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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정치성 이벤트로 끝난 인공강우 실험 이후 초미세먼지 대응은?

by 생각비행 2019. 2. 15.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겨울은 '삼한사온'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일주일 중 3일 춥고 4일은 좀 따뜻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최근에는 '삼한사미'라는 말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3일 춥고 4일은 미세먼지에 시달린다는 의미입니다. 조금 따뜻해질라치면 중국에서 스모그와 초미세먼지가 밀려와 숨이 막히고, 시베리아 삭풍이 불어오면 미세먼지는 사라지지만 북극 추위가 밀려옵니다. 대한민국의 겨울은 미세먼지로 숨막혀 죽을래, 아니면 추워 죽을래 하고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느낌입니다. 작년에 비해 추위는 좀 누그러졌다지만 초미세먼지는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출처 - MBC


미세먼지의 원인 파악부터 대책 마련까지 그간 다양한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죠. 미세먼지와 스모그의 큰 원인인 중국의 적반하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국 생태환경부 대기국 국장은 중국 미세먼지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른 사람 탓만 하다가는 정작 미세먼지를 해결할 기회를 잃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대기는 중국의 발표에 의하면 40%가 개선됐는데 한국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악화됐다며 서울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은 서울에서 배출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겁니다. 이는 중국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일 뿐입니다. 

 

출처 - MBC

 

중국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나라 대기오염 물질의 최소 30%가 중국에서 건너온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중국 정부가 40%나 나아졌다고 자신하는 베이징 일대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최근 3년 모두 같은 해 서울 평균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베이징 일대 초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때 중국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죠. 북풍이 부는 시기에 중국에서 밀려오는 공기가 남쪽으로 쓸려내려가 공기가 깨끗해지는 것만 봐도 중국이 한국 미세먼지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합니다.


출처 - 조선비즈


초미세먼지와 관련해 또 하나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은 원전 마피아들입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을 높였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발생 수치가 높아졌다고 주장합니다. 지난달 14일 MIT 에너지 이니셔티브와 서울대 원자력 정책센터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을 보도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의 논조를 보면 뻔합니다. 태양광, 풍력 등 대체 에너지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발생하며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는 데에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면서 현 시점에서는 기존 원전에 재투자해 설계수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죠.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은 MIT의 고언 "한국, 미세먼지 싫다면 원자력 투자하라"였습니다. 원전의 안전 관련 우려와 핵연료 처리문제 등 후처리 비용까지 생각하면 원전은 값싼 에너지가 아니고 만약의 경우 치명적으로 위험한 건 원전 쪽이라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참석자가 눈을 감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애초에 탈원전을 대신한 화력발전이 미세먼지량을 늘렸다는 것도 틀린 말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석탄 화력 발전량은 2년 전보다 11% 늘어났지만 석탄화력발전소가 배출한 미세먼지는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탈원전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통계치입니다. 석탄발전소 6기를 LNG로 전환하고 오염물질을 걸러 내보내는 탈황, 탈진 설비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효과를 본 것입니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 중대형 화물차를 조기 폐차하면 최대 3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친환경차 대체 정책도 진행 중입니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 정책은 긴 기간이 필요한 일이고, 현재 가동 혹은 건설 중인 원전 현황을 봐도 원전 비율이 낮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미세먼지 문제에 탈원전을 끌어들이는 것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주장일 수밖에 없죠.


출처 -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미세먼지 대책과 관련 참모진들에게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시도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때라며 초미세먼지 문제를 재난에 준해 생각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여기에는 최근 중국와 태국이 실시한 인공강우에 대한 염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중국과 태국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나 싶으셨을 겁니다. 비로 초미세먼지를 씻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환경에 끼칠 영향이나 기술적인 문제도 문제거니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기후 조건 때문에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합니다. 서해안 일대의 온난기단이 접근해 따뜻한 날씨의 고기압이 자리잡으면 서풍이 불며 중국발 미세먼지가 대거 넘어오는데요, 이렇게 되면 고기압의 영향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됩니다. 현재로서는 비구름이 아예 없는 맑은 하늘에서 인공강우를 실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태국처럼 우리나라가 비구름 생성이 잘되는 온난다습한 기후가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적어도 현재까지는 인공강우가 미세먼지 대책은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서해상에서 실시했던 인공강우 실험을 분석한 결과, 국립환경과학원과 국립기상과학원은 유의미한 강수 관측은 없었으나, 추가적인 인공강수 실험을 실시하며 미세먼지 변화를 관측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공동으로 실험을 진행했던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인공강우로 미세먼지를 씻어내려면 최소 시간당 10mm 이상의 강한 비가 내려야 하지만, 아직 그 정도의 강우량을 기록할 수 있는 인공강우 기술은 개발되지 못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주문으로 단행한 인공강우 실험은 정치적 이벤트로 끝난 셈입니다.

 


출처 - 위키트리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들어 유례없이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 많아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며 이를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참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사과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표현할 만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 됩니다. 설 연휴가 지난 현재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나쁨(일평균 36∼75㎍/㎥)' 일수를 40일로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책임 있는 저감 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협약화 방안'을 상반기 중 마련하고, 오는 11월 개최될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에서 제안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미세먼지특위)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동위원장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주재로 첫 회의를 갖고 '미세먼지특위 운영 계획'과 '미세먼지 대책 중점 추진계획' 안건을 논의했습니다. 환경부는 연차별로 미세먼지 평균 농도 목표치와 감축량을 설정해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시스

 

미세먼지특위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마스크를 쓰는 등 개인의 노력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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