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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손정우 미국 송환 논의, 성범죄 관련 사법 체계를 변혁할 때!

by 생각비행 2020. 4. 22.

'n번방 사건'의 주모자인 조주빈, 강훈을 비롯해 연루자들이 속속 붙잡히는 가운데 지난해 말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손정우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크웹에서 아동음란물 22만 건을 유통한 24세 손정우는 입에 담기도 더러운 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전 세계적으로 유통하여 돈을 벌었지만, 국내법이 미비하여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치자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확연히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청원을 통해 그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게시글이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아동 성범죄 관련 처벌이 혹독한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들끓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생각비행에서도 이미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시사저널

 

부끄러운 대한민국, 아동 성착취 범죄 보다 강력히 처벌하라! : https://ideas0419.tistory.com/996


뒤늦은 감이 있지만 여론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법무부가 서울 고검을 통해 손정우에 대해 범죄인 인도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법원 심리를 거쳐 최종 인도 여부가 결정되면 손정우가 미국에서 처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에 따라 원래 수속 기간이 끝나는 오는 27일에도 그는 석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 법무부 역시 손정우의 출소에 맞춰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른 송환을 요구해왔습니다. 미국 내에도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죠. 손정우는 지난 10월 이미 미국 법에 따라 아동음란물 광고, 아동음란물 수입, 아동음란물 배포 등 9가지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아동성범죄는 미국에서 1급 살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엄벌하고 있습니다. 아동 음란물 제작 시 초범이라도 최소 징역 15년 형을 받으며 아동 음란물을 소지 혹은 밀매, 수령한 사람도 평균 8년 8개월의 실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중처벌금지원칙에 따라 손정우가 미국에 송환되어도 아동성범죄 법률을 적용받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 이미 아동성범죄 관련 형을 확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 법무부는 판결이 중복되지 않는 국제자금세탁 등 부분으로 범죄인 인도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록 성범죄 처벌 가능성이 작아졌다곤 하나 미국에서는 자금세탁 범죄 역시 20년 이하 징역이기 때문에 중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이 치욕스럽게 느껴야 할 결과입니다. 남의 나라에 송환까지 해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성범죄 관련 처벌 수준이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니까요. 성범죄 관련 재판은 여전히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의 심각성과 형량의 차이가 더 극대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은 직접적 신체 접촉만을 처벌해왔고 디지털 성범죄는 상식에 못 미치는 양형 수준으로 선고가 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거나 피해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법적 절차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디지털성범죄는 양형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처벌한다 해도 고무줄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성착취물 17건을 소지한 자에게 겨우 500만 원 벌금형을 내리거나, 33건을 소지한 자에게 선고유예를 내리는 등 중구난방입니다. 게다가 판사들은 기계적으로 감형 요소를 적용해왔습니다. 국민들이 어이없어하는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지만 초범이고 자백, 반성했으므로 감형한다"는 판결문은 그렇게 나온 것이죠. 자수를 한 것도 아니고 붙잡힌 뒤 자백했다는 게 감형의 이유가 된다니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심지어 n번방 가해자들조차 반성의 근거로 쓰고 있는 반성문과 탄원서는 인터넷에서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하죠. 돈 주고 사서 이름만 바꿔서 제출하는 반성문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법제의 미비, 사법부의 잘못된 관행 등이 맞물린 결과가 온갖 성범죄를 저질러도 내려지는 징역 1년 혹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입니다. 이 정도 상태라면 사법부와 입법부가 "성범죄 저지르다 걸려도 인생에 별로 지장 없으니 마음 놓고 저지르시오"하는 사인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n번방 사건으로 분노가 폭발한 국민들의 여론이 신경 쓰였는지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앞으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0일 대법원 양형위는 n번방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지금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라고 했습니다. 청소년 성폭행범에겐 징역 5~8년을 선고하라고 했는데 성착취물 제작은 그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하도록 기준을 만들겠다는 거죠. 조주빈 일당처럼 조직적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수십 년 형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편 감경 사유에 대해서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초범, 반성문, 탄원서 등이 있죠. 현재 쟁점은 '피해 아동이 처벌을 원치 않을 때 형을 줄여줘야 하느냐'였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선 그럴 경우라도 형을 줄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5월 1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논의를 한 번 더 하고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입법부인 국회는 성범죄와 성착취를 단죄할 수 있도록 미비한 법제를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법부가 법을 근거로 하여 가해자들을 단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한편 행정부는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범죄 근절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달 초 텔레그램 n번방처럼 디스코드에서 성착취물 채널을 만든 운영자가 만 12세의 촉법소년으로 드러나 사회적 충격을 안긴 것처럼, 이제 10대는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성교육과 성범죄 근절 교육은 지나치게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강조하고 있죠. 여학생에게 피해자가 되지 않기만을 가르친다는 얘깁니다. 이제는 어릴 때부터 모두에게 성범죄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 그리고 특히 남성에 대한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매매와 포르노가 횡행하는 남성 중심 사회가 어떻게 성착취와 성범죄로 연결되는지, 이런 문화나 범죄에 가담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한국일보


빨간 마후라, OO양 비디오, 소라넷, 버닝썬과 정준영, 김학의 별장 성접대, 급기야 텔레그램 n번방까지 이르도록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성범죄 대처에 실패를 반복해왔습니다. 그때마다 더 착취적이고 변태적인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범죄를 혹독하게 단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만큼은 일벌백계하여 우리 사회가 더는 성범죄와 성착취에 눈을 감지 않는 계기로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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