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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폭력사태에도 지지 높은 이유는?

by 생각비행 2018. 12. 6.

프랑스 박물관의 조각상들이 파손되고 진열되어 있던 나폴레옹의 권총이 약탈당했습니다. 프랑스가 침략을 당했거나 엄청난 테러가 있었냐고요? 아닙니다.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의 시위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노란 조끼를 입고 등장한 그들은 최루탄이 빗발치는 거리에서 폭력을 쓰기를 꺼리지 않으며 마크롱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노란조끼들은 "우리는 이보다 가벼운 이유로도 왕의 목을 쳐본 시민들이다!"라며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한 달도 안 되었는데 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으며 400명이 넘게 체포됐습니다. 대체 지금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일명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라고도 불리는 이번 대규모 집회가 시작된 목적은 유류세 인상 철회였습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는 지난 1년간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 유류세를 23%, 휘발유 유류세를 15% 인상했죠. 지난 11월 17일 첫 시위부터 30여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발이 극심한 정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란조끼 시위를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라고도 부릅니다.


출처 – 노동자 연대


프랑스 정부는 2022년까지 휘발윳값을 2300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국제 시세를 반영하면 현실적으로 3000원까지도 넘볼 수 있는 정책입니다. 각종 세금과 공과금이 증가 추세고 최저임금은 몇 년째 동결이나 다름없는데 기름값이 저 정도로 오르게 되면 일반 시민의 경우 기름값만으로 1년에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갖다 부어야 합니다. 비싼 파리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전차나 버스, 지하철이라도 있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생업은 물론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류세 인상은 삶을 영위하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최근 소득 상위 1%에 대한 세금이 인하됐으니 부글부글 끓고 있던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입니다.


출처 - SBS


이렇게 유류세 반대 시위로 시작한 시위는 점차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반발로 퍼졌습니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마크롱 퇴진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며 정책 노선을 바꿀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에서 말한 박물관 파괴와 유물 약탈 등을 포함한 폭력까지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폭력 사태는 시위대의 시민들뿐 아니라 최루탄을 포함한 강경한 대응을 하는 공권력의 책임 역시 큽니다. 지난 1일 마르세유에서 시위가 일어났는데 인근 아파트에 살던 80세 여성이 얼굴에 최루탄을 맞아 숨졌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확대일로에 있는 시위 앞에 프랑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BBC


노란조끼 시위는 프랑스에서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한 노란색 형광 조끼를 시위대가 입고 나오면서 붙은 이름입니다. 시위대의 구성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유류세에 직격탄을 맞은 지방에 사는 트럭, 택시, 사설구급차 운전사 등의 SNS 호소로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에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계급이 뒤섞인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우 민족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같이 상반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온건파도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극우와 극좌가 함께 반정부 투쟁에 나선 셈입니다. 여기에 여성주의 그룹, 노동자 진영뿐 아니라 중학생까지 포함되어 정말 하나로 모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경제적 충격을 주는 정책과 복지 혜택 축소로 쌓인 분노가 부자 감세와 유류세 인상이라는 기폭제를 만나 폭발하자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죠. 이제는 중학생들이 마크롱의 교육, 시험 개혁 폐기를 요구하는 등 각자의 주장과 요구를 펼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출처 – BBC


그래서일까요? 프랑스 국민의 절대다수가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폭력 시위 사태 바로 다음 날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72%의 시민이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85%는 폭력 시위에는 반대한다고도 답했습니다. 하지만 90%의 시민이 정책의 조정이나 시위대를 대하는 정부의 조치들이 현 사안의 위중함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여론조사의 결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이번 폭력 시위는 마크롱 대통령이 서민층을 무시한 것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일부 시위 현장에서는 진압하러 나온 경찰 중 일부가 시위대에 가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지요.


출처 - 연합뉴스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란조끼 시위의 기폭제가 된 유류세 인상을 포기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크롱은 지난 5일로 예정되었던 세르비아 방문을 전격 연기했습니다. 지난 4일로 예정되었던 정부와 노란조끼 시위대 간 협상도 시위대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자신이 말한 만큼 강한 대통령이라면 마크롱은 이제 폭력 사태로 비화한 시위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징집제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등 극우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마크롱에 대한 반작용에 가까운 시위이기도 하니까요. 

 

한편 시위대 역시 극우와 극좌, 도시와 지방, 부자와 서민 등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서서히 도드라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극우를 비롯한 정치권이 이 틈을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노란조끼 시위는 서민들의 경제적 충격과 삶의 질 저하가 얼마나 큰 국가적 시험대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닌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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