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 최대의 온라인 여론광장이었던 다음 아고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아고라를 운영하는 포털 다음은 지난 3일 공지를 통해 아고라 서비스를 2019년 1월 7일 종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때부터 새글 쓰기가 막히고 2019년 4월 1일까지는 개인별 작성 글을 백업할 수 있다고 하며, 백업 기간이 지나면 아고라의 모든 콘텐츠를 파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아고라
아고라는 원래 미디어다음 뉴스 서비스 안에서 운영되며 주제별 토론방을 강화하는 형태로 지난 2004년 12월 시작된 서비스였습니다. 아고라는 이름 그대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을 벌이던 광장의 역할을 온라인에서 똑같이 수행한 겁니다. 다음 아고라의 청원 게시판은 법적인 구속력이나 효력이 전혀 없었는데도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문고 같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 올라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온라인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분일지라도 지인이나 단체를 통해 다음 아고라의 청원글에 서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한 번쯤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쓰는 서비스였죠. 지난 15년 동안 다음 아고라에 1000만 명 이상이 3000만 건이 넘는 글을 작성하고 20만 건에 이르는 청원을 했고, 이에 대해 4500만 건의 서명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다음 아고라가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건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2005년 1월 서귀포시의 부실 도시락 사건이었죠. 뉴스를 통해 결식아동들이 부실한 도시락을 먹고 있다는 소식에 분노한 누리꾼들이 다음 아고라를 통해 결식아동 도시락 개선 청원 운동을 벌였는데, 이런 움직임이 다시 뉴스를 타며 사회적 파급력을 낳았습니다.
출처 - 블로터
그런 아고라가 전성기를 맞이한 때는 이명박 정권 시기였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진 바로 그때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반대 여론이 오프라인과 거리로 확대되는 모습이 이때 펼쳐졌습니다. 다음 아고라는 촛불시위의 대표적인 온라인 의견 수렴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기성 정치 세력들도 아고라에 들어와 각종 여론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 글을 아고라에 올린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 있죠.
출처 - 매일경제
미네르바 사건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8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한국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글을 올린 박대성 씨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언론이 매일 대서특필하여 엄청난 화제가 됐죠. 그런데 박대성 씨는 2011년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리하여 미네르바 사건은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인식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허위사실유포죄에 해당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이 위헌 결정을 받게 됐습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권력에만 해당하는 얘긴 아닙니다. 2000년대를 대표하던 여론 공간인 다음 아고라도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와 오늘의유머 등 다른 커뮤니티 서비스의 등장으로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사실상 다음 아고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는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의미를 다한 듯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18년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 다음 아고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공지를 듣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고, 시대는 변화하기 마련이겠지요.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정당한 여론을 형성할 공간의 필요성은 여전합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다른 서비스와 공간이 생겨 사람들이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