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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도쿄올림픽 연기, 32년 전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경고한 세계

by 생각비행 2020. 3. 25.

어젯밤 아베 일본 총리와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전화 회담으로 1년 정도 올림픽을 연기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바흐 위원장에게 올림픽을 1년 정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제안했고, 바흐 위원장이 이에 대해 전면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죠, 124년 근대올림픽 역사상 올림픽이 연기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출처 - MBC

 

IOC는 지난 24일(현지 시각)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올림픽을 늦어도 2021년 여름까지 연기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올림픽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고,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이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는 바람에 정상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IOC와 일본이 백기를 든 셈입니다.

 

출처 - MBC

 

코로나19 상황이 도래하기 전부터 2020 도쿄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가 가능한지를 묻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32년 전 도쿄올림픽 취소를 예언(?)한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세간의 화제였습니다. 원작 만화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 잡지에 실린 사이버펑크물인데요, 이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원작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때는 우리나라에서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상을 받았습니다. 1984년 제8회 고단샤 만화상 일반 부문, 2002년 아이즈너상 최우수 국제 아카이브 부문 및 최우수 국제 작품 부문, 2015년 42회 앙굴렘 대상이 주요한 수상 실적이라고 합니다.

 

 

〈아키라〉는 올림픽 개최를 위해 몰두하고 있는 2019년 네오 도쿄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에서 꿈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약물에 취해 쾌락을 추구하거나 폭주족이 되어 세력 간 다툼을 벌이는 게 일상입니다.

 

출처 - 아키라

 

1988년 일어난 핵전쟁의 영향으로 폐허로 변해버린 도쿄는 2019년 네오 도쿄로 재건됩니다. 인류가 통제하지 못한 과학기술의 힘에 의해 문명이 붕괴한 상황인데도, 권력자들은 올림픽 주경기장 건설을 서두르는 한편 강력한 무기를 부활시켜 세상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반발하는 저항 세력에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들이 가세하면서 네오 도쿄는 극단의 혼동 상태에 빠집니다.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패망을 경험한 일본이 미래에도 그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교훈을 주려 했전 작가는 〈아키라〉 내용 속에 다음과 같은 상황을 그려냅니다.

 

출처 - 아키라

 
입간판에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47일"이라고 적혀 있고, 그 문구 밑에 "중지다 중지"라는 낙서가 쓰여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전쟁의 폐허 위에 재건된 네오 도쿄는 올림픽 개최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경기장이 폭파되고 결국 도쿄올림픽은 중지되게 되는데요, 작품 속 2020년 올림픽 개최 147일 전은 현실에서는 지난 2월 28일에 해당하는 날짜입니다. 이날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위험을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고, IOC가 일본 정부에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나온 날이기도 하니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아키라〉 작품 속 30회 올림픽은 현실에서는 2012년에 이미 열린 올림픽이지만, 작품의 설정은 제3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올림픽 2회가 취소되어 2020년에 30회 도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던 겁니다.

 

출처 - 아키라

 

작품 속에서는 왜 도쿄올림픽이 열리지 못했을까요? 문제의 핵심은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핵' 문제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대유행을 하기 전 2020년 현재의 일본 상황이 이와 똑같았습니다.

 

출처 - YTN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있었고, 그때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냉각수가 주입되어 매일 170톤씩 방사능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최근 KBS가 취재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일본 후쿠시마현 성화 봉송로의 거의 전 구간이 방사선량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KBS

 

성화 봉송로 1.5킬로미터 구간 13군데 가운데 기준치 이하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어떤 곳의 흙에서는 기준치의 44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죠. 국제 기준으로 70개 측정 지점의 85%, 일본 기준으로 60%가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합니다.

 

출처 - KBS

 

KBS는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선수단이 이용하게 될 급식지원센터의 방사선량 측정치를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취재 당일 일본 정부가 공개한 도쿄의 시간당 방사선량은 0.037 마이크로시버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측정한 결과 호텔 건너편 화단, 호텔과 붙어 있는 골목길, 호텔 뒤 화단, 모두 네 배 이상 차이가 났고 뒤쪽 주차장은 여섯 배나 높았다고 하죠. 그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시설과 그 주변의 방사선량이 전 세계 주요 도시보다 낮다고 주장했으나 그것이 얼나나 새빨간 거짓말이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아니었다 해도 2020년 도쿄올림픽은 〈아키라〉 작가가 예견한 대로 방사능 올림픽이 될 게 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IOC는 올림픽 개최 연기를 고려하지 않아 생각비행은 이를 비판하는 글을 써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정부 눈치 보는 IOC, 올림픽을 조롱의 대잔치로 만들 텐가?
https://ideas0419.com/1026

 

출처 - 클리앙

출처 - 비생산적 얼간이 / 티스토리 

  

아베 일본 총리가 올림픽을 성사시켜 자신의 정치적 성과를 부각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올림픽 강행의 위험성을 지적하기 위해 32년 전 〈아키라〉 작품 속 장면을 오마주하여 현실에서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키라〉의 작가는 만화 내용 속에 "WHO 전염병 대책을 비판"이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는데요, 작가가 미래를 시간여행하고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2020년 현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서 놀랍습니다.

 

출처 - 아키라

 

작품 속 두 등장인물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만화 내용이 감염병을 전제로 하고 있진 않으나 올림픽을 치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네오 도쿄의 일면을 포착한 모습에서 2020년 현재 일본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코로나19 대응의 한 단면이 드러났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다가오는 도쿄올림픽 개최가 중요했던 일본 정부는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선 감염자를 일본 내 감염자로 분류하지 않았고, WHO는 이를 수용해 승선 감염자를 '기타' 지역 감염자로 분류했죠. 이처럼 전례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머리가 어지럽던 차에 결국 도쿄올림픽이 연기되었습니다.

 

출처 - SBS

 

근대올림픽 역사상 올림픽 개최가 취소된 전례는 있습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열린 하계 올림픽은 1912년 5회 대회까지 4년 주기로 잘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다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올림픽이 취소되었습니다. 1920년 다시 열린 올림픽은 1936년까지는 무난하게 개최되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와 1944년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취소되었죠. 올림픽 4년 개최 주기가 달라지게 된 건 이번 도쿄올림픽이 첫 사례입니다. 

 

출처 - NASA

 

코로나19가 뒤흔든 우리 삶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대자연이 보내는 경고입니다. 개발 지향적이고 생태 파괴적인 삶에서 돌이키라는 메시지입니다. 동시에 전 지구적 위기는 큰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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