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5.18 관련 법안 3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하루 전 상임위를 통과하고 속전속결로 본회의까지 통과된 것이죠. 5.18 왜곡처벌법으로 불리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 5.18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5.18 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출처 - KBS


5.18 왜곡처벌법은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5.18에 대한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최대 징역 5년이나 5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은 진상 조사 기한과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5.18 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은 오월 단체를 공법 단체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은 5.18 관련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악의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방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발의했습니다. 합의 과정에서 징역 5년과 벌금 5000만 원으로 조정되었습니다. 5.18 진상규명법은 발포 책임과 암매장 유해 수습, 헬기 사격 및 계엄군 성폭력 등 진상 규명이 필요한 부분을 명시했습니다. 광주 주변 지역에서도 인권 유린이 자행된 점을 감안해 진상 규명 지역 범위도 넓혔죠.


출처 - 오마이TV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월 18일 법사위에서 5.18 역사 왜곡 처벌법과 관련해 공식적이고 근거 있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처벌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5.18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처벌하겠다는 게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고 묻자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은 맞니 않나"라고 되물었습니다. 독일이 나치에 대한 발언을 법에 따라 처벌하듯 민주화운동이라고 판명 난 5.18에 대해 모욕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지난 40년 동안 진상 규명이 지지부진했지만 전두환과 관련된 소송을 통해 법원이 헬기 사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의미 작지만 있는 변화는 줄곧 있었습니다. 지난 8월 국정원이 40년간 보관해온 5.18 관련 자료를 진상조사위에 공개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시민군이 쓴 헬기 사격 목격담도 포함됐다고 하죠. 5.18 진상조사위 측이 받는 자료는 모두 40여 건, 3300부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그 이후에도 국정원은 5.18 관련 자료의 공개를 거부해왔습니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작성한 이른바 80위원회 자료도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자료가 공개된다면 안기부가 광주의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려 했는지 밝힐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국정원은 이런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은폐했던 것인데 이번에 드디어 그 실체가 공개되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0월 16일 국감장에서 육군참모총장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등에 대해 40년 만에 공식적으로 사죄했습니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군이 개입한 건 대단히 잘못되었다며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분들에게 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남 총장은 사죄 발언 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사죄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사죄는 어쩌면 육사 출신이 아닌 참모총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은 육사 출신 장교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고 1969년 이래 남영신 총장 전까지는 모두 육사 출신 총장이었습니다. 군사반란의 원죄가 있는 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사죄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그들의 졸렬함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출처 - 뉴스핌


5.18 진상 규명은 늦었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셈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현대사에는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할 사건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주 4.3 사건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이 사건은 일어난 지 72년이나 지났지만, 생존자와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별법 입법이 계속해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 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내 반드시 처리할 미래 입법 과제로 선정해 이번에 다시 한번 개정안 통과를 시도했습니다.


출처 - KBS


국회에서 논의했던 4.3특별법 개정안은 법무부가 수형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수정법률안을 제시한 상태였습니다. 희생자나 유가족들이 일일이 재심청구를 할 필요 없이 법무부 차원에서 특별재심사유로 인정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죠. 이와 동시에 희생된 1만 3000명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민의힘과 기획재정부는 돈 문제를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출처 - 제주일보


그러는 사이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7일 제주 4.3 사건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수감생활을 한 피해자인 93세의 김두황 할아버지의 재심 사건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난 것이죠. 4.3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판결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당시 적용됐던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가 근거 없음을 밝힌 것으로 향후 재심 재판에서도 구체적으로 인용될 수 있어 의미가 큽니다. 이런 순풍으로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난 9일 21대 정기국회에서 4.3 개정안 처리는  불발됐습니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


이번 주 국회는 12월 임시회 일정을 이어갑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 토론)를 강제 중지함에 따라 임시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해충돌방지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4.3특별법 등 굵직한 남은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5.18과 4.3 모두 지금 우리나라를 만든 근현대사의 큰 상흔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4.3 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이른바 공수처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재석의원 283명 중 187명이 찬성했고 반대 99명, 기권은 1명이었습니다. 그동안 검찰개혁의 상징적인 기구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1호였던 공수처는 법안 통과까지 국민의힘의 발목잡기로 지지부진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법 제정 후 1년간 국민의힘의 반대 때문에 초대 처장 후보 추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 통과로 처장 임명과 공수처 출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내 출범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6년 참여연대가 공수처를 포함한 부패방지 법안을 입법 청원한 지 24년 만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공수처 설치를 대선공약으로 내건 지 18년 만에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조직이 현실이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출처 - MBC


상식적으로 보면 공수처 출범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고위공직자를 전담해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인 만큼 야당과 시민사회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을 감시하기 더 좋아지니까요. 그런데 여당은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반면 해괴하게도 야당이 온갖 발목잡기로 시간을 끌었죠. 이번 개정안 통과로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위기에 처했다며 아무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예전에 공수처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찬성했던 법안입니다.

 

출처 - MBC / 보배드림

 

지난 2016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진경준이 구속되고 우병우 처의 부동산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주호영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2016년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인터뷰에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검찰권이 비대한 곳이 없다"면서 "공수처 이야기가 수년째 논의되는데 이번 기회에 그런 것들이 정비되리라 본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수처도 검찰개혁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걸 보면 국민의힘의 적은 국민의힘이고, 주호영의 적은 주호영이 아닐까 합니다.

 

출처 - 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17년 11월 16일(목)부터 12월 1일(금)까지 15일간 공수처 설치에 대해 공법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64명이 답변한 결과를 보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7.5%(56명)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2.5%(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경실련은 공수처 설치의 높은 당위성이 확인됐다면서 공수처 설치를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법 개정은 국민의힘이 정치적 타협을 통해 공수처장을 추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입니다. 공수처법 시행 후 지난 반년여를 비토권에 안주해 처장 후보 추천 등 공수처 무력화에 눈이 멀어 정치적 타협을 통한 해결은 손 놓아버린 것이죠. 이는 여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명분이 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공수처가 국민을 억압할 무소불위의 앞잡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3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 광역단체장, 교육감, 대통령비서실·경호처·안보실·국정원 3급 이상, 판사·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 감사원·국세청·공정위·금융위 3급 이상 공무원, 금감원장·부원장·감사, 장성급 장교 등 총 7000명 정도입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애초에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 역시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알선수재, 뇌물수수 등 각종 부정부패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하면 여태까지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던 윗선의 부패와 비리 등 어두운 관행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부패 없는 사회로 갈 단초가 마련될 것입니다. 뒤가 구린 사람들일수록 공수처를 싫어하겠죠.

 

출처 - 페이스북

 

공수처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공수처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도록 하기 위한 것에 가깝습니다. 동시에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행정부 내부에서 검찰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그 필요성을 인정해 만들려는 조직이기도 하고요. 검찰은 권력형 비리를 자신들의 안위와 이득을 위해 조절하며 수사를 해왔던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검찰 내의 비위와 범죄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로 일관해왔습니다. 이런 검찰을 누군가는 감시해야 합니다.


출처 - 참여연대

 

공수처 출범은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깬다는 점에서 본격적 검찰개혁의 시작점입니다. 공수처 출범의 지연은 단순히 공수처의 물리적 출범 지연만이 아니라 검찰개혁의 지연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본색을 드러낸 정치검찰의 민낯을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하루빨리 공수처가 출범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수처장 추천과 인사청문회 등 후속 절차가 조속히 이어져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술접대 자리에 참석한 검사 2명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검사님들을 위한 99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이름이 달린 술자리 사진이 퍼지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부적절한 술접대를 받더라도 100만 원 미만으로 미리 결제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점을 비꼰 것입니다. 검찰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시대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공수처 설치와 운영이 현실화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공수처는 누가 감시하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들만 전담하는 수사기관으로 검찰보다 더 독립된 기구입니다. 검찰총장보다 긴 3년의 임기를 가지며 공수처 차장과 공수처 검사, 공수처 수사관 등 70여 명에 이르는 조직의 인사위원장이기도 합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장을 최대한 신중하게 임명하고 공수처를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장에 대한 징계위원장을 국무총리에게 맡겨 총리실에 감찰부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공수처장후보추천위도 재가동 예정입니다. 국회의장이나 추천위원장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의 소집으로 재개할 예정인데요. 후보 추천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의 연내 출범을 강조하는 만큼 새로운 후보 추천보다는 국민의힘도 추천 후보를 냈던 4차 회의까지 심사를 진행한 기존 9명의 후보를 재심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지난 회의에서 5표 최다 득표한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인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추천의 전현정 변호사가 최종 후보로 점쳐집니다. 4차에 걸친 충분한 심사 회의를 했는데 다득표한 사람이 둘이었기 때문이죠. 위원회가 후보 추천을 하면 최종 후보 2명 중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하게 됩니다. 지명 20일 내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임명이 되고 초대 공수처가 출범하게 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큰 개혁 포인트 중 하나였던 검찰개혁의 기치가 올랐습니다. 공수처가 시민들이 기대했던 만큼 검찰을 포함한 권력자들의 부패와 부정을 바로잡아 깨끗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