재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A씨가 피해자에 대한 신체 접촉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만큼 신속한 조사와 실효성 있는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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